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유연화' 찬성 54%…정부 "구체안은 노사정 대화로"

곽용희 2023. 11.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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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개편 설문
'바쁠 때 몰아서 일하기' 공감대
"제조·건설업에 연장근로 수요"
업종·시기 안 정해…시행 미지수
경총 "3월案에 못 미쳐 아쉽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왼쪽)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개편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고용노동부가 13일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의 핵심은 모든 업종·직종이 아니라 노사가 원하는 업종·직장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주일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업종·직종을 명시하지 않은 데다 실태조사,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실제 근로시간 개편이 이뤄질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계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업종·직종에 적용”

고용부 설문조사를 보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주일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동의한다’가 ‘동의하지 않는다’보다 국민, 근로자, 사업주 대상 조사 모두에서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특히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일부 업종·직종에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선 국민의 경우 54.4%가 ‘동의한다’고 밝혀 비동의 비율(23.9%)보다 월등히 높았다. 근로자 대상 조사(동의 43%, 비동의 25.2%), 사업주 대상 조사(동의 47.5%, 비동의 21.3%)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나타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언론사 간담회에서 “노사, 국민 모두 동의 비율이 비동의 비율보다 약 20%포인트 높다”고 밝혔다.

현행 주 52시간제와 관련,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업주는 14.5%에 그쳤다. 하지만 업종별로는 차이가 있었다. 업종 중에선 사업시설 관리, 사업 지원·임대 서비스업(32.6%)과 제조업(27.6%)에서, 직원 수 기준으로는 100~299인 사업장(40.3%), 300인 이상 사업장(30.5%), 30~99명 사업장(30.4%)이 높게 나타났다.

연장근무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한 업종을 묻는 항목에선 근로자 기준으로 제조업(55.3%)과 건설업(28.7%), 직종으로는 설치·정비·생산직(32.0%), 보건·의료직(26.8%)에서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특히 근로자 본인이 속한 업종에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제조업 63.6%, 건설업 55.5%에 달했다. 제조업에선 정당한 대가를 전제로 주 64시간을 넘겨 근로할 의향이 있다는 근로자 비율도 14.1%였다.

정부는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더라도 주당 최장 근로시간 상한선 등을 설정해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보호 제도와 관련해 근로자들은 ‘주당 상한 근로시간 설정’(55.5%),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42.2%)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시 1주일 상한 근로시간으로는 ‘60시간 이내’라고 응답한 근로자가 75.3%에 달했다.

근로시간 개편 이뤄질지는 불확실

설문조사에서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확인됐는데도 고용부가 구체적인 업종 및 직종을 선정하기 위해 추가 실태조사와 사회적 대화 등을 거치겠다고 한 것은 올초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했다가 ‘주 69시간 근무’ 논란으로 역풍을 맞은 영향이 크다. 주 69시간은 일시적으로 특정 주에만 나타날 수 있는 최장 근무시간이었지만 이런 설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으면서 여론이 악화했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정부 모두 여론에 예민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점을 고려해도 정부가 구체적인 업종·직종을 제시하지 않은 건 ‘기대 이하’라는 비판이 많다. 일각에선 ‘맹탕 개혁안’이란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근로시간 개편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이날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기로 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제조업·건설업 등을 (근로시간 개편이 필요한) 일부 업종으로 꼽았지만, 이는 일부가 아니라 사실상 전부”라며 “이번 정책에는 노동시간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3월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 못 미치는 내용”이라며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 않아 아쉽다”고 논평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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