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되고 싶어서…‘콕’ 집어서 선택했어요

김미영 2023. 11. 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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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 재학생·학부모 허심탄회 방담
임상병리학과, 스마트원예학과 등
전문대학에서 꿈 키우는 2030세대
현장 중심 실무실습 통해 전문가 성장
전공심화과정으로 학사학위 취득 가능
지난 10일 오후 서울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정원에서 ‘전문대 재학생·학부모 간담회’에 참석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 앞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구보건대학교 임상병리학과 2학년 손수경씨, 손수경씨의 어머니 강신희씨, 연암대학교 전공심화과정 스마트원예학과 3학년 조혜원씨의 어머니 박은성씨, 조혜원씨. 김미영 기자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전문대학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인기 비결은 높은 취업률과 빠른 사회진출 보장이다. ‘대학 졸업=취업’이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일반대학 출신들이 전문대학에 재입학하는 ‘유턴 입학’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유턴 입학생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770명(1.3%)으로 2017년(1453명)에 비해 317명 늘었다. 연도별로는 2017년 1453명(0.8%), 2018년 1537명(0.9%), 2019년 1525명(0.9%), 2020년 1571명(0.9%), 2021년 1769명(1.2%) 등이다. 일반대학 중퇴자까지 포함하면 유턴 입학생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많은 학생이 일반대학을 졸업했지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전문대학에서의 직업교육을 통한 전문직종으로의 새 출발을 준비하는 것이다. 전문대학의 경우 재학 중에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장 밀착형 실무경험을 쌓으면 취업이 보장되는 데다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보장된다.

무엇보다 대학생들이 전문대학을 선호하는 이유는 전문직종 특유의 직업 안정성 때문이다. 일반대학에서 학점, 어학, 인턴 등의 요건을 쌓아 대기업에 취업해도 정년이 짧은 반면 전문직종은 자신의 꿈을 이뤄가면서 고소득에 오랜 기간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청년들은 왜 전문대학을 선택했을까. 전문대 수시모집 2차 원서접수 기간(11.10~24)을 맞아 지난 11월 10일 오후 2시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전문대 재학생·학부모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를 꿈꾸는 재학생과 그들을 응원하는 학부모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대구보건대 임상병리학과 학생들이 검체물을 채취해 분석하고 있다. 대구보건대 제공

일반대학 졸업 뒤 대구보건대학교 임상병리학과 1학년으로 ‘유턴 입학’한 2학년 손수경(32)씨와 아버지 손주원(67)·어머니 강신희(67)씨, 농업전문가를 꿈꾸는 연암대학교 전공심화과정 스마트원예학과 3학년 조혜원(21)씨와 어머니 박은성(58)씨와 함께 입학 계기와 향후 진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수시모집 등 전문대학 관련 각종 정보는 전문대학 포털프로칼리지 누리집(www.procolleg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참석자들과의 질문과 답변.

일반대학 졸업 뒤 대구보건대학교 임상병리학과 1학년으로 ‘유턴 입학’한 2학년 손수경(32)씨.

- 일반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대로 유턴 입학했다. 이유는?

손수경 : 경북대학교에서 사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두 학문을 탐독하며 식견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졸업 후 이스라엘 미디어 회사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고, 귀국 후에는 2년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우연히 남편을 만나 26살에 결혼해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5년간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러던 중 정신건강임상심리사로 일하는 남편의 조언으로 임상병리학과에 입학했다. ‘임상병리사’ 자격증 하나만 보고 왔는데, PCR 실습과 세포배양 실습, 유세포 분석 실습 등을 직접 해보면서 내가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이 분야라는 것을 알게 돼 수업이 흥미롭고 재밌다. 졸업 후 임상병리사가 될 내 모습을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손주원 : 요즘은 대학 나와도 직장 구하기 쉽지 않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 중도 포기하고 시집을 가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뒤늦게나마 임상병리사가 되고자 학업에 매진하는 모습과 우수한 성적을 보니 대견하다.

