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생태법인’ 제주남방큰돌고래

오창민 기자 2023. 11.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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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중지 소송을 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이다. 멸종위기종이자 1급수 환경지표종인 도롱뇽의 서식지 천성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 당사자로서 도롱뇽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과 재판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연물이라는 이유였다. 2018년엔 문화재청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하는 산양들이 소송을 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패소했다. 도롱뇽이나 산양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생태법인은 생태적 가치가 큰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사단법인(일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들이 결합한 단체)이나 재단법인(특정한 목적에 바쳐진 재산으로 결합한 단체)의 법적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아르헨티나는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을 ‘비인간 인격체’로 지정해 대리인이 법원에 ‘인신보호’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뉴질랜드는 황거누이강을 법인화했다. 황거누이강법인은 기업처럼 사무실을 두고 강을 오염시키는 기업이나 사람을 상대로 손배소 소송을 건다. 볼리비아는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어머니의 대지법’을 제정했고,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다.

제주도가 국제보호종인 제주남방큰돌고래의 법인화를 추진한다고 13일 밝혔다. 생태법인 제도를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나온 이 돌고래는 제주 앞바다의 환경 상태를 판단하는 척도다. 불법 포획돼 돌고래쇼에 동원됐다가 서울대공원에서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도 이 종이다. 연안 오염과 해양 쓰레기 등으로 매년 개체수가 줄고 있지만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자연에서 존재하고 진화할 권리 등을 얻는다. 별 이상한 단체도 사단법인으로 지정되고, 심지어 돈과 자본조차 재단법인으로 인정돼 ‘인권’을 누리는 마당에 그보다 더 훨씬 소중한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생태법인 제주남방큰돌고래가 환경 보호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제주 연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제주남방큰돌고래. 핫핑크돌핀스 제공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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