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연의 사각지대] 배구협회가 공청회에 묻힌 흔적, 텀블러와 수건 뿐

권수연 기자 2023. 11.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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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배구협회에서 공청회 기념품으로 배포한 텀블러, 수건 박스ⓒ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MHN스포츠 송파, 권수연 기자) 대한배구협회(회장 오한남)가 주최한 공청회에는 배구협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13일 오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배구 국가대표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가 개최됐다. 

한국 남녀배구 대표팀은 지난 해부터 열린 각종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면치 못했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올해 열린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컵에서 동메달로 돌아선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5-6위 결정전까지 밀렸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막식을 열기도 전에 사전경기에서 탈락하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여자배구 역시 지난 해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2전패에 이어 세계선수권대회 1승4패, 2023 VNL 12전패, 8월 아시아선수권대회 6위, 2024 파리 올림픽 예선 7연패에 더불어 아시안게임도 5위에 그쳤다. 2006 도하 대회 이후 최하위 성적이다. 

남자배구는 61년만에 아시안게임 입상에 실패했으며, 여자배구 또한 17년만에 입상 실패했다. 

이에 지난 달 8일, 배구협회는 남자배구 대표팀 임도헌 전(前) 감독과 여자배구 대표팀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전 감독의 경질 소식과 더불어 사과문을 전해왔다. 아울러 11월 중 대표팀 국가경쟁력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겠다고 알려왔다. 

이 날 개최된 공청회에서는 총 5명의 패널(신승준 KBSN 아나운서, 뉴스1 이재상 기자, 한국배구연맹 강주희 심판위원장, 김민철 조선대학교 교수, 임근혁 아이엠스포츠컨설팅 대표)이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방청객이 직접 참여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강주희 한국배구연맹 심판위원장(좌측), KOVO

■ 패널들, 어떤 목소리를 냈나?

언론인 패널로 참석한 뉴스1 이재상 기자는 타 종목 협회 대표팀 운영 방안과 더불어 배구협회의 대표팀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현재 축구협회에서 선임한 남녀배구팀 지도자와 더불어 양질의 선수, 지도자를 키우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발표가 이뤄졌다. 이재상 기자는 배구협회 운영 방향에 '명확한 비전, 방향성, 연속성 등이 떨어진다'는 문제제기를 하며 해외팀과의 평가전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다른 패널인 강주희 한국배구연맹 심판위원장은 본인의 국제심판 경험을 이야기하며 해외배구의 분위기, 흐름, 전임 단장과 전술분석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포지션 별 전담코치(세터 코치, 리베로 코치, 윙 코치)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김민철 조선대학교 교수는 지도자들의 저변 확대와 업무환경 개선에 대해 짚었다. 김 교수는 일부 국내 선수들의 해외 진출 사례를 언급하며 "(해당 사례는) 유소년에서 일선 지도자들이 좋은 선수를 키워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수가 급감해 배구를 안한다. 여기에 지도자들이 저임금을 받고 무기계약직이 돼서 기타 잡무까지 보고있다. 또 클럽은 많지만 엘리트까지의 육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냈다. 

■ "유소년, 국내 지도자 키우게 투자 좀"

이번 공청회의 주요 논점 중 하나는 유소년 및 국내 배구인 육성이었다. 튼튼한 자원을 육성해야 장기적인 국제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종목을 넘어 스포츠판의 기본적 상식이 됐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각 시도별 배구협회, 실업배구연맹 대표 인사들은 빈약한 국내 배구의 저변과 예산 부족을 강조했다.

실업배구연맹 이재화 부회장은 "지도자 양성은 첫 번째가 예산이고,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초,중,고,일반부까지 지도자 양성에 플랜을 세워야하는데 그런걸 보지 못했다. 또 프로구단과 협회가 이런 상황을 직시해서 선수 선발에 협조적으로 나서야 한다. 유망주들을 적극 육성해야하며, 시합만 많이 하면 소용이 없다. 예산을 줘서 담금질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타 시도협회 관계자들 역시 "우리가 아무리 공청회를 열어도 국가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경쟁력 발전이 없다. (학생 선수들은) 수업하느라 웨이트할 시간이 없다", "옛날에는 강도 높은 '특공대 교육'을 시켜서 성적을 냈는데, 최근에는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이 생기며 '공부하는 학생선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나왔다. 프로리그 용병 몰빵에 중고교 학습권을 지키다보니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아 뽑을 선수가 없다" 등 현장 상황을 언급했다. 

