1위 눕히고 140위에게 패한 ‘바둑 도깨비’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2023. 11.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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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바둑] 양극 오가는 송지훈 8단

이쯤 되면 ‘도깨비’란 별명을 달아줘도 지나치지 않다. 한번 불붙으면 무서운 기세로 타이틀에 다가서지만 예선 탈락을 밥 먹듯 한다. 100위권 밖 기사들에게 곧잘 패하다가 랭킹 1위까지도 펑펑 메다꽂는다. 도깨비 이름은 송지훈(25) 8단. 그의 진짜 모습은 지킬일까, 하이드일까.

'롤러코스터' 송지훈 8단. 랭킹 1위를 꺾는가 하면 140위 후배에게 패하는 등 변화무쌍한 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20년 크라운해태배 우승 때 모습. /한국기원

바둑 동네에서 지난 한 달은 송지훈을 위한 시간이었다. 제2기 한국기원 선수권전서 4강에 선착, 종합 기전 첫 우승을 바라보는데 그 과정이 놀랍다. 부동의 1위(이하 11월 랭킹) 신진서와 4위 신민준, 7위 안성준 등 최정상급 강자들을 줄줄이 격퇴했다. 어떤 강자도 흉내 내기 힘든 괴력이었다.

하지만 그의 올해 성적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중하위권 랭커들에게 너무 자주 졌기 때문. 100위권 밖 기사들에게 당한 패점이 하반기에만 4회나 된다. 지난 8일엔 크라운해태배 예선서 입단 2년 차 조종신(23·140위) 2단에게 져 1회전서 탈락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송지훈이 답했다. “나보다 랭킹이 높은 기사와 대국 때는 마음이 편하고 집중도 잘되는데 하위 랭커와 둘 때는 그 반대가 돼요.” 상대 랭킹이 대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는 심지어 200위에 가까운 기사에게도 몇 번 진 기억이 있다”고 실토했다.

기풍(棋風)도 한몫했다. 호전적 스타일인 송지훈은 잔승부를 다투기보다 판 전체가 요동치는 난전을 즐긴다. ‘모 아니면 도’가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야구에 빗대자면 타율보다 홈런이나 타점이 돋보이는 타입이다.

한국 랭킹 3위이자 현역 세계 챔프인 변상일도 같은 유형으로 분류된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측면이 있다. 송지훈은 “(변)상일이 형만큼 다듬어지면 보완이 되는데 나는 패점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자평했다. 올해 그는 46승 28패(62.2%)를 기록 중이다.

송지훈은 2020년 제한 기전(25세 이하)인 크라운해태배서 김명훈 신민준 이창석을 연달아 눕히고 우승한 경력이 있다. 그때도 이번 한국기원 선수권 대회처럼 열세 예상을 잇달아 뒤엎고 우승까지 치달아 화제가 됐다.

현재 랭킹은 21위. 송지훈에게 커리어 하이에 해당하는 순위다. 2016년 2~3월 70위로 바닥을 친 뒤 꾸준히 올라왔다. “2015년 입단할 때 5년 내 세계를 제패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9년 차에 들어섰네요.” 약간 초조해진 표정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중국 미위팅과 2대2, 셰커 자오천위 투샤오위와는 1대1 등 세계 열강들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다. 신민준에겐 2패 후 3연승 중이며 김명훈과도 접전(3승 4패)을 이어가고 있다.

송지훈은 요즘 체력 단련에 흠뻑 빠졌다. 매일 헬스장을 찾아 땀을 뺀다. 기복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 끝에 택한 생존 전략이다. 최근 장고(長考) 대국 승률이 급등한 것과 무관치 않다. 송지훈 도깨비는 롤러코스터를 멈추고 인간 고수로 ‘환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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