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속 배움, 꿈이 싹텄다···‘교도소 수능’ 보는 소년수들
문을 둘러싼 창살. 그 틈으로 엿본 책상들 위에는 ‘수능특강’ 자료와 형형색색의 형광펜 묶음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국어 시험지에 지문 요약 필기를 빼곡히 해 놓았다. 수학 공식으로 가득 채워진 공책도 보였다. 얼핏 보면 평범한 고등학생의 책상, 그러나 그 앞에는 수감복을 입은 소년수들이 앉아 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3일 앞둔 13일, 서울 남부교도소 ‘만델라 소년학교’를 찾았다.
지난 3월 문을 연 만델라 소년학교는 17세 이하 소년 수형자 교육시설이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절대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말을 교훈으로 삼는다.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소년수 36명 중 10명이 오는 16일 수능에 응시한다.
소년수들은 평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교과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춰 진행된다. 지난 9월부터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연세대 2학년 정명주씨(20)는 수업 첫날 영어단어 빙고(bingo) 게임을 했다. 정씨는 “선물로 고작 ‘박수’를 받겠다고 소년수들이 진짜 열심히 참여하더라”고 말했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청이 주관하는 모의고사를 치렀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고교 시절과 대학 생활을 궁금해하는 소년수들이 많다. 수능 공부를 시작한 이후 이들에게는 요리사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꿈이 생겼다. 내년 4월 출소 예정인 한 소년수는 물리학과나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려면 수능에서 몇 점을 받아야 하는지 교사에게 물었다.
오는 16일 소년수들은 소년학교 안에 설치된 시험장에서 4교시까지 수능을 치른다. 수능 응시수수료는 서울시교육청이 전액 지원한다. 내년 출소가 예정된 소년수 4명은 대학에 합격하면 복무 기간을 마친 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김종한 교장(서울남부교도소 사회복귀과장)은 “수능 점수가 잘 나오지 않더라도 또 범죄의 길로 갈 수 있는 소년수들에게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며 “사회에 나가면서 도전도 해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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