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故설리가 먹어버린 '빨간약'.."나는 상품, 자책하고 깎아내렸다"

한해선 기자 2023. 11. 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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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한해선 기자]
가수 겸 배우 설리가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에서 진행된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 포토월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그룹 F(X)(에프엑스) 출신 고(故) 설리가 2019년 가졌던 생각은 '아이돌 산업'을 고스란히 시사했다.

설리(최진리)의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 설리'가 13일 공개됐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설리가 2019년 인터뷰를 남겼던 그의 유작이다.

'페르소나: 설리'는 설리 주연의 단편 극영화 '4: 클린 아일랜드'(각본 김지혜, 감독 황수아 김지혜)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각본/감독 정윤석) 총 2편이 담겼다.

'4: 클린 아일랜드'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 '클린 아일랜드'로의 이주를 꿈꾸는 '4'가 죄를 고백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는 기묘한 입국 심사장에서 어느 특별한 돼지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시작되는 단편 극영화로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설리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돼지'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연기하고 독백했다. 설리는 "순리대로 착하게 살면서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는 사람하고, 계속 나쁘게 살면서 그때마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참회하는 사람 중에 누가 천국 가는 데에 더 유리한가요?"라고 묻고는 "저는 최소한 하나님이 후자를 더 사랑하실 것 같아요. 죄가 있어야 하나님을 믿는 거죠. 죄가 없는 존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죠. 알 필요가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설리의 눈가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진리에게'는 배우이자 아티스트로서의 설리와 스물다섯의 최진리가 그 시절 느꼈던 다양한 일상의 고민과 생각을 인터뷰 형식으로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설리의 유작 '고블린' 수록곡 중 하나인 '도로시'를 모티브로 삼았다.

/사진=미스틱스토리
/사진=미스틱스토리

연출자가 "아이돌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냐. 아이돌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냐. 최저임금, 근무 보장시간 등"이라고 질문했고, 설리는 "네"라며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돌은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설리는 "있어야 되죠. 아 열받아"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설리는 "제가 연예인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너는 상품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최상의, 최고의 상품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상품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를 모든 사람들이 상품 취급했다. 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어야 했고 상품 가치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야 했고. 저는 제 주장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몰랐고 나의 생각을 얘기해야 되는지도 몰랐고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한다고 해서 바뀌는 상황도 아니었다. 제 주변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너가 스스로 선택해 봐', '너가 골라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는 요즘 어때?'. 죽을 것 같은데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라고 털어놨다.

어떻게 이 스트레스와 압박을 견디면서 살았냐고 묻자 설리는 "그냥 제탓을 하고.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 스스로 저에게 아픔을 줄 때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깎아내리고 그게 제 통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들었다"라고 답했다.

설리는 눈물을 흘리며 "(시스템이 잘못됐단)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제가 힘들다고 얘기했을 때 엄청난 어깨 위의 짐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라며 "'매트릭스' 영화 있지 않냐.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알고 힘들게 살아갈 것이냐, 그냥 모르고 살 것이냐'. 모르고 살았다면 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종종 한다"고 말했다.

'페르소나 설리'를 통해 설리는 과거와 달리 자신이 각성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끌려가고 힘든 게 힘든 줄도 몰랐던 삶에서 이제 고통을 자각하고 그 또한 만만찮게 괴로움을 토로했다. 인터뷰 내내 문장을 잘 이어가지 못했던, 생각이 많았던 설리. 그게 '대중'인 우리가 볼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유독 K팝 아이돌 시장이 번성한 지금, 그 그늘을 시사해 우리의 가슴을 찌른다.

한해선 기자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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