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미숙아들 인큐베이터 멈춰 연이은 죽음…'연료 부족' 호소에도 국제사회는 방관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최대 병원 인근 공세를 적극 제지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연료가 고갈된 병원의 인큐베이터가 멈춰 미숙아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는 참변이 이어지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12일(이하 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환자 사망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며 알시파 병원이 "더 이상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WHO가 알시파 병원의 의료 전문가들과 연락을 취한 결과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고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됐으며 "병원이 전기와 물 없이 버틴 지 3일이 지났고 인터넷 연결도 매우 열악해 필수적 치료를 제공할 능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이 지역에서 진행 중인 총격과 폭격이 이미 심각한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전세계는 안전한 피난처가 돼야 할 병원이 죽음과 파괴, 절망의 현장으로 변한 상황을 좌시해선 안 된다"고 "즉각 휴전"을 촉구했다. WHO는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를 인용해 알시파 병원에 600~650명의 환자와 200~500명의 의료 종사자, 1500명의 난민이 머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병원 연료가 바닥나 인큐베이터를 가동할 수 없게 되며 내부에 있던 신생아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알시파 병원 외과 과장 마르완 아부 사다는 전날 신생아 2명이 죽은 데 이어 12일에도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AFP> 통신은 13일 유세프 아부 리시 가자지구 보건부 부장관이 전력이 끊긴 뒤 13일까지 총 6명의 미숙아와 9명의 다른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을 보면 의료진은 전기가 끊겨 더 이상 산소가 공급되는 따뜻한 인큐베이터에서 보호 받을 수 없게 된 30명 이상의 신생아들을 천으로 감싼 채 수술실 침상에 여러 명을 함께 눕혀 체온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아부 사다 과장은 병원 인근에서 전투와 폭격이 일어나고 내부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신생아 병동에서 아이들을 현재 보호하고 있는 수술실이 위치한 병동으로 옮기는 것부터 모험이었다고 매체에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의 습격으로 이스라엘 쪽에서 주로 민간인인 1400명 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 가자지구를 완전 봉쇄하며 식량과 연료 반입을 차단했다. 지난달 21일부터 식량, 물, 의약품 등을 실은 구호 트럭이 이집트로 통하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로 반입되기 시작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이용될 수 있다며 연료 반입은 막았다.
가자지구 병원들이 신생아용 인큐베이터 및 신장 투석 등 당장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전력 부족을 호소하며 연료 반입을 촉구했지만 이스라엘 쪽은 외면했고 결국 예고됐던 참사가 진행 중이다.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1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알시파 병원에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하마스에 의한 왜곡이 많다. 알시파 병원엔 전기가 있고 모든 것이 작동 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2일 알시파 병원 뿐 아니라 가자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병원인 알쿠드스 병원도 운영을 중단했다고 이슬람권 적십자 격인 팔레스타인 적신월사가 밝혔다. 적신월사는 성명에서 운영 중단은 "연료 고갈 및 정전 탓"이라고 밝히고 "일주일 간의 포위와 5일 간의 통신 및 인터넷 두절 상황에서 긴급한 국제적 도움 호소를 거듭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적신월사는 알쿠드스 병원이 "의료진, 환자, 피난민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폭격에서 스스로를 알아서 지키도록 방치됐다"고 규탄했다. 니발 파르사크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미디어국장은 미 CNN 방송에 병원이 "모든 방면에서 탱크로 포위"됐고 "대규모 직접 사격"이 있어 의료진이 병원에 갇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방송은 이스라엘군이 알쿠드스 병원 관련 질문을 받고 "질문한 지역 인근에서 하마스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라면서도 "민간인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며 법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며칠 간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소아암 병동이 있는 알란티시 어린이 병원과 알나스르 병원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이 떨어져 주말 동안 병원이 거의 비워졌다. 알란티시 병원장 바크르 가우드는 매체에 이스라엘군이 지난주 말 병원 1층 및 차량 여러 대를 파손한 뒤 대피로를 표시한 지도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상태가 가장 나쁜 환자는 알시파 병원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환자들은 최전선에서 떨어진 남쪽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가자시티에 위치한 또 다른 병원인 인도네시아 병원에서도 지난주 폭발이 발생해 병원 시설 일부가 손상됐다. 