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도 우도 아니고 앞으로?…‘제3의 길’은 어디에

이정애 2023. 11. 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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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이정애

스페셜콘텐츠부장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후위기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의 ‘매장 내 일회용 종이컵 사용금지 조처’ 폐기 등을 비판하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정책을 수립·집행하기 위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자”고 정부 여당에 제안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김포시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 등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던진 이슈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던 이 대표가 모처럼 자기주도형 어젠다를 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

반향은 없었다. 국회 다수당, 제1야당 대표의 제안에 여당은 일언반구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도 여당을 비판하는 논평 정도로 이 대표 발언을 처리했다. 이 대표가 내년 총선 이슈로 기후위기 대응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 조처 폐기를 두고 보수언론까지 ‘아무리 선거용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비판하니, 여당 공격용 카드로 ‘기후위기 대응’을 꺼낸 것일 뿐이라고들 보는 분위기다. 하기야 이 대표 제안 이후 민주당이 기후위기 대응 후속 조처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 대표 말에 어찌 무게가 실리겠는가. 하다못해 ‘내년 총선 비례대표 앞 순번에 기후위기에 대응할 전문가를 배치하고자 한다’는 언급이라도 나왔다면 이 정도 ‘무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폭염과 폭우, 가뭄이 일상화하고, 반지하에 살던 서민이 폭우에 목숨을 잃는 등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하게 닥치고 있다. 기후위기와 심화하는 불평등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데, 정작 이 의제를 책임 있게 풀어갈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적 비극이다.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표만 되면 다 하겠다’고 덤비는 여당이나, 그런 여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야당이나 한숨 나오긴 매한가지다. 어느 당에도 마음 두고 있지 않다는 여론(무당층)이 30% 안팎을 오가며, 역대 최대치를 찍은 지도 오래다.

팔짱 낀 채 돌아앉은 무당층을 잡아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 청년세대의 무당층 비율이 40~50%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청년층의 마음을 돌리는 쪽에 좀 더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청년층은 그 어느 세대보다 기후위기에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거대 양당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통해 청년들의 표심을 사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정권 심판론 대 정권 안정론, 그저 ‘저쪽을 막기 위해 이쪽을 찍어야 한다’고 갈라치기하는 손쉬운 전략에 안주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영남 중진 수도권 차출론’과 ‘86 용퇴론’ 등 4년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꺼내 들고 ‘혁신’이라 포장하고 있다. ‘고인 물’이 지긋지긋한 것도 사실이지만, 수도권 시민들은 영남 중진이 수도권에 나오기만 한다면 무조건 쌍수 들고 환영한단 말인가. 유권자들이 86세대가 물러나고 97(70년대생 90년대 학번) 이후 세대가 나서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거대 양당이 증오하고 대립하며 공생하는 이런 정치를 끝내겠다며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별반 달라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친윤만, 친명만 아니면 된다’는 것 외에 어떤 비전이 있는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앞으로”를 외치다 여당에 합류한 어느 의원의 구호만큼이나 알쏭달쏭하다. 탈이념·탈진보·정의당 해체를 통한 재창당을 주장한 정의당 내 일부 인사가 남녀 갈라치기, 소수자 혐오에 앞장서온 국민의힘 쪽 신당 세력과 함께할 수도 있다고 하는 걸 보니 더욱 헷갈린다. ‘품을 넓히겠다’는 취지로 선해해보지만, 그렇게 선거에 승리해서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는 도통 모르겠다.

22대 총선이 어느덧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곳도 저곳도 온통 수싸움, 유불리 계산뿐이다. 김대중·노무현 등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왜 아직도 호출되겠는가. 유권자들은 지금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로 투표장에 나가길 원하고 있다.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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