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과 약속 지켰다... LG, 29년만에 KS 우승 순간
9회초 KT 배정대가 친 뜬 타구가 LG 2루수 신민재 글러브에 들어가는 순간, 경기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알리는 새빨간 불이 전광판에 켜졌다. 이어 LG 한국시리즈 챔피언 등극을 축하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1994년 10월 23일 인천 도원야구장에서 태평양을 상대로 4전 전승을 거두며 우승한 이후 1만일하고도 614일이 흐른 날, LG는 잠실야구장에서 처음, 1990년과 1994년에 이어 통산 세 번째 프로야구 챔피언이 됐다.
LG가 13일 열린 2023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를 6대2로 완파하고, 시리즈 4승 1패로 29년 만에 정상에 섰다. LG는 5차전 초반 박해민의 맹활약으로 승기를 잡았다. 3회말 1사 2·3루에서 박해민이 2타점 2루타를 때린 뒤 도루와 땅볼 때 홈까지 밟으며 3점을 선취했다. 5회말 무사 2·3루에선 김현수의 2타점 좌전 적시타가 터졌다. 박해민은 4회엔 멋진 다이빙 캐치로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LG는 선발 케이시 켈리가 5이닝을 5안타 3볼넷 1실점으로 막아낸 뒤 6회부터 유영찬·함덕주·고우석 등 불펜투수를 내보내며 KT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한국시리즈 MVP는 주장 오지환(33)의 몫이었다. LG가 첫 우승을 이룬 1990년 태어난 그가 33년 후 LG와 팬들 절실함을 풀어주는 가을 사나이가 됐다. 그는 기자단 투표 93표 중 80표를 얻어 LG 선수로선 두 번째로 영예를 맛봤다. LG가 1990,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MVP는 모두 투수 김용수였다.
오지환은 ‘오지배(뛰어난 타격과 결정적인 실책으로 희비를 엇갈리게 만들면서 경기를 지배한다는 의미)’란 별명처럼 2023년 한국시리즈 전체 흐름을 지배했다. 5경기 19타수 6안타(0.316) 3홈런 8타점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 단일 시즌 3경기 연속 대포는 오지환이 최초였다.
출발점은 2차전 홈런이었다. 1차전에서 2대3으로 역전패한 LG는 2차전에서 1회 4점을 내주면서 끌려갔다. 하지만 1-4로 뒤진 6회 오지환이 호투를 이어가던 KT 윌리엄 쿠에바스에게 우월 솔로 홈런을 뺏어내며 가라앉던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LG는 7회 김현수의 2루타로 1점 차로 추격했고, 8회 박동원의 역전 결승 2점 홈런으로 5대4 역전극을 연출했다. 오지환은 수원 3차전에선 5회 결정적인 실책으로 3실점 빌미를 제공하더니 3-4로 뒤진 9회초엔 벼랑 끝에 몰린 2사 후 3점 대포를 터뜨려 극적인 8대7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오지환은 4차전에서도 6-1로 앞선 7회 자신의 한국시리즈 세 번째 아치를 그렸다. 5차전에서는 타석에서 침묵했지만, 호수비로 팀 승리를 거들었다. 그는 주장답게 시리즈 내내 선수들이 긴장감을 풀지 않도록 독려했다. 그는 MVP로 선정된 직후 시상대에서 동료들을 가리키며 “29년 만의 우승 멤버들이 바로 여기 있다”며 “우리는 지금이 시작점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다 같이 오래 야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잠실야구장엔 구광모(45) LG 그룹 회장, 그리고 KBO 총재를 지낸 구본능(74) 희성그룹 회장 등 LG 고위 임원들이 대거 야구장을 찾았다. 그라운드에 내려가 선수들과 기쁨을 나눈 구광모 회장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세계 최고 무적 LG 트윈스 팬 여러분,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드디어 우승했습니다”라는 외침으로 말문을 연 뒤 “변함없이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매 순간 최고 감동을 선사해준 자랑스러운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축하드린다 . 오늘 승리는 여기 계신 모든 분과 LG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이 함께 일군 값진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우승 기쁨을 만끽하시길 바라고, 2023년 챔피언은 LG 트윈스입니다. 무적 LG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1990, 1994년 LG의 두 차례 우승 주역들도 기쁨을 함께 나눴다. 선수로 1994년 우승, 그리고 단장으로 올해 우승한 차명석(54) LG 단장은 “1994년엔 워낙 압도적으로 이겼기에 모두들 2년에 한 번씩 우승하는 줄 알아 큰 감동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다른 팀보다 인기도 많고 팬도 많다 보니 질타도 많이 받고 힘들었다. 이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LG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용택(44)은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졌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내년에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은퇴할 때까지 한국시리즈 무대에 못 올랐다”며 “개인적으로 후배들이 너무 부럽다. 팀의 암흑기 동안에도 열정적인 응원과 사랑으로 관심을 보이셨던 팬들에게 보답하는 우승”이라고 했다. 두 차례 MVP를 차지한 김용수(63) 전 중앙대 감독은 “우승은 한 번 끊어지면 다시 하기 힘드니 이번 우승을 계기로 2연패, 3연패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LG에서만 뛴 이종열(50) 삼성 단장은 “우승은 처음에 극도로 좋았다가 한 번에 싹 가라앉아 허무한 느낌이 들지만, 야구 선수라면 꼭 맛봐야 하는 감정”이라며 “29년 만에 우승해 준 후배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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