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와 증여세: 불평등은 경제에 좋을까 나쁠까 [마켓톡톡]
자원 분배 과정서 불평등 형성
상속‧증여‧양도소득세, 재분배 역할
韓, 기업 자산 불평등 상당히 심해
최상위급 상대적 빈곤율도 골칫거리
정부가 상속‧증여세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 세력들이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방지하려는 이유는 두 세력 모두 저마다의 철학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다. 경제 불평등은 경제에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한국의 현실은 어떤 것일지도 알아봤다.
■ 경제적 불평등의 형성=다시 상속‧증여세 논란이 일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상속세 체제를 한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이 주식 양도세 기준을 현행 종목당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완화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추경호 부총리는 "결정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 4월 'OECD 국가들의 순자산 과세의 역할과 설계'라는 보고서에서 "부자들이 고수익 투자 기회, 고도의 금융 노하우 및 투자 조언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어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며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등 개인 자산에 과세하는 국가는 순부유세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세가지 과세로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은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학문이다.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생산‧분배‧소비할지를 선택하는 게 경제학의 존재 의미다. 경제적 불평등은 이 과정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평등한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면, 누진적이고 이중과세 측면이 존재하는 상속‧증여‧양도소득세와 같은 인위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세금을 일차원적으로 보면 공정하지 않다. 개인의 자산 수준에 따라서 같은 1억원이란 자산을 갖고 있더라도 누구는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내고 누구는 안 내기 때문이다. 특정인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되고, 그 반대급부로 상대적 빈곤이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찬반양론이 있다.
■ 찬반양론➊ 불평등 옹호론=경제적 불평등이 오히려 경제에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적으로는 소수다. 경쟁과 자유를 높이 사는 이들은 불평등이 뚜렷한 사회일수록 공정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부를 재분배하려면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일정 부분 침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논리는 신자유주의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이들은 또한 불평등이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인센티브로 작용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힘이 된다고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4년 2월 '재분배, 불평등 그리고 성장'이라는 보고서에서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더 많은 부의 재분배 정책을 쓰고, 이는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다만,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에 좋아서 그대로 두자는 게 아니라, 불평등이 많으면 재분배가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경제 성장이 이뤄진다는 논리다.
■ 찬반양론➋ 불평등 반대론=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빈곤의 악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불평등과 빈곤이 1대1로 대응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평등이 심할수록 빈곤율은 높아진다. 에릭 톨백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2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기 성장률과 경제적 불평등이 0.5~0.8%포인트 음(-)의 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리사 스톨젠버그 플로리아대 범죄학과 교수는 미국 91개 도시의 범죄 통계를 분석해 경제적 취약계층이 부족한 일자리나 자원을 차지하지 못한 데 따른 적대감으로 범죄 동기가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2012년 7월 "경제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투자는 소외계층의 0~5세 아동과 가족에게 투자하는 것"이라며 빈곤층을 위한 사회 지출이 경제적으로 나은 결과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의 상황=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최고 50%다. 상속세가 전체 세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기준으로 1.9%로 OECD 국가들 기준으로 최상위급이다. 반면, 상위 10%의 가계순자산 비중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27일 공개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및 격차 실태와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 기준으로 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자산의 10.9%를, 상위 5%가 29.3%를, 상위 10%가 43.2%를 차지하고 있다.
OECD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상위 10%가 전체 가계 자산의 79.0%를 소유하고 있고, 덴마크는 64.0%, 독일은 60.0%, 일본은 41.0%를 소유하고 있다. 자산에는 부채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규모로만 보면 우리나라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소득 상위 20%가 가계대출 잔액의 53%를 점유하고 있어서다. 이는 상속세 등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줬다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상속‧증여‧양도소득세 3법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가계의 경제적 불평등은 상당 부분 해소했을지 몰라도, 기업의 상속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고, 상대적 빈곤율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기업의 경제력 집중도는 한국이 높다. 독일은 전체 가계 자산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로 우리보다 10%포인트 이상 크지만, 독일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여러 차례 차지한 소프트웨어 회사 SAP는 닥스30 지수에서 9%대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20대 재벌 그룹의 상장사들은 지난 2015년 8월 18일 기준으로 코스피 시가총액의 61.0%를 차지했고, 그중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시가총액의 31.0%를 차지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2023년 3월 3일 기준으로도 코스피 시가총액의 31.0%를 차지해 집중도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재벌닷컴의 2018년 분석에 따르면 당시 100대 주식 부자 중에서 71.0%가 상속 부자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 비율)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개인의 기본권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조차 빈곤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8%로 OECD 37개국 중 2위, 한국은 16.7%로 4위였다. 우리 상대적 빈곤율은 2015년 17.5%, 2016년 17.6%, 2017년 17.3%, 2018년 16.7%, 2019년 16.3%에서 2021년 15.1%였다. 66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2019년 한국은 상대적 빈곤율 43.2%를 기록해, 유일하게 상대적 빈곤율이 40%를 넘은 OECD 국가였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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