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팬이 아저씨가 됐다, 29년의 한이 풀리는 날, 잠실이 울었다 [LG 우승]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가 5차전을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1.13/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 트윈스 빗자루 청소부가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1.13/

[잠실=스포츠조선 김용 기자]잠실벌이 울음바다가 됐다. 29년 만에 흘려본 눈물. 슬픔이 아닌 기쁨의 분출이었다.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LG는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6대2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정규시즌 우승까지 차지한 LG의 통합 우승으로 2023 시즌 KBO리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1994년 이후 29년 간 우승을 하지 못한 LG가 그 '한'을 풀어낼 수 있을까에 모든 관심이 쏠린 시리즈. 우승은 커녕, 한국시리즈에 나간 게 21년 전인 2002년이 마지막이었다. 결국 우승반지를 끼지 못한 채 은퇴한 '레전드' 박용택의 루키 시즌 때였다.

분위기는 좋았다. 정규시즌을 여유있게 1위로 마치며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가졌다.

정규시즌 2위 KT 전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NC 다이노스의 선전으로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가며 LG에 유리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T의 한국시리즈 5차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LG 염경엽 감독이 KT 이강철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3.11.13/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1.13/

투-타 전력에서 전체적으로 LG의 우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KT의 선발진이 워낙 강했다. 반면, LG는 플럿코 없이 시리즈에 돌입했다.

1차전에서 믿었던 마무리 고우석이 무너지며 2대3으로 승리를 헌납하자 불안감이 증폭됐다. 2차전과 3차전 KT 선발은 외국인 원투펀치인 쿠에바스와 벤자민. 29년 만의 우승 꿈이 날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2차전 기적 같은 5대4 역전승이 나오며 LG가 살아났다. 8회 박동원의 믿기 힘든 역전 투런포가 터졌다. 이 홈런이 아니었다면, KT에 2연패를 당했다면, LG는 정말 힘들어질 뻔 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을 앞두고 65억원을 투자해 데려온 박동원이 승부의 향방을 바꿔버렸다.

3차전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양팀 모두 이 경기에서 지면, 우승은 없다는 듯 사생결단 총력전을 펼쳤다. 이 경기 역시 고우석이 무너지면서 역전패할 뻔 했다. 하지만 비FA 다년계약으로 124억원을 안긴 '캡틴' 오지환이 9회초 믿기 없는 기적같은 역전 스리런 홈런을 터뜨리며 8대7로 다시 뒤집어 이겼다.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 LG와 KT의 경기. LG가 KT에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팬들과 함께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LG 선수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3.11.13/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T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3.11.13/

3경기 연속 1점 차 승부. 3차전 후 분위기가 LG쪽으로 완벽하게 넘어왔다.

KT 선수들이 4차전부터 시리즈를 포기하는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LG는 5차전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선발 켈리가 1회 2사 1, 3루 위기를 넘기고 5회까지 1실점 역투를 펼쳤다. 야수 중에는 박해민이 펄펄 날았다. 3회 결정적인 선제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3-0으로 앞선 4회 2사 1, 2루 위기에서 KT 대타 김민혁의 안타성 타구를 그림같은 다이빙 캐치로 걷어냈다. LG 더그아웃은 환호했고, KT 더그아웃에서는 탄식이 흘렀다. 이날 경기의 승부처였다.

염경엽 감독을 필두로, LG 선수단이 정말 철저히 준비를 한 티가 난 이번 한국시리즈였다. 염 감독은 마지막 5차전 승기가 확실히 왔음에도 불구하고, 도루를 시도하고 희생 번트를 대며 KT를 압박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5회 박해민의 도루에 이은 김현수의 쐐기 2타점 적시타, 6회 박동원의 희생번트에 이은 문성주의 1타점 적시타가 이를 증명했다.

선수단, 프런트도 노력했지만 이번 가을 주인공은 바로 29년을 기다린 LG 팬들이었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엄청난 티켓 예매 전쟁이 벌어졌다. 1차전을 앞두고 열린 예매 사이트, 대기 인원만 15만명이 넘었다. 홈 잠실이고, 원정 수원이고 LG팬들이 가득 들어찼다. KT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잠실에서는 KT팬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LG팬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1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 LG가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악수를 나누는 이강철 감독과 염경엽 감독의 모습.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11.13/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가 5차전을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구광모 회장과 차명석 단장이 환호하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1.13/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T의 한국시리즈 5차전. LG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3.11.13/

예매 전쟁, 주차 전쟁 등 갖가지 전쟁을 이겨내고 잠실벌에 모인 2만여 팬들. LG의 우승이 확정되자 이게 현실이냐는 듯 엄청난 환호성을 쏟아냈다. 서로를 얼싸안고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역사적인 순간 순간을 휴대폰에 담기 바빴다. LG '승리의 노래'가 울려퍼지자, 잠실이 떠나갈 듯 '떼창'이 시작됐다. 어릴 적 LG를 좋아해 팬이 됐다, 어느덧 아저씨가 돼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는 이들이었다.

참 오래 기다렸다. 그만큼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날이었다.

잠실=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