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생명 향한 애정, SF소설이란 그릇에 담다

조봉권 기자 2023. 11.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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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진 여성 소설가 고금란이 써낸 '케플러가 만난 지구'(호밀밭 펴냄)는 독특한 느낌을 남기는 장편소설이다.

그렇게 하고 보니, 지구의 역사와 현실이 종횡으로 보이고 생태·생명에 대한 애정은 한 뼘 더 자라면서 등장인물들이 '새로운 선택'을 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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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출신 70대 작가 고금란 씨

- 첫 장편인 ‘케플러가 만난 지구’
- 지역·우주 잇는 시공초월 판타지
- 자연과 교감으로 생태 어루만져

부산 중진 여성 소설가 고금란이 써낸 ‘케플러가 만난 지구’(호밀밭 펴냄)는 독특한 느낌을 남기는 장편소설이다. 생태와 생명, 우주와 역사, 현실과 판타지가 산뜻하고 맑은 느낌으로 교차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는 생태·생명에 관한 애정이 몸에 스민 듯했다.

‘케플러가 만난 지구’ 고금란(왼쪽) 작가와 저서 표지.


고금란은 부산 소설단에서 무게감이 또렷한 작가다. 그의 문학 인생을 간추려 보자. 부산 영도 태생인 고 작가는 1994년 계간지 ‘문단’에 단편소설 ‘포구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등단 30년에 이른 중진이다. 1995년에는 농촌소설 ‘그들의 행진’이 농민신문에 당선됐다. 1995년 첫 소설집 ‘바다표범은 왜 시추선으로 올라갔는가’를 낸 뒤로 소설집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오래된 불씨’를 냈다. 산문집 ‘그대 힘겨운가요 오늘이’ ‘맨땅에 헤딩하기’가 있다. 2018년에는 부산소설가협회장이 돼 3년간 활동했고 부산소설문학상도 받았다.

이렇게 살펴보니, 그에게 ‘케플러가 만난 지구’는 첫 장편소설인 셈인데 그 결실이 SF 장르를 대범하게 넘나드는 작품이다. ‘70대 여성 작가의 장편 SF’라고 규정해도 될 듯하다. 이 ‘뜻밖의 방향’에 관해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20년 전 어느 가을, 지구 생태계에 대해 공부하면서 의식의 확장을 느낀 기억이 있다.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은 지구환경과 인류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을 쓴 톰 하트만이 말했다. 인간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21세기 말쯤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될지 모른다고. 그의 지적들은 지금, 하나둘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생태·생명을 향한 작가 고금란의 고민과 공부와 실천이 깊고 진중함을 알 수 있다.

생태·생명 메시지를 담고자 작가가 택한 그릇은 SF 형식이다. 현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우주에서 영남알프스 산골 마을과 부산 경남까지, 신라 유적인 천전리 각석과 경주 문무대왕암을 비롯해 역사에서 설화까지, 소설은 시공을 종횡무진한다. 생태·생명을 위해 큰 실천을 해낸 한 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종교인, 사람을 품는 노래를 부르는 인디 가수 곡두에게서 이름을 가져온 젊은 예술인, 삼국유사 전문가이며 한옥 보존 운동가인 인물…. 등장하는 인물도 흥미롭다.

그런데 소설은 요란하지도 않고, 강렬한 사건·갈등·대립의 길로도 좀체 들어서지 않는다. 어느 날 새벽, 호세가 지구에 온다. 영남알프스 어느 마을에 착륙한다. 호세는 우주인이다. 21일(삼칠일) 안에 지구에서 진귀한 열쇠 세 개를 구해서 자기가 온 곳으로 돌아가 새로운 우주 공간을 건설하는 것이 호세의 임무다. 그리고 지구 쪽으로 혜성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우주인들은 혜성의 진로를 바꿀 능력은 없지만 지구인들에게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줄 힘은 있었다. 그리하여 케플러 452b에 새로운 왕국을 세우기로 의견을 모았다.” (34쪽)

자연과 교감하는 놀라운 능력도 갖춘 호세는 이렇게 해서 지구의 여러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아 가며 구형왕릉, 문무왕수중릉, 천전리각석으로 다니며 열심히 열쇠를 찾는다. 비단벌레 지킴이 손 씨 등의 인물 또한 인상 깊다.

이 과정에서 극렬한 대립이나 파국보다 지구의 생명을 찬찬히 살피는 전개가 이뤄진다. 그렇게 하고 보니, 지구의 역사와 현실이 종횡으로 보이고 생태·생명에 대한 애정은 한 뼘 더 자라면서 등장인물들이 ‘새로운 선택’을 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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