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폐쇄·폐쇄…전쟁 한복판 휘말린 가자지구 병원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더 깊은 곳으로 침투하면서 병원이 포화의 중심에 놓였다. 병원을 직접 겨냥한 공격과 포위가 증가하면서 가자지구 북부의 병원이 모두 운영을 중단했다. 이스라엘은 환자 대피를 위해 통로를 열었다고 주장했으나 막상 대피가 쉽지 않으며, 문 닫은 병원의 미래 또한 어둡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가자지구 북부 병원이 모두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전날 가자지구 최대 병원 두 곳을 포함한 병원 다섯 곳이 폐쇄된 데 이어 이날 모든 병원이 더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병원들은이미 연료와 전기가 고갈돼 간신히 버티고 있었으나, 최근 이스라엘군이 병원 공세와 봉쇄를 강화하며 끝내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의 기능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을 포위하고 있어 누구도 드나들 수 없으며 인근에서 격렬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발전기가 멈춘 이후 이날까지 미숙아 7명과 성인 27명 등 34명이 숨졌다.
두번째로 큰 알쿠드스 병원 역시 더이상 새 환자를 받지 못한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따르면, 알쿠드스 병원은 지난 일주일 동안 바깥과 단절되며 의약품, 음식, 물이 끊겼고 발전기를 돌릴 연료가 떨어지며 운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료진은 전통의학까지 동원해 환자를 돌보는 실정이다.
가자시티 북부에 있는 카말 아드완 병원도 발전기에 연료가 부족해 병원이 폐쇄됐다고 밝혔다. 이 병원에는 환자 외에도 5000명 이상이 대피하고 있다. 아메드 알칼루트 원장은 “병원이 폭격을 받을까 두렵지만 대피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누구도 남부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알자지라에 전했다.
이밖에도 가자지구 내 유일한 소아암병동을 갖춘 알란티시 병원과 알나스르 병원이 이스라엘군에 소개됐다. 알란시티 병원의 바크르 가우드 원장은 “지난 주말 이스라엘군이 들어와 1층과 차량 여러대를 파괴했다. 위독한 환자들은 알시파 병원으로, 다른 모든 환자들은 남쪽으로 갔다. 내가 병원을 떠난 마지막 사람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알나스르 병원 역시 지난 10일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비워졌다고 NYT는 전했다.
이스라엘 “병원 대피 통로 열었다” “연료 제공 하마스가 거절” 주장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안전한 통로를 제공했음에도 병원 측이 대피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2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CNN 인터뷰에서 “환자들을 그곳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피를 위해 안전한 통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100명 정도가 알시파에서 대피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이와 상반된 증언이 이어졌다. 한 주민은 “(이스라엘군은) 문에서 멀지 않은 바깥에 있다”고 AP에 전했다.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저격수가 병원 내 움직임을 겨냥하고 있어 탈출이 두렵다는 연락이 국제 구호단체에 접수됐으며, 병원에서 도망친 이들 중 이스라엘군 총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과 병원·하마스 측은 병원에 연료를 제공하는 문제를 두고도 날을 세웠다. 네타냐후 총리는 “알시파 병원에 연료를 제공했지만 그들이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군은 군인들이 병원 입구에 연료가 든 제리캔을 옮겨 두는 영상과 하마스의 지시로 병원이 이를 거절했다는 취지의 도청 녹음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알시파 병원은 “프로파간다”라고 반박했다. 아부 살미야 원장은 “이스라엘 담당자가 실제로 전화를 줬다. 각각 하루에 200ℓ, 300ℓ를 제공하겠다고 두차례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는 하루 최소 8000~1만2000ℓ가 필요해 그 이상을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300ℓ는 15~30분 동안만 쓸 수 있는 양”이라고도 지적했다. 아울러 “(제리캔을) 회수하지 못한 건 이스라엘의 탱크가 두려워 우리 구급대원들이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연료는 적십자나 다른 국제기관을 통해 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마스 또한 이스라엘의 주장을 조롱이라고 비난했다. 하마스 보건부는 “발전기를 한시간 동안도 돌리지 못할 양이다. 이는 환자와 아동에 대한 조롱”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알시파 병원을 둘러싼 갈등이 발단이 돼 하마스가 인질 협상을 전격 중단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민간인을 전부 석방하는 안을 두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의 알시파 병원 공격을 문제 삼았다고 전해졌다.
주요 병원과 외부의 통신이 끊기며 가자지구 사상자 수 집계도 이틀 연속 중단됐다. 가장 최근 집계는 지난 10일 기준 1만1078명이다.
더 암울한 앞날
알시파 병원은 앞으로도 참화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국제 사회의 압력을 못 이겨 공격을 중지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가디언은 짚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의 목적을 ‘하마스 궤멸’로 두고 있고, 알시파 병원 지하를 하마스 근거지로 보고 있는 이상 알시파 병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 행정 시설이 밀집한 가자시티 중심부에 있고,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와 가깝다는 점에서도 군사적 가치가 크다.
또한 이스라엘 내부에는 알시파 병원을 보호했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전 가자지구 작전에서 알시파 병원 지하를 소탕하지 않은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 국가안보보좌관 척 프레일리히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병원들은 포위되고 사람들에게는 떠나라는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이스라엘이 민간인에 정면으로 맞설 건 아니지만, 병원이나 적어도 그 지하에 있는 것들은 모두 치워야 한다”고 NYT에 밝혔다. 그는 “모양새가 좋지 않겠지만 그래야만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통치를 끝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더 깊은 곳으로 지상전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보병과 공병이 북부 해안가 알샤티 난민촌 외곽에 도착했으며, 그 일대를 완전히 포위해 하마스의 장거리 로켓 발사대를 수색했다. 이스라엘군은 알쿠드스대학과 모스크 등 민간 건물에서 하마스 시설과 무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36일 동안 가자지구 의료시설 공격이 최소 137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521명이 죽고 686명이 다쳤다. 지난 11일 기준 가자지구 북부에선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구급차 18대 중 7대만이 운영 중이었으며 이조차 연료가 없어 중단될 처지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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