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표 정리하던 '매니저' 염경엽에서 LG 한풀이 우승 명장으로
첫 한국시리즈·SK 감독 시절 실패 자양분 삼아 두 번째 도전서 헹가래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LG 트윈스에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정규리그를 아우른 통합 우승을 선사한 염경엽(55) 감독은 한국프로야구 역대 사령탑 중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소유자다.
현역 선수 은퇴 후 선수단을 지근거리에서 뒷바라지하는 주무 또는 매니저 출신으로 20년 넘게 야구계를 지킨 끝에 마침내 우승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구단 프런트 직원의 밑바닥부터 올라온 감독으로는 국내 4대 프로 스포츠로 시야를 넓혀도 염 감독과 프로농구 부산 KCC의 전창진 감독 둘 정도다. 전 감독도 삼성 농구단에서 주무와 매니저로 오랜 세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야구 명문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나온 염 감독은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해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타율 0.195에 홈런 5개, 타점 110개, 도루 83개다.
이후 지도자가 아닌 현대 유니콘스 운영팀 직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전표를 받아 선수단의 비용을 처리하는 일이 당시 염 감독의 주 업무 중 하나였다. 염 감독은 "전표 정리하던 사람이 감독이 된 경우가 또 있느냐"며 허드렛일하던 시절을 숨기지 않는다.
스카우트로 변신해 남다른 안목을 앞세워 외국인 선수 계약에서 잇달아 '홈런'을 친 염 감독은 2007년 현대 구단 해체 후 LG로 자리를 옮겨 스카우트, 운영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염 감독은 LG 스카우트로 재직하던 시절 현재 LG 주장으로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려 트윈스 우승에 앞장선 오지환과 줄곧 LG에서 뛰다가 지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채은성을 발굴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염 감독은 현대의 마지막 해인 2007년에야 내야 수비 코치를 맡아 지도자로 데뷔했다.
2009년 LG 운영팀장을 끝으로 구단 프런트를 잠시 떠나 2010∼2011년 LG 내야 수비 코치를 지내 현장으로 본격적으로 돌아왔고, 2012년 넥센 히어로즈 작전·주루 코치를 거쳐 2013년 넥센 지휘봉을 잡고 모든 야구인의 꿈인 감독에 취임했다.
2014년 삼성 라이온즈와 치른 한국시리즈는 염 감독의 야구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넥센은 그해 타격(타율 0.370)과 최다 안타(201개) 1위를 석권한 서건창, 홈런 92개와 타점 241개를 합작한 박병호(홈런 52개·124타점)와 강정호(홈런 40개·117타점) 쌍포 등 막강한 방망이를 앞세워 3회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한 삼성에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10명만으로 꾸린 빈약한 투수진 탓에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무릎 꿇고 염 감독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후 9년 만인 올해 감독으로는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염 감독은 "투수 없이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후술했다.
지난 8월 말 골반을 다친 뒤 아예 던지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선발 투수 애덤 플럿코와 과감하게 결별한 염 감독은 약한 선발 투수진을 벌떼 불펜으로 막는 전술로 두 번째 도전에서는 마침내 축배를 들었다.
불펜 투수 7명을 몽땅 투입해 한국시리즈 2∼3차전에서 역전승을 일군 LG 마운드를 보고 적장인 이강철 kt wiz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그것도 정규리그 1위 팀이 불펜을 7명씩이나 잇달아 투입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불펜 물량 공세는 결과적으로 kt 타선 봉쇄에 큰 힘을 발휘했다. 2014년의 실패에서 염 감독은 우승하는 법을 찾았다.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단장으로 재직할 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구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트레이 힐만 감독을 한없이 부러워하던 염 감독은 2019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뼈저린 실패를 또 맛봤다.
정규리그 1위를 못 지키고 추격자 두산 베어스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내준 뒤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맥없이 3전 전패로 무너져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결국 이듬해 경기 중 쓰러져 건강 문제로 중도에 사령탑에서 내려왔다.
이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코치 연수를 하고 방송사 해설위원, KBO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을 지내며 권토중래를 엿보다가 지난해 말 LG 감독으로 12년 만에 쌍둥이 유니폼을 입고 자신과 LG의 한(恨)을 동시에 풀었다.
꾀가 많은 염 감독은 실패를 당당하게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지도자다. 지난해 11월 LG 감독에 선임된 직후 연합뉴스에 한 말에서 결기가 묻어났고, 실패 없이 1년 만에 우승을 일궜다.
"SK에서의 실패가 내겐 정말 많은 공부가 됐다. 프로야구에 몸담은 지난 32년간의 세월을 돌아보고, 어떤 부분이 좋았고 안 좋았는지 다시 정리하고 반성한 시간이 됐다. 한 번 실패했기에 똑같은 것을 또 반복해 실패하진 않을 것이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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