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기업` 매출이 5900만원?… `파두 사태`에 흔들리는 IPO시장
최근 상장 기업, 실적 부진 나타나
투자자들 "예비심사 소홀했나"
기업가치 1조5000억원으로 상장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파두의 실적이 당초 전망치를 크게 밑돌면서 주가가 연일 폭락했다. 상장한지 겨우 3개월만에 이같은 일이 벌어지자 투자자들은 실적 부진을 숨기고 상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뒤늦게 알려진 '1조기업' 파두의 2분기 매출은 5900만원에 불과했다. 파두의 2분기와 3분기 합산 매출은 4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파두가 상장 전 제시한 연매출 예상치는 1200억원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지난 7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기업공개(IPO)를 위한 증권신고서에는 매출 급감 전망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파두의 상장 예비심사를 맡은 한국거래소와 상장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에 책임을 묻고 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파두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0.37% 오른 1만904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한때 10%까지 반등했지만 이후 힘을 받지 못한 채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앞서 이틀 연속 급락한 이후에도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모양새다.
파두의 폭락은 지난 8일 장 마감 후 공시를 통해 공개한 실적 때문이다. 올해 8월 상장 이후 처음 공개한 분기 실적은 예상과는 달리 크게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모 당시 공개되지 않았던 올해 2분기 매출은 5900만원에 불과했고, 3분기 매출은 3억21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 감소했다. 회사는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로 110억원을 제시했으나, 3분기에만 148억2100만원의 영업 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다음날인 9일 투자자들은 파두 주식을 던졌고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다음날에도 21.93% 하락했다. 공모가 3만1500원에 상장 후 4만500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1만원대로 고꾸라진 것이다. 상장 당시 1조5000억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1조원이 붕괴되며 9000억원 초반대로 떨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파두는 입장문을 통해 "올해 2분기에 기존 고객들의 발주가 취소됐으나, 이는 단기적인 재고조정으로 3분기부터는 다시 구매가 재개될 것으로 예상했다"며 "여기에 신규 고객들이 더해진다면 3·4분기 실적이 달성되고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봐 신사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상장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갑작스러운 고객의 발주 중단 등은 예상이 힘든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 어떤 부정적인 의도나 계획 등이 없었다"며 "이익 미실현기업으로 관련 법규에 근거해 요구되는 검토 및 입증 절차를 통해 상장돼 부정적인 요소가 관여할 수 없는 적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해명에도 개인 투자자들은 상장주관사의 허술한 실사와 거래소의 상장심사 부실로 인해 일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고 토로했다. 한 주식 커뮤니티의 사용자는 "1조짜리 회사 매출이 구멍가게 수준이라니 이건 사기 아니냐. 당장 거래중지부터 시켜야 한다"고 비난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술특례 상장 제도의 취지가 기술력은 있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는 것이므로, 기술력을 인정해 상장을 허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파두는 SK텔레콤 융합기술원 반도체 연구원 출신 남이현 대표와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출신 이지효 대표가 2015년 세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다. 핵심 제품은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데이터 저장장치(SSD)컨트롤러다. SSD 컨트롤러는 SSD 모듈을 통솔하는 '두뇌' 격인 시스템 반도체로, 내구성과 안정성이 약하고 속도가 느린 낸드플래시의 오류를 방어하고 수명을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회사는 클라우드·인공지능(AI)·빅데이터·5G·자율주행 등 기술 등장으로 데이터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데이터센터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들의 비판은 상장 주관사로도 향했다. 주관사는 발행사가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발행사를 제대로 실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실사에 허점이 있었거나 상장 과정에서 매출 부진을 감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증권신고서가 제출된 6월 말 기준 주관사는 물론 발행주체인 상장 예비기업도 당시의 매출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파두의 증권신고서는 지난 6월 30일 처음 제출됐고, 한차례 수정을 거쳐 7월 26일 발행조건을 확정했다. 7월말 수요예측을 했지만 기관투자자들에게도 연간 실적 가이던스만 제공했다.
NH투자증권의 다른 관계자는 "파두의 최종 수요처는 메타나 구글 등의 글로벌 '하이퍼 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용업체)'다. 업계 특성상 매출 발생이 꾸준한 것이 아니고 비교적 소수의 하이퍼 스케일러들의 투자 집행 시기에 따라 쏠리는 편이다"라면서 "수요예측 당시 3분기부터는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을 예정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수요처의 구조조정과 인원감축 등 긴축경영이란 복병을 맞았다"고 전했다.
이어 "실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미뤄진 것이라고 하는 게 맞다. 향후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와 SSD 교체 수요를 감안하면, 상장 당시 세웠던 예상치는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또 상장 주관사가 IPO 당시 떠안은 의무인수 물량에 대해서도, "주가 하락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인수물량을 처분할 의향은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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