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묻혔던 해의 ‘LG 우승’, 29년 만에 되살아났다

양준호 기자 2023. 11. 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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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시리즈서 KT에 1패 뒤 4연승
1990·94년 이어 창단 세 번째 정상에
구본무 회장 남긴 롤렉스·소주도 빛 봐
LG 트윈스 선수들이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 위즈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한데 모여 스프레이를 뿌리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LG 트윈스 선수들이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 위즈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한데 모여 스프레이를 뿌리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LG 트윈스의 우승을 크리스마스 선물보다도 기뻐했던 초등학생은 머리가 희끗한 40대 가장이 됐다. 회사가 운영하는 야구단이 리그를 평정했다며 어깨를 으쓱했던 사회 초년생은 은퇴 후 제2의 삶을 꾸리고 있다. 강산이 세 번쯤 변할 29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다시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은 바래지지 않고 매년 다시 피어났다. 그리고 2023년, LG는 결국 한국프로야구 챔피언 자리에 다시 올랐다. 서울시의 타임캡슐 매설,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등으로 기억되는 1994년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LG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한국시리즈(KS) 5차전에서 KT 위즈를 6대 2로 꺾고 7전 4승 시리즈를 4승 1패로 끝냈다. 1차전 1점 차 패배 이후 4연승으로 홈 팬들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창단 첫해인 1990년과 ‘신바람 야구’ 열풍을 일으켰던 1994년에 이어 세 번째 KS 제패다. 세 번 다 정규 시즌·KS 통합 우승이다. 지난해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1승 3패로 잡혀 탈락한 아픔도 깨끗이 씻었다. LG 가을 야구의 상징인 ‘유광 점퍼’를 맞춰 입은 홈 팬들이 감격에 젖어 “무적 LG”를 연호한 가운데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관중석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1994년 우승 뒤 세 차례 준우승에 입맛을 다셔야 했고 10년 연속(2003~2012) 가을 야구 탈락의 암흑기도 겪은 LG다. 올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텍사스가 62년 만에, 일본에서 한신이 38년 만에 정상에 선 데 이어 LG가 우승 릴레이에 동참하면서 한미일 프로야구의 한풀이 시리즈가 완성됐다.

3회 말 1사 2·3루에서 상대 선발 고영표의 체인지업을 공략해 2타점 2루타를 뿜은 2번 타자 박해민은 3루 도루에 이어 김현수의 내야 땅볼 때 홈을 밟아 3대0을 만들었다. 박해민은 4회 초 중견수 수비 때 2사 1·2루에서 그림같은 다이빙 캐치로 실점을 막기도 했다. 에이스 케이시 켈리의 5이닝 1실점 호투 속에 LG는 5회 김현수의 2타점 적시타까지 더해 5대1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았다.

LG에서 프런트와 코치로 일했던 염경엽 감독은 사령탑 부임 첫해에 팬들의 염원을 현실로 이뤄냈다. 염 감독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이던 2020년 여름 경기 중 더그 아웃에서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연패 중인 팀 사정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터였다. 야구 때문에 한때 건강을 잃었던 염 감독은 다시 야구 때문에 함박웃음을 띠게 됐다. 작전을 잘 짜고 잘 녹여 별명이 ‘염갈량(염경엽+제갈량)’인 그는 틈만 나면 달리는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입히고 대타나 대수비도 십분 활용하는 전술로 팀 전체가 시종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이끌었다.

잠들어있던 ‘롤렉스’와 ‘아와모리 소주’도 LG의 우승으로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롤렉스는 2018년 작고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남긴 시계다. “우승하면 KS 최우수선수(MVP)한테 주라”며 8000만 원에 구입해 구단에 전했다. 그게 1997년의 일이다. 잠실구장 LG 트윈스 대표이사 금고에 보관돼있던 이 시계는 26년 만에 주인을 찾아갔다. 2~4차전 3경기 연속 홈런으로 KS 최다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을 세운 주장 오지환이다. 그는 타율 0.315(19타수 6안타)에 8타점 6득점으로 활약했다.

경기 이천의 LG챔피언스파크 사료실에 있던 아와모리 소주도 개봉된다. 1994년 LG 우승을 자축하는 축승회 때 참석자들은 일본 오키나와 전통 소주인 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시즌 전 오키나와 훈련을 격려 방문한 구 회장이 회식 때 꺼냈던 술이기도 하다. LG 구단은 이듬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며 항아리에 담긴 아와모리 소주 세 통을 사왔으나 그동안은 마실 일이 없었다. 워낙 오래 보관해 상당량이 증발해버렸지만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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