강신희 : 딸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 병원에서 혈액을 채취하거나 당뇨 체크하는 분들이 멋있고 존경스러웠는데, 딸이 그런 업무를 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전문직종이라는 점에서, 아픈 환자와 어르신을 직접 돌보는 일을 한다고 하니 자랑스럽다.

일반대학 졸업 뒤 대구보건대학교 임상병리학과 1학년으로 ‘유턴 입학’한 2학년 손수경(32)씨의 아버지 손주원(67)씨.

- 농업전문가가 목표라고 하더라도,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사이에서 진로 고민을 했을 텐데.

조혜원 : 중학교 때부터 청년 농업 동아리인 4H 활동을 통해 텃밭을 가꾸고 수확하는 기쁨을 알게 되면서 일찍부터 농업에 매력을 느꼈다. 진로를 농업으로 결정했지만 학문적으로 농업을 공부할 것인가, 현장 친화형 기술인재 교육을 받아 농업전문가의 길을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연암대가 LG가 설립한 국내 최고의 차세대 농업기술 선도대학이고, 실습시설을 비롯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전공심화과정 및 전문기술 석사과정까지 한번에 마칠 수 있다는 걸 접하고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박은성 : 방송통신대에서 조경사를 공부하는 후배가 있는데, 실습장이 연암대였다. 농업을 전공하려면 연암대를 가는 게 좋다는 얘기를 후배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선택에 만족한다. 여자가 농업을 전공하기 쉽지 않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

- 임상병리학과는 4년제 일반대학에도 있다. 그런데도 3년제 대구보건대를 선택한 이유는.

손수경 : 대구보건대 임상병리학과가 신산업 분야 특화 선도전문대학 사업에 선정돼 단일학과로 3년간 30억원을 지원받았다는 뉴스를 보게 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전국 임상병리학과 중 독보적으로 많은 최신 기기를 갖춰 학생들이 현장 실무를 익힐 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임상병리사 국가고시 2021년도 전국수석 등 전국수석 최다 배출, 경찰청 검시조사관 5명 배출로 ‘한국 CSI 메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점, 미국 임상병리사 시험 최다 합격, 국가고시 합격률 96% 등 임상병리사가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문대학 전문기술석사 ‘마이스터대’ 운영을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일반대학 졸업 뒤 대구보건대학교 임상병리학과 1학년으로 ‘유턴 입학’한 2학년 손수경(32)씨의 어머니 강신희(67)씨.

강신희 : 딸이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진로에 대한 새로운 꿈을 키우고, 전문가의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끝까지 지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길 바랄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빅데이터, AI, 가상진료 등 임상병리 관련 산업이 더욱 확대되고, 임상병리사의 수요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딸이 임상병리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탄탄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스마트원예학과 전공에 대한 만족도와 커리큘럼의 특성을 말해달라.

조혜원 : 스마트원예계열에서 전문학사 과정을 마치고 전공심화과정으로 스마트원예학과에 입학했다. 다른 대학으로 편입할 수도 있었지만 연암대 스마트원예학과가 네덜란드 와케닝겐대학교와 협약해 국내 최초 스마트팜 전공을 운영하고 있고, 스마트팜 1:1 매칭 수업 등을 통해 스마트 식물관리에 대한 전문 지식과 함께 현장 실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박은성 : 딸이 방학 동안 부산대학교에서 이끼 연구를 한 적도 있어서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을 한때 희망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연암대로 딸이 편입한다고 했을 때, 속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연암대가 스마트농업 시대, 현장 요구에 부응하는 실용적, 실무형 인재 양성을 위한 현장 미러형 기반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는 등 농업 전문가로 나아가는 데 최적의 학교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실제 연암대는 종자(산업)기사, 식물보호(산업기사)기사, 유기농업(산업)기사, 농산물품질관리사, 조경(산업)기사 등 농업 관련 자격증 취득반 운영 등을 통해 국내 최고의 스마트농업 전문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고 명성이 자자하다.

-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실습이 있다면?

농업전문가를 꿈꾸는 연암대학교 전공심화과정 스마트원예학과 3학년 조혜원(21)씨.

