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영어 사용, 언어로 분리하는 ‘언어차별’
[왜냐면] 신동일 |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로 응대한 것을 두고 ‘인종차별’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인 정체성으로 평생 살아온 인 위원장에게 이 전 대표가 굳이 영어로 대면 발언을 이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정황적 판단이지만 내 눈엔 인종차별보다 언어차별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인종, 젠더, 지역, 장애, 외모 등 모든 차별은 서로 연결돼 상황마다 차별의 기제가 다르게 조합될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차별은 언어와 기호를 통해 개시하고 강화한다. 숏컷(짧은 머리) 여성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뺨을 때리면 여성과 외모에 관한 명백한 차별이지만 머리가 짧은 여성성은 이미 세상에서 편향적으로 표현되고 재현돼 있을 터다.
언어는 차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 아니라 차별의 대상이고 목표이기도 하다. 말더듬, 지역 방언, 위상어, 외국어 사용이 지적되면서 일할 자격이나 살아갈 권리가 왜곡된다. 전교생에게 하나의 영어시험으로 졸업인증제를 강제하기도 하고, 적법하게 거주하는 이주민의 언어 사용이 천대를 당한다. 단일언어 사회로 통제되는 곳이라면단일하지 않은 언어는이방인이나 사용하는 어색한 언어로 치부된다.
한국어 사용은 인 위원장에게 그만이 특별하게 살아온 삶의 표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언어를 배제하고 이 전 대표는 일부러 영어를 선택하면서 자기식의 효능감이나 우월감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과 창피함을 느꼈다. 내가 만약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할 때 공적 자리에서 누군가 영어가 아닌 다른 말로 ‘구분 짓기’ 구도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동안 영어를 사용하며 애써 그곳에서 살아온 내 삶의 기억과 경험이 한 번에 부정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태연한 척하더라도 그걸 목격한 나와 비슷한 입장의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각자만의 수모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이 전 대표를 감싸는 사람들이 있다.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말한 걸 놓고 그건 이준석식 소통방식, 혹은 그만의 스타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논리는 대개 언어(차별)의 속성이 고작 개인적이거나 병리적인 문제일 뿐이며, 언어들로부터 세상이 분리되고 누군가는 억울하게 모욕을 당한다는 이념적 논의가 소거된 것이다.
이 전 대표가 단지 정치인으로서 품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은데 그것 역시 윤리적 규범으로만 타박하는 만큼 언어차별에 관한 사회정치적 의제가 감춰지게끔 한다. 품성이 좋다는 사람이라도 차별과 불평등에 관한 사회질서에 대해 교육받지 않으면 자신이 속한 기득권력이 붙들고 있는 배타주의가 당연하게만 보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다양성의 가치를 포용해야 하는 다문화 국가라고 한다. 다문화사회에서 ‘우리’가 아니었지만 새롭게 유입된 ‘그들’은 어떤 차별에서 가장 취약할까? 학교와 기업에서 타자성의 지표와 차별 감수성을 가르치고, ‘그들’을 공개적으로 배제하는 모습은 줄고 있다. 그러나 북미나 유럽에서도 그러한 것처럼 여전히 싫기만 한 ‘그들’을 ‘우리’가 영리하게 차별할 수 있는 기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혹은 ‘그들’을 재현할 수 있는 언어다. ‘그들’의 언어를 흉내내고 폄하하고 구분시켜 표시하더라도 여전히 윤리적 규범으로만 경고되고탈정치적 프레임에서논의될 뿐이다.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것도 없으니 만만한 누군가를 모욕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통치 장치다.
이 전 대표는 모어, 상용어, 공식어를 한국어로 사용해온 인 위원장의 사회(언어)적 정체성에 분명한 흠집을 냈다. 그건 인 위원장처럼 단일한 언어로 단일한 인생을 살지만 않았던 수많은 사람을 향한 조롱이기도 하다. 이미 며칠이 지났다. 그런 차별이 그만의 특별한 의사소통 방식이거나 유력 정치인이 갖지 못한 품성으로 지적될 뿐, 분명한 사과도 없이 어물쩍 넘어갈 것 같다. 그렇게 언어를 두고 차별하는 못난 자유가 방치되는 한 , 서로 다른 언어들이 풍요로운 자원으로 인식되는 사회와는 그만큼 멀어지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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