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한 줄 서기의 발명품, ‘김포구’

기자 2023. 11. 13. 20: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연애 시장에서도 모든 조건을 일렬로 줄 세워요.”

‘줄 세우는 사회’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연애 소재 예능 프로그램 영향이라는데, 그에 따르면 성격까지도 줄 세우기를 한단다. “MBTI에서 E(외향적) 성격이 I(내향적) 성격보다 높은 건가요?” 하고 묻자 “훠어얼씬 높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이 ‘일렬로 줄 세우기’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대학 입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온 국민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 잘한 순서대로 늘어선 채 평생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한국 사회다. 사회학자 오찬호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촘촘하게 일렬로 줄 세우는 입시제도가 어떤 차별의식을 만들었는지 지적한 게 10년 전이다. 그 차별의식은 한국식 능력주의가 됐고, 불평등을 줄이는 것보다 ‘누구를 앞에 세워야 하는가’를 따지는 게 정의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일자리에서의 한 줄 세우기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대기업 정규직은 임금부터 안정성, 사내복지, 조직문화, 재택근무, 출퇴근 교통의 편의성까지 모든 면에서 1등이다. 그 줄은 지방 변두리 영세기업까지 이어지는데, 하청의 하청에 비정규직, 파견직으로까지 좀 더 내려가기도 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어도 조직문화는 수평적일 수 있고, 근무제도라도 조금씩 개선할 수 있으련만 한국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감생심 지방 일자리에서 그런 조건은 탐내면 안 된다, 그런 게 좋으면 서울 대기업에 갔어야지 왜 여기 있느냐는 구박만 들을 뿐이다.

최근 전국을 들썩이게 한 ‘서울시 김포구’ 사태도 한 줄 세우기의 한 단면일 뿐이다.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지역 활성화 정책 대부분은 ‘서울 베끼기’다. 서울에 있는 일자리를 옮겨오고, 주거 형태를 가져오고, 교육, 금융, 소비, 관광 기능을 복제해서 서울에 가까워지려는 정책들인 것이다.

문제는 베끼기를 시도하는 동안 지역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주하고, 거기는 밀집하는 인구로 인해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베껴야 할 대상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베끼기 전략은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방도시들은 어딘지 아귀가 안 맞고, 한쪽은 늘 공사 중이고 한쪽은 공동화된 모습으로 똑같아져 버렸다.

물론 사람들조차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지역의 고유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거기 계속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왜 이런 모습들은 잘 안 보이고 ‘서울 베끼기’만 두드러질까? 두 가지 원인이 있겠다. 하나는 일단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야 한다는 욕망이 다른 모든 시도를 압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가로 정치적 지위, 기득권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다. 이 둘이 제대로 융합되는 현장이 바로 다음 총선일 것이다. 지역에 공항을, 고속철도를, 엑스포를 유치하면 미래가 있다고 최면 거는 공약들이 소비되고 나면 지역 현실은 임계점에 한발 더 다가설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시 김포구’는 나름의 혁신, 발상의 전환이다. 서울을 베끼느니 그냥 서울이 되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비난하지만 속으로 ‘왜 저 생각을 못했지?’ ‘지리적으로 조금만 가까웠어도’ 하고 한탄하는 지자체가 더 많다는데 나는 뭐라도 걸 수 있을 것 같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