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동시간 개편 원점 회귀, 정부 ‘탁상 노동개혁’ 사과해야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브리핑을 열고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지난 3월 내놓은 ‘주 69시간’ 개편안에 대한 여론의 저항이 크자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보완한 것이다. 노동자 3839명, 사업주 976명, 국민 1215명 등 60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행 주 52시간제는 “획일적·경직적 제도”라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현장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장에 힘이 빠졌는데도 일부 업종 및 직종에 한해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여전히 문제가 뭔지를 모르는 듯한 정부의 태도에 유감을 금하기 어렵다.
노동부가 지난 6~8월 사업주 9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보면 최근 6개월간 ‘주 52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업주는 14.5%에 그쳤다. 이 차관이 “이런 부분을 세밀하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잘못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정 대화를 거쳐 노동시간 개편을 적용하겠다며 ‘불씨’를 남겼다.
정부가 개편 대상 업종·직종으로 거론한 제조업과 건설업,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공학·기술직 등은 노동시간을 오히려 줄여야 할 장시간 노동 사업장들이다. 이들 업종·직종에서 특정 시기 초과 노동의 필요가 있다면 현행 탄력근로시간제나 선택근로시간제를 활용해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약속했던 포괄임금 오남용 규제방안도 이번 발표에서 빠졌다. 정부가 ‘공짜 야근’과 과로의 주범인 포괄임금을 근절하지 않은 채 장시간 노동의 제도화에만 골몰하는데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번 난맥상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계와의 대화가 필수적인데 그간 ‘노조 때리기’에만 골몰했으니 잘될 턱이 없었다. 이번 사태에는 노동계를 ‘적대시’해온 윤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그나마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전면 중단을 선언한 지 5개월 만에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가 겸허한 자세로 노동 현안에 대해 진정성 있는 협의에 나서길 바란다. 그에 앞서 설익은 정책으로 혼선을 빚은 데 대해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은 채 탁상에서 만들어낸 노동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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