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장관 “한국 측과 협의”…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미국 속내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한국 측과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13일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SCM)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도 북한의 하마스식 도발 저지를 위해 9·19 군사합의를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미가 이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이같이 답했다.
오스틴 장관의 답변은 미 정부 측의 원론적 입장에 가깝다. 미국 정부는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즉답을 피하고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해 왔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정례브리핑에서 ‘효과적인 한국 방어를 위해 미국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문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나 개정에 미국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논쟁을 부르는 사안이라 미국의 지지 내지 공감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지난달 27일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를 정부 내에서 협의 중이며, 미국도 효력정지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9·19 군사합의는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군사연습과 비행을 금지하고 해상 완충구역 내 함포·해안포 실사격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일부 철수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데도 합의했다.
윤석열 정부는 비무장지대 인근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일부 합의 내용이 한·미가 가진 군사 자산을 활용한 대북 정찰 역량을 저해한다고 비판해왔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 측의 합의 위반 사례가 계속 보고돼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지난달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에 대해 “군 입장에서는 전투력 운영에 있어 제한 상황이 없을수록 좋다. 그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반면 접경지역에서의 도발 행위를 금지한 합의가 남북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북한의 핵·미사일, 장사정포 등에 대한 대응전략은 소형 로켓을 활용한 하마스식 기습공격과 다르며, 북한은 부대원 3만명 규모의 무장집단인 하마스와 달리 유엔에도 가입한 ‘국가’라는 점에서 동일시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미 외교가와 당국자 사이에서는 9 ·19 군사합의가 현재 유명무실하더라도 한국이 먼저 효력정지를 선언하는 것은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견해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9 ·19 군사합의 지속 여부와 무관하게 북한 대응전략을 짜고 있으며, 도덕적 판단의 준거점이 되는 합의가 존재하는 편이 국제사회 여론전에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장성급군사회담 수석대표로서 9.19 군사합의 체결에 참여한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한국에 주둔하는 유엔군사령관은 한반도 정전 상태를 유지할 책임이 있는 존재”라며 “정전 상태 유지라는 면에서 9.19 군사합의는 본인이 하고픈 일을 남북한 군부가 한 것이나 다름없다 ”고 말했다. 그는 “합의로 인한 군의 감시·정찰활동 저해 문제는 합의 체결 당시에도 철저히 검토했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도 2018~2019년 SCM에서 합의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국자는 “다만 합의가 효력정지되도 한국이 접경지대에서 더 많은 정찰 업무를 맡는다는 의미이니 미국은 손해도 보지 않는다”며 “결국은 한국 측의 입장을 존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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