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몸 다치게 하는 노인 일자리는 복지 아니다

경기일보 2023. 11.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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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 할머니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수십년간 운영하던 식당을 닫았다. 생계가 막막하던 할머니에게는 새로운 생계수단이었다. 복지관에서 소개해줘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물건을 옮기다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일자리는커녕 평상시 활동까지 어렵게 됐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생계를 더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땅히 의지할 가족이나 경제력이 없다. 할머니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사고가 된 셈이다. 경기일보 기자가 확인한 사연만도 여러 건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노인이 38만778명이다.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2018년 5만4천736명, 2019년 7만780명, 2020년 7만4천724명, 2021년 8만9천155명, 2022년 9만1천383명이다. 노인 일자리는 노인복지의 핵심이다. 경제적 지원이라는 측면 외에 근로기회 제공이라는 소중한 의미도 있다. 노인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우리다. 노인 일자리는 앞으로도 확대돼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 현장에서 안전대책은 충분치 못하다.

앞선 할머니의 사례처럼 일자리 현장에서 다치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노인 일자리 안전사고는 1천25건이다. 2018년 140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늘었다. 이 중 사망자도 2명 있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골절 56%, 타박상 12%, 염좌 6% 등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과 안전사고 예방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강조한다. 노인은 신체적으로 약하다. 안전사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신체 건강한 노동자들의 경우와는 다른 수준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만 주력한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 규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5시간 이상 안전교육이 전부다. 교육 이후엔 노인들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예산 부족을 호소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으로는 인건비 지급이 우선이라고 한다. 안전을 위한 조치에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노인 일자리 사업 자체에 노인 안전사고 예산이 포함됐다고 해석해야 옳지 않나. 당연히 사용해야 할 안전사고 예방 예산을 인건비 지급에 모두 털어넣는 것은 아닐까. 노인에게 부상은 영구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한 일자리가 돼선 안 된다.

빙판 길에서 교통안전원으로 일하는 노인,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 추운 새벽 대로변에서 휴지를 줍는 노인,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이들을 보는 시민들은 아슬아슬하다. 이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면서 노인복지 천국이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인 일자리 숫자를 늘리려고만 하지 말고, 노인 안전 장치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노인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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