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몰락시킨 중동전쟁, 이번엔 누구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정의길 2023. 11. 1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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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미국은 3중고에 처해 있다. 가자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의 대결이다. 1970년대의 중동전쟁은 소련을 몰락시키는 방아쇠가 됐는데, 이번 가자 전쟁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12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폭격 직후 가자지구의 무너진 건물 틈 사이로 포연이 올라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아프가니스탄이 제국의 무덤이라지만, 중동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은 1차 대전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 인도까지 잇는 대영제국의 판도를 확실히 하려고,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허용하며 중동을 분할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에 따른 팔레스타인 분쟁은 중동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상실케 했다. 영국은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로 발발한 2차 중동전쟁에 개입했다가 완전히 제국의 반열에서 탈락했다.

소련도 1973년 10월6일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의 선공으로 시작된 4차 중동전쟁인 욤키푸르 전쟁으로 발발한 오일쇼크로 몰락의 길로 갔다.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 서방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금수를 단행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으로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등 전후 서방 자본주의 체제는 최대 위기에 빠졌고, 불황은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마침 소련은 시베리아 유전이 터져,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섰다. 소련은 비싼 석유값에 취해 제3세계 진출을 가속화했다. 그 정점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다. 속을 뜯어보면 다른 면도 있었다. 소련은 1960년대부터 생산성 저하로 체제 개혁이 필요했는데, 오일쇼크에 취해 국력을 과잉전개했다.

반면, 미국은 굴뚝산업 등을 신흥국들에 넘기고는 지식 기반 첨단산업으로 이행했다. 1980년대 초반 석유값이 떨어지자, 소련은 심각한 체제 경화에 시달렸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를 포기할 정도로까지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에 나섰으나, 결국 붕괴의 길로 갔다. 미국의 소련사가 스티븐 코트킨은 오일쇼크는 소련에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일극체제를 선포하는 1991년 걸프전도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의 시작이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걸프전으로 봉쇄한 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적인 마드리드 평화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이란을 배제한 것이다.

이란을 견제하던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걸프전으로 약화되고, 이란이 역내 영향력을 증대했는데도 중동 질서 재편에서 제외됐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반이스라엘 세력을 지원했다. 하마스는 지지부진한 오슬로 평화협정에 불만과 반대를 표하고, 더 나아가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서안 등 점령지에서 정착촌을 늘린 강경우파 성향 이스라엘 주민들의 오슬로 평화협정 사보타주를 야기했고,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결국 1995년 극우파에 암살됐다.

2001년 9·11 테러에 이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후세인 정권 제거는 거대한 세력 공백을 야기하면서 이슬람국가(IS) 등이 발호하게끔 만들었다. 이란은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역내 영향력을 더 키웠다.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이란과 국제핵협정을 맺고, 중동 문제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5년 이란과의 국제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극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돌아섰다.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수교하는 아브라함 협정도 추진했다.

이스라엘한테는 이미 안보 위협 세력이 아닌 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 국가를 대상으로 한 아브라함 협정은 오히려 이란과 팔레스타인만을 자극했다. 2022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사우디의 계산도 달라졌다. 사우디는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자, 최대 무기인 유가 결정력을 강화하고자 러시아와 협력하고,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도 수교를 복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의 중국 접근을 막으려고, 사우디에 안보공약을 제공하겠다며 아브라함 협정을 밀어붙였다. 서안 정착촌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 봉쇄를 강화하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정권의 준동을 모른 척했다.

그 결과가 하마스-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다. 미국은 가자 전쟁의 확전을 막아야 한다. 그 열쇠는 이란이다. 이를 풀려면, 이란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관여를 느슨하게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불가능한 과제다. 가자 전쟁은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를 군사 점령하는 형태의 ‘가자 남북분단’이 될 공산이 크다. 주변 지역의 장기적 저강도 전쟁을 의미한다. 미국은 3중고에 처해 있다. 가자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의 대결이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에서 미국의 이중 잣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드높다.

1970년대의 중동전쟁은 소련을 몰락시키는 방아쇠가 됐는데, 이번 가자 전쟁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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