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용량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외국은 ‘고지 의무화’ 추진

남지현 2023. 11. 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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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

봉지에 5개(500g) 들었던 핫도그가 같은 가격을 유지한 채 4개(400g)로 줄어서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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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에 가벼워지는 것은 지갑만이 아니다. 고물가가 이어지며 식품 업체들이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만 줄이는 것을 뜻하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외에서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 이 같은 용량 변경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곳이 늘고 있다.

13일 식품업계 현황을 살펴보면, 씨제이(CJ)제일제당은 이달 초부터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간편식품 ‘숯불향 바베큐바’의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였다. 가격은 봉지당 5600원으로 같다. 그 결과 g당 가격은 20원에서 24.3원으로 21.5% 올랐다. 이에 대해 씨제이제일제당 관계자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를 바꾸면서 제품 스펙(재료 배합비)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원에프앤비(F&B)는 지난달부터 ‘양반김’ 중량을 봉지당 5g에서 4.5g으로 줄였지만, 가격은 7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게토레이 한 병의 용량이 32온스에서 28온스로 줄어든 모습. 미국 소비자가격 정보 사이트 ‘마우스프린트’ 누리집 갈무리

해태제과는 올해 초 고향만두와 고향김치만두 가격을 10% 인상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고향만두 용량을 한 봉지에 415g에서 378g으로, 고향김치만두는 450g에서 378g으로 줄였다. 오비(OB)맥주는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 제품의 캔당 용량을 375㎖에서 370㎖로 줄였고, 풀무원은 1봉지에 5개(500g) 들었던 핫도그를 4개(400g)로 줄였다. 농심도 양파링 한 봉지를 84g에서 80g으로 줄였고, 오리온은 개당 50g이던 핫브레이크를 45g으로, 롯데웰푸드는 72g이던 꼬깔콘 한 봉지를 67g으로 줄였다.

11일 오비맥주는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한다고 밝혔다. 오비맥주는 앞서 지난 4월에는 일부 제품의 용량을 줄인 바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오비맥주 제품들. 연합뉴스

제품에 들어가는 원료의 함량을 줄이는 ‘꼼수’도 동원된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7월 델몬트 오렌지·포도주스의 과즙 함량을 기존 100%에서 80%로 낮췄다. 이렇게 가격은 그대로인데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스킴플레이션(skimflation)’라고 한다.

다른 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국 경제 매체 쿼츠 보도를 보면, 펩시코가 생산하는 스포츠음료 게토레이의 경우 미국에서 판매되는 1병 용량은 원래 32온스(1온스=28.3g)였으나 지난해부터 28온스로 줄었다. 슈링크플레이션을 추적하는 미국 소비자보호단체 컨슈머월드에 따르면 과자 도리토스 한 봉지 용량도 9.75온스에서 9.25온스로 줄었다. 이는 칩 5개가 빠진 수준이다. 그 밖에도 위트씬크래커 패밀리사이즈는 한 박스 용량이 16온스에서 14온스로 줄었는데 이는 크래커 28개가 빠진 정도라고 한다. 식료품 외에 치약이나 두루마리 휴지, 비타민 등 제품의 용량이 줄어든 사실도 이 단체는 확인했다고 쿼츠는 전했다.

국외 전문가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영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7년 사이 영국에서 판매된 2529개 제품에서 용량이 줄어든 사실이 확인됐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제조사들이 이처럼 제품 용량이나 함량을 슬그머니 줄일 수 있는 건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용량이나 함량 변경 사실을 따로 소비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대개 국가에서 제품 포장지에 소비자가격과 중량, 개수 등을 표시하도록 하지만, 이 내용이 달라질 때마다 그 사실을 알릴 의무는 없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패밀리사이즈 오레오 1봉지 용량이 4온스에서 2.71온스로 줄어든 모습. 미국 소비자가격 정보 사이트 ‘마우스프린트’ 누리집 갈무리

이에 국외에서는 소비자 분노가 커지며 각종 대응책이 나오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9월 기업들에 제품 용량에 변화를 주는 경우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도 제품 용량을 몰래 줄이면서 포장재는 그대로 두는 과대 포장 행위가 “소비자 기만”이라며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이미 제품 용량과 함량에 변화가 생길 경우 이를 제품 외관에 6개월간 표기하도록 하는 법이 시행 중이다.

지난 9월엔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가 자체적으로 가격 변동 없이 용량을 줄인 상품에 대해 매대 앞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카르푸는 당시 코카콜라, 펩시코 등 글로벌 제조업체들과 납품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소비자 지지를 등에 업고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 같은 조처를 취했다고 가디언 등은 전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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