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 "난 근본 없는 음악가…새롭게 하자는 생각으로 작업"
"전통음악 할 땐 전체 다이내믹에 신경…내 안에 어떤 이야기 있는지 탐험"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세계에 한국 콘텐츠 저력을 알린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자신을 "근본 없는 음악가"라고 지칭했다.
정재일은 세종문화회관 기획 공연으로 다음 달 15∼16일 대극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고 그동안 작업해온 영화·드라마 음악, 올해 발매한 솔로 앨범 '리슨'과 디지털 싱글 '어 프레이어', 20년 넘게 함께해온 전통음악을 들려준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20분 분량의 메들리로 편곡해 선보인다.
공연을 한 달가량 앞둔 13일 세종문화회관 오픈스테이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재일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음악 세계에 관한 질문을 받자 배움이 짧다고 자신을 낮추면서 늘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정재일은 "중학교 때 서울재즈아카데미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안 다녔다. 그래서 고등교육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며 "지금도 자신감이 없을 때가 많다. '내가 교육받았으면 더 잘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근본 없이 음악을 해도 새롭게 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99년 한상원, 이적 등이 속한 프로젝트 그룹 밴드 '긱스'로 데뷔한 정재일은 개인 음악 활동보다는 영화·드라마 음악감독, 대중음악 프로듀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영난으로 내년에 문을 닫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의 음악감독으로도 한때 활동했다.
그가 작업한 작품은 '기생충'과 '오징어게임'뿐만 아니라 '늑대의 유혹', '바람', '해무', '옥자', '브로커' 등으로 화려하다. 패닉, 박효신, 아이유 등 유명 가수의 작곡과 프로듀싱도 맡았다.
정재일은 "제 많은 작업이 막 고뇌해서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젝트를 통한 것들이어서 그때그때 맞는 어법을 찾았다"며 "예를 들어 필름(영화)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음악으로 통역해주는 통역사 일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무대 뒤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신을 여겨왔다는 정재일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꿈을 접으려던 무렵 명문 클래식 레이블 데카의 제안으로 올해 2월 피아노 솔로 앨범 '리슨'을 발매하게 됐다고 했다.
"팬데믹을 겪었고, 전쟁도 겪고 있잖아요. 수많은 작별을 보면서 '왜, 무엇을 잘못해서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생각했어요. 듣질 않기 때문이죠.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니까요. 지구도 맨날 아프다고 하는데 모른척하다가 이렇게 돼버렸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많이 하던 와중에 앨범 작업에 돌입했어요."
정재일의 음악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악이다. 그는 데뷔 이후 국악을 접목한 음악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이달 공개된 디지털 싱글 '어 프레이어'도 오케스트라와 소리꾼, 장구, 꽹과리 등 국악을 크로스오버한 것이다. 정재일은 이 곡을 지난달 1일 영국에서 런던 심포니와 협연의 마지막 곡으로 선보이며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이번 단독 콘서트에서 선보일 연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도 국악이다.
무대에는 대금 연주자 이아람,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 소리꾼 김율희, 사물놀이팀 느닷(NewDot), 아쟁 연주자 배호영 등 국내 정상급 국악 협연자들이 오른다. 여기에 정재일이 직접 꾸린 25인조 오케스트라 더 퍼스트가 합류한다.
정재일은 "꼬마 때부터 전통음악과 사랑에 빠졌고, 깊이 들어가면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판소리, 무속음악, 정악에 빠져들었다"며 "이번 공연은 20년간 함께해온 전통음악 연주자들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악기로 음악을 할 때는 록밴드처럼 더 자유로워진다.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다이내믹에 신경을 쓰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재일은 음악을 만들면서 처음부터 국악과의 접목을 목표로 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새로운 음악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할 때 일종의 아이디어처럼 국악의 요소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내레이션한 '2021 피포지(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테마곡 '웨이크 업 콜'을 만들 때는 환경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대의 사운드를 찾던 중 조선시대 궁중음악 '수제천'을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정재일은 어떤 작품에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든다면 어떤 음악을 내놓겠냐는 질문에도 "전통음악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물론 현대음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내년부터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맡는 지휘자 얍 판 츠베덴으로부터 협업도 제안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협업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클래식 전공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얍 판 츠베덴의 격려에 용기를 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제가 맨땅에 헤딩하며 쓴 곡들이 너무 없었어요. 테마를 위한 곡이나, 주인공을 위한 곡을 주로 작업했죠. 지금은 제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탐험하는 중이에요. 어렸을 때 했던 헤비메탈도 할아버지가 되면 못 하니 빨리해봐야죠."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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