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학은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베트남·방글라데시·필리핀 등
비주류 아시아 문학 번역해
서구 중심 문학권력에 저항
韓문학 영어번역 시리즈 간행
아시아 작가 교류 사업도 힘써
미국의 번역가이자 번역 이론가인 로렌스 베누티(Lawrence Venuti·템플대 교수)가 한 말이다. 언어 권력이 강한 영어 문학 작품은 다른 언어로 활발하게 번역되지만 한국어, 베트남어 등 비주류 언어들로 쓰인 문학은 타 문화권에 번역돼 소개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세계 문학에 존재하는 이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수십년간 아시아의 문학 작품을 국내와 세계에 번역해 소개해 온 중견 소설가가 있다. ‘아시아 클래식’, ‘아시아 문학선’ 등 아시아 문학 시리즈와 한·영 병기 계간 문예지 ‘아시아’를 펴내고 있는 방현석 아시아 출판사 주간(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62·사진)이다.
방 작가가 아시아 문학 작품의 번역에 나선 것은 아시아인이 주체가 돼 아시아의 문학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문화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아시아 문학 작품이 서구의 시각으로 선택되고 조명되는 현실을 깨겠다는 취지다. 방 작가는 “뛰어난 문학 작품이 아시아에 많지만 서구에 의해 포착되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독자들도 중국이나 일본의 문학 외에는 (아시아 작품을) 거의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 훌륭한 작품들을 직접 알려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아시아 출판사는 ‘샤나메’, ‘알파미시’ 등 아시아의 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한 ‘아시아 클래식’과 타예브 살리흐, 응웬 빈 프엉, 샤힌 아크타르 등 빼어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한 ‘아시아 문학선’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아시아 클래식’은 2012년 ‘라마아냐’를 시작으로 7권, ‘아시아 문학선’은 2012년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을 시작으로 24권이 나왔다. 아시아 문학을 한국어와 영어로 소개하는 계간 문예지 ‘아시아’ 역시 2006년부터 69호째 출간되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방 작가의 관심은 그의 작품 세계로도 이어졌다. 소설 ‘존재의 형식’(2003년 오영수문학상·황순원문학상 수상), ‘랍스타를 먹는 시간’은 한국과 베트남 민중의 역사와 갈등, 화해를 다뤘고 ‘사파에서’는 베트남 북서쪽 산간마을에서 금기를 넘어 사랑을 하는 낭만적 이야기를 그렸다. 올해 6월 출간된 장편 ‘범도’는 한반도와 만주, 러시아, 카자흐스탄을 누볐던 독립운동가 홍범도의 일대기를 구현했다.
방 작가와 아시아 출판사는 한국 문학을 외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박완서, 이청준, 이문열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국어·영어로 담은 ‘바일링궐 에디션’도 펴내고 있다. 김금희, 황인찬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K-픽션’, ‘K-Poet’ 시리즈도 출간한다. 이들 한국 문학 시리즈는 한국 출판 시장과 아마존 등 해외 유통 채널을 통해 국내외 외국인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방 작가는 “해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외국 출판사 관계자 등 아시아 출판사의 한국 문학 시리즈를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와 “한국 작가들에게는 해외에 자신의 대표 작품을 소개하는 명함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문학 번역과 함께 방 작가는 아시아 작가들 간 교류 사업에 힘쓰고 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1994년)을 시작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작가로 구성된 아시아문화네트워크(2009)를 만들었고, 아시아 문학을 추적하고 소개하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회에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김근, 장석남, 바오 닌, 응웬 꾸앙 티에우(베트남작가회 주석) 등 한국과 베트남 작가들로 구성된 한베문학평화연대를 정식 출범시켰다.
방 작가는 최근 김혜순, 한강, 정보라, 이영주 등 한국 작가들이 국제적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것에 감개무량한 감정을 느낀다고 밝혔다.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번역이 부실해 저평가되던 한국의 문학 작품들이 합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방 작가는 “번역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번역가의 역량이 높아지며 한국 작품들이 세계 무대에 알려지고 인정받고 있다”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문학이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인들에게 향유될 수 있게 아시아 문학을 알리는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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