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없는 곳, 근로시간 협의도 힘들 것”…산업현장 반응은 [尹 노동개혁 원점 재검토]

김범수 2023. 11. 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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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선택권 일부 부여에 아쉬움
中企 “노사 위해 유연화 더 풀어줘야”
국내 산업현장에선 연장근로 관리 단위 선택권을 일부 업종·직종에만 부여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이번에 발표한 개편 방향은 근로환경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규모가 크고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엔 업종·직종을 떠나 합리적인 근로시간 조정이 이뤄지고 있어서 이번 개편 방향에 큰 동요가 없는데, 노조가 없거나 작은 기업들은 ‘최소한의 유연성이라도 필요하다’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게임 발매 직전 살인적인 야근 강행군을 하는 ‘크런치 타임’ 관행으로 악명높은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13일 “큰 게임사들은 노조가 많이 생기면서 이전처럼 장시간 근로시간을 유지하지 않는다. 크런치 개념은 물론이고 야근도 거의 사라졌다”며 “다만 중소 게임사들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생존 문제도 있어서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고, 노조가 없는 곳은 회사와 근로시간 협의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은 기업들이 많은 업계에선 포괄임금제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중대형 게임사들은 포괄임금제를 거의 폐지했지만 소형 기업은 아직 유지하는 곳이 많다”며 “포괄임금제를 하지 않는 회사들은 추가근무시 수당을 줘야해서 야근을 많이 못 시키는데 어떤 회사는 야근을 많이 하면 ‘업무를 다른 사람과 분담하라’는 경고메일까지 온다”고 지적했다. 반면 포괄임금제를 택한 작은 기업들은 여전히 ‘워라벨’이 깨지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게임·IT업계는 유연근무제가 널리 활용되고 있는데, 작은 회사들은 적기에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없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대기업들은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미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 합리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인데, 특수한 상황으로 노사 협의 자체가 힘들다는 반응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요즘 수주가 늘어나 일감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주 52시간 유연화는 필요한 상황”이라며 “일부 업종에 한해 유연화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치는 환영할만 하지만 노사 합의 등 단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여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도 “평소 기준 내에서 교대근무를 실시하고, 정기보수 등 특수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노사합의에 따라 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번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서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건설업계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업무 특성상 날씨·기온 등이 적절한 때에 집중 근무하면 업무 효율이 향상될 것이지만 최근 건설노조의 불법행위가 부각되면서 노사 협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미 여러 곳에서 태업과 잔업 불이행 등으로 노조가 실력 행사를 하는 사례가 많은데, 근로시간 개편안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장기 프로젝트가 많고 실험이 다반사인 대형 제약회사도 사정은 비슷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연구개발 분야에선 실험을 지속해야 해서 탄력 근무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고 했고, 또다른 관계자는 “1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위해 오늘 추가근무하면 내일 덜하는 식으로 이미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시간 유연화 방향성에도 박수를 보냈다.

볼트 등을 생산하는 신진화스너 정한성 대표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모두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주 52시간으로 묶어놓으니 기업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근로자는 월급을 더 가져갈 수 없어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왕 근로시간 유연화 얘기가 나왔으면 더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인 이정한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2·3차 벤더로 납기를 못 맞추면 사업을 못한다”며 “외국인 근로자들도 일을 더 안 주면 떠나겠다고 할 정도다. 뿌리업종엔 유연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재영·이진경·박세준·김범수·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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