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펑펑 운 염경엽, LG선 웃었다…‘자신 있게 뛰는 야구’로

김양희 2023. 11. 1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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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의 우승 이끈 비결은 ‘섬세한 방향성’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kt를 6-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LG 염경엽 감독이 김현수를 끌어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한국시리즈 6차전 때였다. ‘패장’이 된 염경엽 당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히어로즈는 2승2패로 맞선 5차전서 9회말 1사 뒤 유격수 강정호(은퇴)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고, 그 여파로 6차전까지 힘없이 내줬다. 일명 ‘빼빼로 데이’(11월11일) 때 1-11, 대패를 당했다. 사령탑 데뷔 첫 우승을 노렸던 염 감독은 간신히 눈물을 닦고 퉁퉁 부은 얼굴로 패장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장소는 잠실야구장으로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그는 경기 뒤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으로 거듭 솟구쳤다. 엘지(LG) 트윈스에 1994년 이후 29년 만의 우승을 안긴 데 따른 선수단 헹가래였다. 염경엽 감독은 사령탑으로 생애 첫 우승을 맛본 이날은 울지 않았다. “간절함이 감정선을 누른 것 같다”고 했다. 그저 감격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을 뿐이었다. 그만큼, 원하고 원했던 우승이기도 했다.

염경엽 감독은 엘리트 야구 선수 출신이었다. 광주 충장중학교 시절 친구(김기태 현 KT 위즈 2군 감독)와 합숙소에서 도망쳐 나와 서울역에서 구두를 닦으며 3일을 버틴 적도 있지만 한순간 일탈일 뿐이었다. 청소년대표(광주일고)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추계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대학생 때부터 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집안 사정도 넉넉했다.

프로 입성 또한 순조로웠다. 1991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전신) 신인 2차 지명 1순위로 입단했다. 데뷔 때부터 태평양 주전으로 뛰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프로 주전’이라는 말에 스스로 도취해버린 게 컸다. 염 감독은 “야구를 안 하더라도 충분히 먹고살 만했기 때문에 절실함이 없었다. 목표의식이 없던 것”이라고 돌아봤다.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뒤 새내기 박진만(현 삼성 감독)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조연으로 밀린 순간 그는 캐나다 이민까지 생각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차라리 외국에서 살자” 싶었다. 이주공사에 3000만원 투자 이민을 신청하고 이민 교육도 받았으며 영어학원까지 끊었다. 그런데 이주 사업계획서를 잘못 쓰는 바람에 탈락하고 말았다.

재심은 4년 뒤에나 가능한 상황에서 ‘그래, 야구 코치로라도 1등 하자’ 마음을 먹었다. 그때부터 야구 관련 책이란 책은 모조리 다 사서 읽었다. 일본 야구 원서를 구하면 직접 번역을 맡겨서 기어이 읽고야 말았다. 야구 경기를 봐도 투수 버릇(쿠세) 등을 자세히 보려고 했고 상대 팀에서 작전이 나오면 항상 ‘왜지?’라는 의문을 품었다. 미스플레이를 보면서 경기 응용력도 길렀고, 번트를 대려는 타자를 압박하는 수비 시프트도 고안해냈다.

엘지(LG) 트윈스 선수들이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케이티 위즈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염경엽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 스카우트, 엘지 운영팀장, 히어로즈 감독(2013~2016년), 에스케이(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단장(2017~2018년), 감독(2019~2020년)이었을 때도 그는 ‘왜’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면서 ‘간절하게’ 일을 했다. 염 감독은 “젊었을 때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기 때문에 ‘왜’라는 그런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안일했고 딱 그만큼에 만족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난날의 반성에서 더 치열하게 야구에 파고들었다. 김성근 전 에스케이, 한화 감독이 염경엽 감독을 “우리나라에 전략이나 선수 육성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감독”이라고 칭찬하는 이유다.

염경엽 감독을 상징하는 것은 ‘뛰는 야구’다. 히어로즈 수비 코치 시절부터 팀 동영상과 데이터를 보느라 새벽 1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염 감독은 도루사한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는데 “많이 뛰면서 많이 죽어봐야 느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비록 팀은 해당 경기에서 질 수도 있겠지만 도루 실패 속에서 팀도, 선수도 얻는 게 있다”고 했다. 물론 “생각 없이 뛰다가 횡사하는 것”은 강하게 질책한다.

엘지 또한 염 감독 부임 이후 ‘더 많이 뛰는 팀’으로 변모했다. 작년에는 도루 2위(102개)였는데, 올해는 압도적인 1위(166개)였다. 올해 경기당 평균 도루수(1.15개)가 1개가 넘는 팀은 엘지가 유일했다. 많이 뛰는 만큼 주루사와 도루사가 많아서 팬들은 “그만 좀 뛰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으나 잠실야구장처럼 외야 펜스까지 거리가 먼 구장에서 ‘발야구’는 필수다. ‘누구든 나가면 뛴다’는 인식 속에 상대 배터리의 실투를 유도하는 효과 또한 있었다. 엘지는 올해 팀 타율(0.279), 출루율(0.361), 장타율(0.394) 1위 팀이었다.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엘지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 망설임과 초조함을 없애는 것이었다. 자신감 있게 야구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했고, 뛰는 야구를 통해 공격적인 야구를 하려고 했다”면서 “선수들과 함께 꾸준하게 노력했던 부분들이 지금의 좋은 결과물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염경엽 감독이 지도자 생활 동안 늘 강조했던 것은 목표의식이다. 그는 ‘막연함’을 가장 싫어한다. 그는 “‘꿈이 있는 사람은 평범하다. 하지만 계획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꿈만 있는 사람은 계획이 없고 막연하게 열심히만 한다. 그러나 계획이 있는 사람은 한 단계씩 밟아나간다”면서 “계획과 방향을 잡아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더불어 “나의 야구는 없다”면서 “팀을 ‘나의 야구’에 맞추면 실패한다. 그 팀이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쪽에 초점을 맞춰 야구를 해야 한다”고도 했었다.

염경엽 감독의 섬세한 계획과 방향성 속에 엘지는 29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거뒀고, 한국시리즈 정상에도 섰다. 염 감독 스스로는 시리즈 내내 “선수가 나보다 더 (우승이) 간절하다”고 말해왔으나 치열한 고민 속에 누구보다 우승이 고팠던 그였다. 하얗게 밤을 새운 나날들을 뒤로 하고 모든 경기가 끝난 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지금은 쉬고 싶다”였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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