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책 좋아하는 이웃

곽아람 기자 2023. 11.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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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분명 ‘엄마’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데, 자애로운 모성보다는

갑질, 조리돌림, 같은 부정적인 인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간 맘카페가 진원지인 가짜뉴스로 동네소아과가 줄폐업하고,

어린이집 교사가 목숨을 끊는 등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겠죠.

맘카페 운영자 정지섭(필명)씨가 쓴 ‘맘카페라는 세계’는

맘카페 내부자의 시선으로 맘카페를 분석하고 해부한 책입니다.

그는 타 인터넷 커뮤니티와 구분되는 맘카페만의 특성을 ‘둥글둥글함’이라고 정의한 후

맘카페의 이모저모를 분석합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둥글둥글함’이 수동성으로, 그 수동성에 의한 침묵이

결국 다수 목소리에만 힘을 실어주게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썼죠.

여성은 약한가요? 엄마는 약한가요? 약자는 선한가요?

이 책은 그런 의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약자, 도와줘요 맘카페”… 그릇된 공감이 ‘엄마 혐오’ 불러

복도에서 툭,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았더니, 과일이 잔뜩 든 쇼핑백이 문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문한 적 없는 것들이라 오배송인 줄 알고 그냥 문을 닫았는데 곧 이런 문자 메시지가 오더군요.

“몰래 두고 오려 했는데 집에 불이 켜져 있길래 내일까지 못 보실까봐 문자 드려요. 책 선물 이상이 될 순 없지만 최대한 건강한 음식으로 드리고 싶었어요.”

발신인은 3층 이웃. 책장 정리하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 두 권 있길래, 한 권을 그 집 현관 앞에 살짝 놓아두고 왔더니 답례품을 보냈습니다.

책이 맺어준 인연입니다. 몇 달 전 안 읽는 책들을 아파트 로비에 놓아두고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고 쪽지를 붙여놓았는데, 어떤 여자분이 반색하며 “정말 이 책들을 다 가져가도 되나요?” 하더군요. 지난번에도 제가 내놓은 책들을 가지고 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이후에도 몇 번 더 책들을 챙겨 그 집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저 어제는 지난번 주신 기욤 뮈소 책 보다가 손에서 놓을 수 없어서 새벽 4시에 잤어요.” “기욤 뮈소 재밌죠! 집은 좁은데, 버리기엔 마음이 아파서 갖다드렸어요.” “맞아요. 버리는 건 살을 도려내는 느낌이에요.”

문자 메시지 대화가 끊일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책을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 내놓으면 폐지로 분류돼 막 다뤄지더군요. 밑줄 그은 책이나 출판사 증정본은 거저 줘도 헌책방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기증하기엔 번거롭지요.

그래도 책인데, 책이니까, 그냥 버리기보다는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바란 덕분에 좋은 이웃을 얻게 되었습니다. 책 좋아하는 이웃이라니, 근사하지 않나요? 과일 담겨 있던 쇼핑백에 그가 좋아할만한 소설책을 가득 넣어 돌려 보냈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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