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전설들 “우승 너무 오래 걸렸다...후배들 자랑스러워”
박용택 “감동스럽고 후배들 부럽다”
류지현 “후배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프로야구 LG가 13일 KT를 6대2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시리즈(KS) 정상에 오르자 야구계 곳곳에서 숨죽이고 있던 원조 ‘LG맨’들이 벅찬 감동을 내비쳤다.
본지와 연락이 닿은 LG 전설들은 “너무 오래 걸렸다”고 한숨을 돌리며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박용택(44) KBS N 해설위원은 “200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2승4패로) 졌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내년에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은퇴할 때까지 한국시리즈 무대에 못 올랐다”며 “기다려온 팬들의 염원이 이뤄져 감동스럽다”고 했다.
2002년 프로 무대에 데뷔해 2020년까지 LG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박 위원은 현역 시절 끊임없이 한국시리즈 제패를 위해 도전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현역 때 달고 뛴 33번은 영구 결번됐다. 그는 2000년대 일명 LG의 ‘암흑기’ 시절에도 팀의 정신적 지주로 묵묵히 헌신했다.
박 위원은 “개인적으로 (우승한 후배들이) 너무 부럽다”며 “팀 암흑기 때도 열정적인 응원과 사랑으로 관심을 보이셨던 팬들에게 보답하는 우승”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오지환과 임찬규 등 암흑기 시절 LG와 함께한 선수들에겐 매우 간절한 우승일 것”이라며 “LG는 (투타) 밸런스가 좋은 팀이지만, 선발 투수들의 발굴 없인 왕조를 이루기엔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발전의 여지를 남겼다.
29년 전 우승 멤버들도 기쁨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LG에서만 뛴 이종열(50) 현 삼성 라이온즈 단장은 “너무 오래 걸렸다”고 웃으며 “우승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 29년 전 우승했을 때 느낌은 처음엔 극도로 좋았다가 한 번에 싹 가라앉았다. 약간의 허무함마저 느껴졌는데, 그래도 야구 선수라면 꼭 맛봐야 하는 감정”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LG와 삼성 간 선의의 경쟁도 기대했다. 이 단장은 “29년 만에 우승을 해준 후배들에게 격하게 감사하다. 앞으로 LG가 더 승승장구해 우승을 자주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서도 “지금은 삼성 단장을 맡고 있으니까 삼성이 더 잘해야 한다는 복합적인 감정도 든다. 삼성과 LG 모두 인기 팀이다. 두 팀이 잘하면 리그 자체가 좋아진다. 윈윈(win-win)했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LG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삼성은 올해 정규시즌 8위에 머무르며 ‘가을야구’ 무대를 놓쳤다.
1994년에 신인왕을 거머쥐고 그해 한국시리즈 정상까지 맛본 류지현(52) 전 LG 감독은 “LG 선배로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가오는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야구대표팀 수석코치로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한마디를 보탰다. 류 전 감독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줄곧 LG에서만 뛴 ‘원팀맨’으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진 LG 지휘봉을 잡았다.
1992년 입단해 2001년까지 LG에서만 투수로 뛴 차명석(54) 현 LG 단장은 “1994년엔 (4전 전승으로) 압도적으로 이겨 우승은 2년에 한 번씩 하는 줄 알았고,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고 회고하며 “근데 벌써 29년이 지났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우승이기 때문에 엄청난 희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LG, 롯데, KIA가 다른 팀들에 비해 인기도 많고 팬도 많은 팀이다. 그러다 보니 저희가 참 많은 질타도 받고 힘들었다”며 “이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가 눈물도 난다”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차 단장은 회사와 팀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유명하다. 그의 휴대전화 연결음으론 ‘사랑한다 LG’ 노래가 울려퍼지고, “가전제품은 LG 정품만 쓴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도 빠질 수 없었다.
LG 전신인 MBC 청룡 시절 데뷔(1985년)해 1990·1994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김용수(63) 전 LG 투수코치는 “우승은 모든 팀이 하고 싶어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어렵다. 한 번 끊어지면 다시 하기가 힘들다”며 “LG가 이번에 우승한 걸 계기로 2연패, 3연패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전 코치는 현역 때 프로야구 최초 100승-200세이브 고지에 오른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LG 구단 역사상 최초로 영구 결번(41번)식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이번 한국시리즈 MVP 오지환(33)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MVP라는 타이틀과 (팀이 약속한) 롤렉스 시계 같은 보상도 좋지만, 앞으로 더 팀을 위해 희생해주길 바란다”면서 “그래야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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