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투자했는데 반품 빗발"…돌연 플라스틱 '허용'에 빨대업 위기

김성진 기자 2023. 11. 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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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정책 따라 생분해빨대, 종이빨대 개발한 업계...수억원 R&D 설비투자
이달 말 일회용품 규제 앞두고 환경부 계도기간 연장...업계 "예고 없었어"
주문 취소, 환불, 반품 요구 '빗발'...투자금 회수 못하고 재고만 쌓여
환경부 몰려간 종이빨대 업계..."규제 시2주 남기고 결정을 바꾼 것은 무책임"

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예고 없이 연기한 탓에 생분해빨대와 종이빨대 제조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5년 전 환경부가 "앞으로 플라스틱 빨대는 사실상 제조 금지"라고 표현해 기존 생산 설비를 생분해빨대, 종이빨대 설비로 전환하고 R&D 투자, 인력 채용까지 했는데 그 비용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돼버린 것이다. 환경부는 종이빨대 수요가 크게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13일 생분해 제품 제조업체 150여곳이 모인 한국플라스틱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환경부 발표로) 생분해 빨대, 봉투, 포장재 업계에서 앞으로 살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많다"며 "여러 대형 프랜차이즈, 개인 카페, 음식점들과 납품 협상 중이었는데 정부 발표 후 협상도 끊기고 기존 주문도 취소돼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하더라"라 전했다.

생분해빨대 제조사 동일프라텍은 이날 500 박스 반품 요청을 새로 받았다. 액수로는 2400만원어치다. 주문 취소와 반품 요청이 지난 7일 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유예한다고 발표한 날부터 쏟아진다. 한 커피 유통사가 제일 먼저 300박스 발주를 취소했고,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사전 계약 물량 중 배송받은 물량 대금만 치르고 남은 주문은 취소했다.

주문 취소, 반품된 제품 금액이 수억원에 달한다. 규제 유예가 발표된 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환불률은 54%였다. 온라인 판매는 8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개인 카페들의 반품 문의도 빗발친다. 반품 이유를 물으면 "(규제 연기) 뉴스를 보고 반품한다"고 한다고 한다.

동일프라텍은 본디 플라스틱 빨대 회사다. 생분해빨대 생산을 시작한 것은 4년 전 환경부 발표 때문이었다. 환경부는 2019년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발표하고 식당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당시 개별 업체들에 공문을 보내고 "앞으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은 사실상 금지"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한다.

직원이 열명 남짓한 작은 회사라 여의치 않았지만 동일프라텍은 정부 방침에 따라 생분해빨대 개발에 착수했다. 생분해 제품은 국내에서 '바이오 플라스틱'이라 불리지만 플라스틱과 원료는 전혀 다르다. 만드는 데 석유화학 원료 없이 옥수수 전분 등이 쓰여 원룟값이 플라스틱 빨대보다 4~5배 비싸다. 동일프라텍은 생분해빨대 개발 첫해만 원룟값으로 4200만원을 썼다.

여기에 제품 인증을 받고, 생산 설비를 들이고, 기술자를 교육하고, 온라인 몰 구축, 물류창고 이전에 수억원을 썼다. 이후 계도기간 종료 시점에 주문이 몰릴 것을 대비해 생분해빨대 생산 설비를 2대에서 6대로 늘렸고, 직원 5명을 늘렸다. 생분해빨대를 하루 150만개씩 제조하고 있었는데 돌연 계도기간이 연장된 것이다. 동일프라텍은 이튿날 공장 가동을 멈췄다. 현재 생분해 빨대 800만개, 약 1억6000만원 어치가 재고로 쌓여 있다.

동일프라텍이 고용한 외국인 근로자 두명은 아직 입국도 안한 상태다. 김지현 동일프라텍 대표는 "정부 방침에 맞춰 국내에서 최초로 생분해빨대 인증을 받았고, 다음 단계는 해양분해 빨대를 개발하는 것이었다"며 "생분해 빨대를 만들고 플라스틱 제품은 감산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원한 것 아니었나. 타격이 심각한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플라스틱 빨대를 만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13일 종이빨대 제조사 10여곳 임직원들이 환경부 앞에서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종이빨대 업계.

종이빨대 업체 10여곳 임직원들은 이날 오후 환경부 앞에서 업계를 위한 대책을 촉구하며 집회를 했다. 종이빨대 업계도 환경부의 계도기간 연장을 예고 받지 못했다. 업계 A사는 환불 요청이 30건 접수됐다. 개인 카페들은 계약 물량 중 배송되지 않은 물량은 취소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A사는 지난해 설립된 회사다.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10억원을 투자해 지난 여름 생산설비를 기존 3대에서 6대로 늘리고, 직원을 5명 새로 채용했다. A사 관계자는 "규제 시행을 2주 남기고 결정을 바꾼 것은 무책임하다"며 "우리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얘기해준 것도 없다"고 했다.

환경부는 이날 프렌차이즈업계와 간담회를 하고 손님이 보이는 곳에는 종이빨대, 생분해빨대를 놓고 원하면 플라스틱 빨대를 주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종이빨대, 생분해빨대 수요가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도록 계속 관리할 것"이라 말했다. 또 재고를 소진할 수 있도록 판로지원 등을 검토 중이다.

업계는 벌써 주문 취소가 쏟아지는데 환경부가 현장을 잘못 파악한다고 지적한다. 김지현 동일프라텍 대표는 "국내 수요가 꺾였는데 판로 지원이 가능하다고 해도 지속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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