조혜원 : 농업 및 농장 현장의 문제를 찾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배우는 캡스톤디자인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멜론 농가 실습 당시 우리 조는 농가의 멜론 크기가 작은 원인을 배지로 보고, 배지 크기를 키웠다. 결과가 좋게 나왔고, 이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교내 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그 결과를 수록한 논문이 ‘생물환경조절학회지’에 실렸다.

손수경 : 외부 인사가 학교에 와서 가장 놀라는 부분이 우리 학과의 실습 장비다. 실습시간마다 파이펫과 현미경이 1인당 하나씩 주어지며, 다양한 첨단 장비들이 있어서 차세대 바이오진단기술학과 바이오테크놀로지학 및 백신분자생물학 같은 특화 과목 수업을 듣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PCR 실습과 세포배양 실습, 유세포 분석 실습을 직접 해보며 현장 실무를 미리 접해보고 이해하는 기회가 많아 수업이 즐겁다. 지역 기업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다른 나라 임상병리학과 학생들과 전공지식을 교환하는 국제학생 교류 프로그램은 우리 학과만의 자랑이다. 그 밖에 전공 연계 빅데이터 교육과정, 바이오 3D 프린팅 교육, 의료기기 인허가 교육 등이 유익했다. 임상병리학과, 간호학과, 방사선과, 물리치료학과, 보건행정학과, 작업치료학과 등 보건 계열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가상병원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협업해야 하는 실제 병원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간접 체험하는 보건통합교육 프로그램도 기억에 남는다.

- 향후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어떤 전문가로 성장·발전하고 싶은지. 취업 이후의 계획은?

손수경 : 처음 입학했을 때는 병원에서 일하는 임상병리사만 생각했다. 그런데 KCSI로 활약할 수도 있고, 스마트의료기 전문가(RA 국가공인 자격증), 바이오분자진단검사 전문가(마크로젠, 씨젠 등 유전자검사기관) 등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걸 알게 돼 지금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학교에서 씨젠, 로킷헬스케어 등 여러 의료부문 회사와 자주 교류를 하고 있어 업계 취업도 고려하고 있다. 임상병리학과 3년 과정 이후 1년 전공심화과정을 마치면 학사 학위를, 마이스터 과정을 이수하면 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서 학업을 계속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스마트팜 유리온실 실습 현장. 연암대 제공

조혜원 : 학교에 와보니, 진출할 분야가 많아 고민이고, 현재까지 결정하지 못했다. 재단이 LG 계열사로 취업할 수도 있고, 육종회사에 취업하거나 스마트팜 창업을 할 수도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등 국가기관 취업의 길도 열려 있어 시간을 두고 고민할 생각이다.

농업전문가를 꿈꾸는 연암대학교 전공심화과정 스마트원예학과 3학년 조혜원(21)씨의 어머니 박은성(58)씨.

박은성 : 35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배려와 공감, 치유와 힐링 없이 경쟁과 성장만 요구하는 사람들 틈에서 상처받는 일이 없지 않았다. 반면 농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과 정성을 준 만큼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딸이 농업 공부를 하면서 정직과 감사,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학문이 없다고 생각한다.

- 끝으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 수험생들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손수경 : 사학과 영문학도 좋아하지만, 지금 전공인 임상병리학도 좋아한다. 다만, 고교 졸업 때 전공을 선택할 때는 진로보다는 성적과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큰 고민 없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던 것 같다. 후배들은 성적, 대학, 학과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 진출하고 싶은 분야를 먼저 고민하고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으면 한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조혜원 :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과소개 멘토링을 하고 있는데, 학교와 학과를 강조하지 않는다. 스마트원예학과 소개와 함께 관련 분야를 알려줌으로써 후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을 넓혀주고 싶어서다. 솔직히 말하면 농업이 쉽지 않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 땀이 나고, 힘들기에 함부로 하라고 강요하지는 못한다. 다만, 땅과 땀의 의미, 수확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설명할 뿐이다. 나도 그랬지만, 다양한 관심사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진로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신이 평생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대학, 학과보다는 평생 직업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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