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대통령이 바뀐 29년의 인고 끝에 LG, KBO리그 왕좌 탈환… MVP는 ‘캡틴’ 오지환
29년 전, 1994년을 떠올리면 무엇이 기억나시나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성수대교 다리가 무너진 1994년은 역대급 폭염으로도 기억된다.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을 지나보낸 그해 가을, KBO리그의 왕좌는 LG의 차지였다. 유지현-김재현-서용빈의 ‘신인 3인방’에 ‘야생마’ 이상훈, ‘노송’ 김용수의 마운드를 앞세운 LG의 ‘신바람 야구’는 정규리그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도 4전 전승으로 집어삼켰다.
LG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7전4승제) 5차전에서 선발 케이시 켈리의 5이닝 1실점 호투와 장단 11안타를 몰아친 타선의 힘을 앞세워 KT를 6-2로 이겼다. 1차전을 내리 내준 뒤 2차전부터 내리 4경기를 잡아낸 LG는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MBC청룡에서 LG트윈스로 바뀐 첫 해인 1990년과 1994년에 이어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날은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2차전 추격 솔로포, 3차전 9회말 2아웃 역전 3점 홈런, 4차전 7회 쐐기 3점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로 단일 한국시리즈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낸 ‘캡틴’ 오지환은 기자단 투표 결과, 93표 중 80표를 싹쓸이하며 86%의 득표율로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야구 사랑이 지극했던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1998년, 한국시리즈 MVP에게 상으로 주겠다며 구매했다가 25년 간 금고에 잠자고 있던 8000만원(현 시세 1억6000만원 이상)짜리 롤렉스 고급 시계는 오지환의 몫이 됐다.
1994년 우승 이후 LG는 1997~98년에도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해태와 현대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지만, 1990년대 말까지 분명 LG는 강팀이었다. 그러나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LG는 거짓말처럼 약체로 전락했다. LG팬들 사이에 비밀번호로 불리는 ‘6668587667’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던 LG ‘암흑기’의 정규리그 순위였다. 잠실벌을 같이 쓰는 ‘한 지붕 두 가족’ 두산은 가을야구 단골이 되면서 LG의 처지는 더욱 초라해졌다.
2013년 2위에 오르며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드디어 암흑기에서 탈출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다. 2013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10년간 7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지만, 큰 경기만 되면 LG는 약해졌다. 다섯 번(2014,2016,2019,2020,2021)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퇴했고, 두 번(2013,2022)은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2년 이후 오랜 기간 끊겼던 한국시리즈 무대 복귀는 LG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난겨울 LG는 류지현 감독과 결별했다. 류 감독은 1994년 선수로 LG에 입단 이후 2005년부턴 코치를 맡았고, 2021년부터 2년간 감독까지 맡은 LG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오랜 숙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사령탑 교체를 감행한 LG의 선택은 ‘염갈량’ 염경엽 감독이었다. 과거 LG의 스카우트와 운영팀장, 수비코치를 맡았던 염 감독은 LG의 14대 감독으로 2011년 이후 12년 만에 LG로 돌아왔다. LG 2대 감독으로 1994년 우승을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 이후 LG가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11명의 감독 교체가 필요했던 셈이다.
염 감독을 우승 청부사라고 부르긴 애매하다. 분명 좋은 지도자지만, 우승 경험은 없기 때문. 과거 넥센(現 키움) 감독 시절인 2014년 한국시리즈에선 준우승했고, 2019년 SK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시즌 내내 정규리그 1위를 지키다 막판 2위로 내려앉은 뒤 플레이오프에서 3전 전패로 탈락했고, 이듬해 성적 부진 스트레스로 두 차례나 쓰러진 끝에 사령탑 자리를 내려놓았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자양분으로 삼은 ‘LG 감독 염경엽’은 달라져 돌아왔다. 지장(智將)의 면모는 여전했고, 선수단 전체를 아우르는 덕장(德璋)의 면모까지 겸비하며 LG를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으로 이끌었고, 후반기에는 독주 태세를 갖추며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시즌 막판 부상 복귀를 두고 코칭스태프와 이견을 보였던 외국인 에이스 애덤 플럿코를 과감하게 내치고 한국시리즈 판을 짜는 승부사적인 기질도 LG 우승에 큰 몫을 했다.
LG의 우승에는 자유계약선수(FA) 영입 등의 지속적인 투자와 자체 생산 선수 육성도 조화를 이뤘다.
라이벌인 두산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현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18년 국내로 돌아올 때 4년 총액 115억원이란 거액을 투자해 품었고, 2022시즌을 앞두고는 현역 최고의 중견 수비를 뽐내는 박해민을 4년 60억원에 잡았다. 지난 겨울엔 박동원을 4년 총액 65억원에 잡으며 롯데로 떠난 유강남으로 인한 포수 공백을 완벽히 메웠다. 2009년부터 LG에서 뛰어온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주장 오지환과는 6년 총액 124억원에 비FA 다년계약을 맺으며 ‘종신 LG맨’으로 묶었다.
LG는 외부 영입에만 의존하는 팀은 아니었다. 자체 생산 선수들인 홍창기와 문보경, 문성주, 신민재를 팀의 핵심으로 키워냈고, 오스틴 딘은 오랜 기간 LG의 고질병이었던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끊어줬다. 이들로 구성한 LG 타선은 정규리그에서도 최강이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승리한 2~5차전에서 34득점을 내며 KT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내년 KBO리그의 최대 화두는 LG의 한국시리즈 2연패 여부다.
2021년 통합 우승 이후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렸던 KT의 도전은 5차전에서 막을 내렸다. 시즌 초반 주전들의 줄부상 속에 꼴찌까지 내려앉았던 KT는 이강철 감독의 지도 아래 6월부터 대반격을 시작해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다. NC와의 플레이오프(PO)에선 2패 뒤 내리 3연승을 거두는 ‘마법’같은 리버스 스윕도 달성했다. 그러나 PO에서 힘을 너무 쓴 것이 KS에선 독이 됐다. PO 내내 맹위를 떨쳤던 불펜 필승 듀오 손동현과 박영현이 KS 들어 LG 타자들을 제대로 제압해내지 못한 게 컸다. 경기 뒤 이강철 감독은 “LG의 우승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선수들 정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수고 많았고 고맙다. 팬 여러분들과 KT 임직원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잘 준비해서 내년에도 KT다운 야구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올 시즌을 돌아봤다.
잠실=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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