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소품·대사까지 똑같았다... 15년전 일드 ‘복붙’한 K호러 [그 영화 어때]

신정선 기자 2023. 11. 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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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3번째 레터로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뉴 노멀’(감독 정범식) 보내드립니다. 추천작이냐고요. 아뇨. 한국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 받는 시대,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알리다간 다른 창작자들에게까지 오해와 불신의 불똥이 튈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 레터로 보내드립니다.

영화 '뉴 노멀'. '곤지암'을 만든 정범식 감독 5년 만의 신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오늘(13일 월요일) 아침자 저희 신문에 나간 기사 링크 아래에 붙일게요. 읽어보시고 레터 보셔야 이해가 쉬우실 거에요.

일본 드라마 그대로 베끼고도 ‘유니크한 K호러’라니

저는 이 영화를 지난 11일 토욜에 봤습니다. ‘곤지암’ 만든 정범식 감독님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도 있었어요. 영화 보도자료엔 이런 문구도 있더군요. “신작 <뉴 노멀>은 오싹한 서스펜스가 중심이 되는 스릴러 장르지만, 그 속에 담긴 인물들 각각의 정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 기반한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립이다.” 오호. 요즘 우리 현실을 무섭고도 외롭고도 쓸쓸하게 표현한 작품인 건가. 제 기대는 영화 시작 10여분 만에 의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응? 이거 일드 아냐?”

제가 잘못 봤나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에 봤던 일본 드라마 스토리였습니다. 그것도 한참 전. 에피소드 6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최지우 출연편의 반전은 워낙 알려진 기법입니다. 스릴러 좀 보신 분들이라면 기본으로 아실 정도로요. 다른 에피소드도 예전에 봤던 일드였어요. 정확하게는 6편 중 5편이 일드 거의 그대로입니다. 얼마나 닮았는지는 위의 링크 기사에 들어가시면 간략하게 설명돼 있습니다. (해당 일드는 2007~2009년 방영된 후지 TV 심야드라마 ‘토리하다(소름)’입니다.) ‘대한민국 현실 담았다더니 최근작도 아니고 15년 전 일드를? 그럼 15년 전 일본 현실과 현재 대한민국 현실이 동일하다는 문제의식인 건가.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지. 나만 몰랐나?’

메일함을 열고 영화사에서 보낸 홍보 메일을 읽어봤습니다. 보도자료는 기본이고 포털에서 검색되는 기사도 다 읽어봤습니다. 일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없다뿐인가요. ‘각본·감독 정범식’이라고 분명하게 써있고, ‘유니크한 K호러’라고 굵은 글씨로 표기해놨더군요. 감독님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지우 출연편을 두고 “1930년대 영화 ‘M’을 오마주했다”고 하셨고요. (프리츠 랑의 1931년 작품을 말씀하신 듯 합니다. 바탕이 된 일드는 쏙 빼고 ‘오마주’ 고전작품만 언급하셨네요.) “우리가 살고 있는 뉴 노멀의 시대가 이런 식으로 연결돼 있고 서로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는 언급도 있었고요.

토욜이긴 하지만 부득이한 상황이라 영화사 측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일드 ‘토리하다’ 판권을 샀고, 엔딩 크레딧에 표기했다”고 하더군요. 레터 독자분들을 위해 엔딩 크레딧 화면을 아래에 첨부하겠습니다. ‘각본팀’과 ‘IDEA 기획팀’ 아래에 나옵니다. ‘일부 IDEA BASED ON 니혼노테레비 토리하다'라고 들어가 있는데, ‘일부’라는 단어만 한글이고, 나머지는 영어와 히라가나, 가타가나로 적혀있습니다. 기사에도 썼듯, 일본 제작사와 합의가 된 표기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6편 중 5편이 ‘토리하다’ 스토리 그대로고, 심지어 앵글과 소품과 대사까지 똑같은 장면도 있는데 저렇게 눈가리고 아웅,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식으로 표기하고 “일본 거라고 밝혔다!”고 주장한다면 관객을 우롱하는 행태가 아닐까요.

영화 '뉴 노멀' 엔딩 크레딧 중 일부. ''일부' 아이디어가 일본 드라마에 바탕됐다(BASED ON)'고 영어와 히라가나, 가타가나로 표기돼있다.

일드와 ‘뉴 노멀’의 가장 큰 차이는 15년 전 일드가 훨씬 더 재밌다는 점입니다. 리메이크도 요즘엔 이것보다 창조적으로 만들어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보여주겠다고 덧붙인 마지막 부분은 영화 전체 톤과 맞지 않아 겉돕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10여년 전 일드 뒤에다 철커덩 결합시켰으니까요. 마지막 부분은 ‘뉴 노멀'의 얼마 안 되는 순수 창작인데, 연쇄살인범들과 피해자 등 여러 인물이 각자 혼자서 밥 먹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혼밥이 당연해진 시대의 고립감’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설명이더군요. 연쇄살인범의 혼밥 고립감이 감독님에겐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나 봅니다. 글쎄요. 관객도 그럴까요.

처음부터 ‘일본 드라마지만 한국적으로 재창조하고 싶었다’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리메이크라고 해서 관객들이 무조건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요. 잘 만들면 얼마든지 볼텐데요.

남의 걸 갖다 쓰고 내가 만든 것처럼 알리는 것. 특히 요즘처럼 한국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때에 자칫하면 한국 영화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뉴 노멀' 홍보 쪽에서 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해외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았다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대단히 창의적이고 기막히게 재밌다!”

-런던국제영화제 페스티벌 디렉터 트리시아 터틀(Tricia Tuttle)-

“거부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과 ‘블랙 유머!’”

-피렌체한국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 리카르도 젤리(Ricardo Jellie)-

이렇게 알리고 있습니다.

‘대단히 창의적’, ‘거부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 이건 일드 스토리 덕분에 받는 찬사 아닌가요. 저 찬사를 했다는 트리시아와 리카르도도 알고 있을까요. ‘뉴 노멀'이 일드 스토리 그대로라는 걸. 만약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 이후 한국 출품작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요.

남의 나라 콘텐츠라도 얼마든지 현지화하고 재해석해서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디서 누구 걸 갖다 썼는지는 분명하게 당당하게 밝히고요. 남의 걸 자기 거라고 홍보하면 그건 자기기만이고 관객기망(欺罔)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엔 읽어서 즐거운 레터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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