리시 부장관은 13일 <APF>에 가자지구 북부의 모든 병원이 운영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외과의사인 가산 아부 시타는 11일 영국 BBC 방송에 자신을 포함해 외과의 3명이 근무 중인 알아흘리가 현재 가자시티에서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병원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병원이 운영이 중단 되거나 일정 기간 통신이 두절되자 의료기관을 통해 사상자를 집계하던 가자지구 보건부는 주말 동안 추가 사상자 통계를 발표하지 못했다. 10일 오후 2시 기준 가자지구에서 1만 1078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이 중 4506명이 어린이, 3027명이 여성이다. 어린이 1500명을 포함해 2700명의 실종자가 보고됐고 2만 749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군은 12일 알시파 병원을 포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대피로 한 곳을 열어 두었고 연료 300리터(ℓ)도 전달을 시도했으나 하마스가 이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NN을 보면 모하메드 아부 살미야 알시파 병원장은 이스라엘 쪽이 연료를 제공하겠다고 한 것은 맞지만 연료 300리터는 발전기를 30분 가동할 분량 밖에 안 돼 의미가 없고 병원 주변이 전장이 된 상황에서 직원들이 두려워서 연료를 수거하러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료 전달을 막은 것은 이스라엘군의 전차(탱크)라며 연료를 "국제 적십자나 국제 기구를 통해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아부 사다 과장은 BBC에 알시파가 통상 하루에 2만 4000리터의 연료를 필요로 하며 발전기 하나만 가동한다 해도 하루에 9000~1만 리터의 연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병원 중환자실과 수술실이 전적으로 태양 에너지를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전력 부족으로 신장 투석이 필요한 환자 45명이 이틀 간 투석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연료 공급이 계속 차단될 땐 추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 대피로 지도를 공개했지만 주민들은 안전이 보장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무니르 알부르시 가자지구 보건부 국장은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저격수들이 알시파 병원 주변에 배치돼 내부 움직임에 발포하고 있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알시파 병원에 대피 중인 가자지구 주민은 이스라엘군이 병원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증언했다. 유엔(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1일 알시파 병원 주변에서 폭격과 무력 충돌이 강화돼 물탱크, 우물, 심혈관 시설, 산부인과 병동 등 주요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간호사 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OCHA는 일부 직원 및 피난민들은 병원 외부로 탈출했지만 다른 이들은 두려움 때문에, 혹은 물리적으로 탈출이 불가능해서 병원에 갇혀 있다고 덧붙였다.
직접적 공격이 없다 해도 현 상황에서 미숙아의 병원 밖 안전한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구호단체 팔레스타인의료지원(MAP)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성명에서 "중증 신생아 이송은 복잡하고 기술적인 과정"이라며 "구급차가 병원에 도달할 수 없고 이들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병원도 없는 상황에서 이송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징후가 없다"고 밝혔다. 단체는 "이 아기들을 살리는 유일하게 안전한 방법은 이스라엘이 공격과 알시파 병원 포위를 중단하고 병원에 연료가 도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사우샘프턴 프린세스 앤 병원의 신생아 전문의 케빈 고스는 BBC에 신생아를 안전하게 이송하려면 일반적으로 인큐베이터를 포함해 고도로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달 초 알시파 병원 앞에서 구급차가 폭격 당해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이 병원 강제 대피 및 인근 공격을 멈추지 않으며 국제 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미국은 에둘러 경고에 나섰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미 CBS 방송에 출연해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은 병원에서의 총격전을 보고 싶지 않다. 무고한 사람들,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총격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과 적극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알시파 병원 내부에 하마스 지휘소가 은폐돼 있다는 이스라엘 쪽 주장에 대해선 "특정 병원에 대한 구체적 주장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하마스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번 분쟁에서 병원 및 다른 민간 시설을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며 부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 격퇴 뒤 가자지구 통치에 대한 구상에서도 재차 엇박자를 냈다. 설리번 보좌관은 12일 CBS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밝힌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가 전쟁 뒤 통합돼야 한다는 발언을 인용하며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학교 교육 계획안이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며 그러한 조직이 가자지구를 맡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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