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삽’도 못 뜬 세월호 추모공간…유가족 “정부 의지 있나”
내년 10주기 착공 여부 불투명
정부가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춰 완공하기로 한 희생자 추모공원이 착공조차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가 상승 등 영향으로 공사비가 늘었다며 정부가 6개월간 비용 적정성을 추가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당국은 국비가 투입되는 사업이라 비용이 적정한지를 가리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초 법령에 따라 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사업에 정부가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첫 삽’조차 불확실하게 된 점 등을 미뤄볼 때 사업을 추진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1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4·16 생명안전공원’ 조성사업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6개월간 ‘적정성 재검토’ 과제를 맡겼다. 4·16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정부와 안산시가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건립하기로 한 추모공간이다. 봉안시설 외에도 문화·편의 시설이 함께 있는 복합시설 건립을 목표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사업 주체인 안산시, 해양수산부가 기재부와 기본설계 총사업비 협의까지 완료한 사업이다. 올해 실시설계(실제로 공사 시행에 필요한 구체적인 설계도면)에 대한 총사업비 협의 과정만 넘기면 바로 공사 발주와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재부가 공사 목전에서 다시 비용이 적절한지 검토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착공 시점을 지연시킨 것이다. 국가재정법상 국가가 시행하는 건축 사업 비용이 200억원을 넘기면 사업 주체는 진행 과정마다 기재부와 총사업비를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기재부는 물가 인상으로 인해 총사업비가 상승한 것을 이유로 꼽았다. 당초 예상 공사비는 483억원가량이었는데, 최근 자재값이나 인건비 등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사업비 총액이 500억원을 넘었다.
애초에 예타 면제 사업…“정부의 의도적 지연” 의심도
이 때문에 해당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받도록 하는 기준(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고 지원 300억원 이상)을 초과하게 됐다. 기재부는 이를 근거로 사업비 적정성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사업비가 발목을 잡아 공원 건립이 지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2019년 최초 이 사업 계획을 확정하면서 총 495억원(국비 368억원·도비 43억원·토지비 84억원)을 들여 9962㎡ 규모의 시설을 참사 10주기인 내년까지 준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계안 등이 확정되자 예상보다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며 기재부가 지난해 건축 규모를 20% 축소하고 총비용도 483억원으로 줄여 진행키로 해수부와 합의했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착공 시기가 늦춰져 계획과 달리 내년까지 추모공간을 완공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여기에 착공 문턱에서 사업비가 발목을 잡으면서 10주기에 공사가 개시될지 여부도 불투명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업 비용 재검토가 꼭 필요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건축 사업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예타가 면제되는 사업이다. 당초부터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라도 예타를 받지 않는데, 사업 도중 총사업비가 예타 기준을 넘었다고 그에 맞춰 적정성 검토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적정성 검토가 일반적인 타당성조사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 사업의 경우 사업 도중에 총사업비가 500억원 기준을 초과하면 타당성 재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예타나 타당성 재조사는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적정성 검토는 사업비가 적정한지 여부만 검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사업이 무산되지는 않는다.정부는 현재까지 적정성 검토가 언제 끝날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유족들은 발만 구르고 있다. 정부자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고 신호성군 어머니)은 “각 유관부처들은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전화가 연결돼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데, 가족들은 어디에 얘기를 해야 하느냐”며 “정부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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