배구협회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에 패널로 나선 뉴스1 이재상 기자-사회자 신승준-연맹 강주희 심판위원장-조선대 김민철 교수ⓒ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이 가운데 현재 선수 에이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임근혁 아이엠스포츠컨설팅 대표가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일부 배구인은 항의를 표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이 날 "국제 지도자는 언어와 여러가지 문화, 리그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다"며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지도자의 소양과 선임 우대 조건, 해외 지도자가 한국 대표팀을 바라보는 인식, 국제대회를 꺼리는 한국 배구판의 현황을 짚었다. 

임 대표는 "대표팀에 대해 생각하는 (해외와 국내) 선수들의 마인드 차이가 있는데, 해외 선수 같은 경우는 국제대회에서 본인이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빅리그에서 좋은 오퍼를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한국의 환경과는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해외 감독들은 한국 대표팀에 대해 단기적인 성적을 내야하기에 부담스러워한다. 또 단순히 유명한 외국 지도자를 대표팀에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하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한 고교 배구부 감독은 "외국인을 선임하는데 있어서 배구협회가 우선권을 준 것처럼 들린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말 표현을 잘 해야한다. 내국인이 밥먹고 살길 바라는데 외국인을 데려오자고 하는건 표현이 다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 시도협회 대표 인사들 역시 "국내 지도자는 언급도 안 했는데 고려해달라. 다음 공청회는 이런식으로 진행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협회와 배구인들이 모여서 의논했으면 한다", "한국 지도자들도 은퇴하면 갈 곳이 없는데 은퇴하더라도 협회 차원에서 배구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어받았다. 

배구협회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에 패널로 나선 사회자 신승준-연맹 강주희 심판위원장-조선대 김민철 교수ⓒ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 공청회,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되지만...

이 날 공청회에 참가한 팬들 역시 저마다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이 가운데는 "타 스포츠에 비해 배구가 국제평가전이 부족하니, 친선경기를 해외팀과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더불어 "배구협회의 행정과 의사결정의 불투명성, 배구팬들과의 소통 부재 등이 불만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해외 감독을 더 선호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 중 관계자들과 팬의 공통 분모는 "공청회가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경계였다. 

하지만 '주최-대한배구협회'라고 당당하게 걸어놓은 현수막은 무색했다. 협회 측 참가자는 모두 침묵을 지켰다. 진행부터 수습까지 외부 인사에 의해 이뤄졌다. 공청회는 기본적으로 주최측에서 해당 분야의 권위자 및 이해관계자 등을 모아놓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다. 그러나 정작 쏟아지는 의견과 항의를 수렴할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에도 똑같이 열리는 공청회라면 오히려 시간, 예산 낭비다. 몸뚱아리가 없어진 공청회는 백날 열어봐야 공염불(空念佛)이다. 

전임 지도자 육성, 축구 등 타 협회와의 운영 차이점, 국제 지도자의 소양, 국제 심판의 시선, 유소년 선수에 대한 문제, 국내 지도자 육성 및 예산 등 각종 의견들이 산재했지만 모두 허공 속의 외침이 됐다. 자신의 한도 내에서 의견을 낼 수 밖에 없었던 외부 패널들이 협회를 향한 항의와 질의응답을 대신 받았다. 

협회 측은 당초 사과문에서 해당 공청회에 대해 '외부인사를 주축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부인사만으로' 여는 것과는 다르다. 이는 사실상 책임 회피에 가깝다. 협회는 일차적으로 해당 공청회를 개최하는 의미와 목적, 감독 경질 후 협회차원에서 의논했던 기본 쇄신책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후에 외부 인사의 다양한 의견이 개입된 토론으로 방향을 건설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그러나 이 날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협회의 입장은 그야말로 빌 공(空)이었다. 보도자료를 통한 사과문만이 입장의 전부였다. 

퇴장 전 방문객들에게 나눠주는 텀블러와 수건을 담은 박스에는 '대한배구협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나마 배구협회가 행사 주최를 했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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