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 일주일 어땠나…‘평평한 운동장’의 꿈 이번에는?
연말 상승 기대가 커진 미국 주식 시장과 달리 우리 주식 시장은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최근 공매도 금지 결정 후 증시 변동성이 커진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의 공매도 금지 발표 후 한 주 동안 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탄 모양새입니다.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 6일 코스피는 5.66%, 코스닥은 7.34% 오르며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증시는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선 뒤 등락을 반복했고, 초반 상승분을 거의 다 반납한 채로 일주일을 마무리했습니다.
결국, 공매도 금지 조치 후 지난 한 주 동안 코스피는 전주 대비 1.74%, 코스닥은 0.93%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공매도 금지에 따른 효과가 최소 몇 주 동안은 지속할 거란 예측과 달리 일단 반짝 효과에 그친 셈입니다.
시장에서는 공매도 금지 후 빌려서 판 주식을 갚기 위해 사들이는 이른바 '숏커버링'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고, 오히려 첫날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더 많이 쏟아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 공매도 금지 일주일…"외국인 사고, 개인 팔고"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을 합쳐 1조 6,948억 원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공매도 금지에 따른 손실을 예상해 주식을 급하게 사들인 '숏커버링' 영향으로 보입니다. 눈에 띄는 건 외국인들이 반도체와 제약 관련 종목을 주로 샀다는 점입니다.
반면 이 기간 개인과 기관은 매도 우세였는데 각각 6,684억 원, 4,932억 원어치를 팔아 치웠습니다.
특히 이달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매도세가 우세합니다. 1일부터 10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2조 2,000억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공매도 금지 후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차익을 실현하려는 투자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0월 순매수 금액과 맞먹는 금액입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공매도 금지에 따른 숏커버링이 마무리되면서 주로 공매도 거래를 해온 외국인이 우리 주식 시장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거론되는데, 이렇게 되면 연말 국내 주가는 개인투자자에 더 크게 좌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진 탓에 개인 투자자들은 당장은 해외에 더 눈길을 주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면 국내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10일까지 해외에서 2억 7,900만 달러, 우리 돈 약 3,600억 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대부분은 미국 주식이었지만 중국 주식 순매수액도 크게 늘었습니다.
■ 공매도 금지 후 늘어난 거래량…시장조성자 때문?
공매도 금지 효과가 예상보다 빠르게 사라진 것이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에게만 차입 공매도가 예외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주로 개인 투자자들이 주장하는 건데요.
실제로 공매도 금지 기간에도 예외적 공매도는 허용되면서 하루 최대 2,000억 원이 넘는 공매도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는 기관 공매도 역시 공매도 금지 전보다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만 한국거래소는 공매도 거래 금지 첫날 공매도 잔고 금액이 증가한 것은 새로운 공매도 주문이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라 당일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금액 증가에 따른 것이란 설명을 내놨습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 6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공매도 잔고 금액은 19조 2,13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 3일과 비교하면 1조 4,010억 원 증가한 금액입니다. 반면 공매도 수량은 지난 6일 4억 4,263만 4,000주에서 2천만 주 이상 감소했습니다.
또 시장조성자 등에 대한 예외적 공매도 허용은 궁극적으로 시장 참가자의 거래 편익을 위한 조치라며 이마저 금지하게 되면 매수 호가 공급이 줄어들면서 투자자의 매도 기회가 제한되고 기초 자산과 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등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개인 투자자의 불신이 계속되자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에 관련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공매도 금지 기간 시장조성자 등에 대한 공매도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건데 이르면 이번 주 조사가 착수될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시장조성자 제도의 필요성이 더 크다며 그동안 제도 보완 요구에 선을 그어 왔던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여러 의견을 들어 " 원점에서 검토해보겠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8개월의 시간…얼마나 바뀔까
그동안 개인 투자자 단체를 중심으로 공매도 전면 개선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었지만, 금융당국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결정 배경을 놓고 여러 추측이 무성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금융당국은 공매도를 금지한 앞으로 8개월 동안 제도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는데 정치권이 논의를 주도해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공매도 제도 개선 관련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정무위원회에 넘겨져 있습니다. 이번 주 전체회의가 열리면 공매도 현황과 제도개선 방안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입니다.
당장은 큰 이견이 없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제재 관련 법안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전산시스템 도입이나 상환 기간과 담보 비율 일원화, 전산시스템 도입 등은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될 전망입니다.
다만 속도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시스템을 갖추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뼈대가 되는 개선안을 빠르게 내놓아야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인데, 늦어도 올해 안에는 공매도 제도개선안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제도를 만들어야겠지만,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속된 불법 공매도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본시장법 시행 후 올해 8월까지 174건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돼 제재 조치가 내려졌으나 형사처벌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불법 공매도를 막기 위한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 이상으로 사후 처벌 강화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합니다.
■ "공매도 개선 필요하지만, 만능은 아냐"
금융위기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도 공매도 전면 금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금융당국은 '그만큼 우리 주식 시장에 불법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 등에 불리해지는 상황을 감안하고서라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는 건데요.
이런 설명대로라면 이번 기회에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고 가는게 장기적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매도 제도만 손 본다고 해서 우리 주식시장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공매도 금지가 기업의 실적이나 경기 등 주식시장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인 '펀더멘탈(기초 여건)'까지 영향을 주는 요술방망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고려해야할 건 금리입니다. 지금 우리 주식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미국의 통화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지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이 사실상 끝났다고 분석했지만 제롬 파월 의장은 틈만 나면 '긴축'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밝히고 있어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도 우리 주식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봐야 하는 변수입니다.
이처럼 공매도 금지 외에도 우리 증시의 변동성을 키울 요인들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방향성 예측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공매도 제도 개선으로 '평평한 운동장'이 만들어지더라도 이것이 반드시 모든 개인 투자자들의 승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조언 역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 틈을 노린 또 다른 주가조작 세력의 발호 가능성 역시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 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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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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