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열차' 탄 조성진…한 식구 된 '톱 클래스'와 완벽 균형

최다은 2023. 11. 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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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니체는 예술의 성격을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으로 구분했다.

전자가 비이성 영역에서 오는 도취적인 예술을 말한다면, 후자는 이성이 주관하는 균형적이고 조형적인 성격의 예술을 말한다.

2악장에서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사색적인 조성진의 선명한 대비가 이어졌고, 조성진은 충분한 루바토(템포를 자유롭게 연주)와 입체적인 프레이징으로 자신의 음악을 붓질하듯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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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 12일 공연
'조화와 절제의 지휘자' 페트렌코
복잡하고 현란한 작품에서도
한 치 오차 없이 악단 이끌어
여유로운 무대 선보인 조성진
다양한 연주 아이디어 펼쳐내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철학자 니체는 예술의 성격을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으로 구분했다. 전자가 비이성 영역에서 오는 도취적인 예술을 말한다면, 후자는 이성이 주관하는 균형적이고 조형적인 성격의 예술을 말한다.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이 두 가지 미학이 동시에 표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무대였다. 우선 살펴볼 점은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로 지명된 이후 처음 내한한 키릴 페트렌코(51)의 음악적 성향이다. 그는 감정에 몰입해 도취하는 연주보다 조화와 절제, 기술적인 지시를 통해 최적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게 음악적 이상향이라고 밝혀 왔다. 이날 보여준 음악이 그랬다.

1부에서 주목한 건 이런 페트렌코와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의 조화였다. 악단 상주음악가로 지명되고 첫 협주를 선보인 조성진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연주를 선보였다.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화려하지 않지만 테크닉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깊이 있는 난곡이다.

곡은 이례적으로 피아노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며 시작한다. 조성진은 특유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제 한 식구가 되어서일까, 몇 차례 연주한 작품이어서일까. 이날 조성진은 유독 자신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저 없이 표출했다. 평소보다 편안한 느낌을 전해주는 연주였다. 베를린 필의 꽉 차고 비옥한 소리는 협연자의 폭넓은 음색의 스펙트럼을 뒷받침했고, 촘촘한 구조 덕분에 템포와 다이내믹 측면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2악장에서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사색적인 조성진의 선명한 대비가 이어졌고, 조성진은 충분한 루바토(템포를 자유롭게 연주)와 입체적인 프레이징으로 자신의 음악을 붓질하듯 그려냈다. 3악장에서는 생생한 리듬과 힘찬 타건으로 생동감 있고 유려하게 대미를 장식했다.

하이라이트는 2부에서 연주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지극히 낭만적이고 자전적인 작품으로, 구분하자면 ‘디오니소스’ 성격의 작품이다. 곡은 제목대로 영웅의 일대기를 다룬다. 6개 파트로 나뉜 이 곡은 극도로 현란하고 팽창적인, 20세기 직전 독일 후기낭만주의의 꽃이다.

호방한 영웅의 기상을 뽐내듯 호른의 웅장한 선율이 돋보이며 초입부가 시작됐다. 이내 온갖 불협화음과 복잡하게 꼬인 반음계,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각 파트 악기들, 파트별로 다른 템포와 다이내믹 덕분에 전위적이고 일사불란한 느낌을 자아냈다. 페트렌코는 자칫 엉키고 혼잡해질 수 있는 이 대곡을 공학에 가까울 정도로 고차원적이고 심도 있게 조립해 나갔다. 종종 튀었던 금관이나 타악기 파트를 자제시킨 것도 그 일환이었다.

스타 목관 멤버들의 앙상블도 인상적이었다. 세계적인 클라리네티스트 벤젤 푹스, ‘플루트 거장’ 에마뉘엘 파위, 31년째 수석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일류 타이틀은 거저 얻는 게 아니란 걸 보여준 50분이었다. 그럼에도 호불호는 갈렸다. 일각에서는 페트렌코의 지휘가 지나치게 통제적이라 ‘완벽하지만 감동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독일 후기낭만주의 대가인 크리스티안 틸레만처럼 감정적으로 전달력 있는 연주가 이 곡에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베를린 필 열차’를 이끌기 시작한 페트렌코가 그려낼 이상향이 궁금해졌다. 그는 완벽주의와 자연스러움 사이 또 다른 차원의 ‘중용’을 찾을까. 아니면 확실한 완벽주의로 밀고 나갈까.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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