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⑫ 또 한번 밀린 지방과학 역량 육성…지역 R&D예산도 대폭 삭감
‘우수’ 평가, 주무부처 반대에도 예산 삭감 못 피해
줄줄이 삭감되는 지역 R&D 예산에 수도권 쏠림 우려 커져
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국정목표인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역 혁신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역 R&D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방과학 활성화 필요성의 근거로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부처 의견서의 한 대목이다.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지역연구개발 혁신지원’ 사업은 지역별 R&D 전담기구인 연구개발지원단을 지원하고 지역 산·학·연 R&D 생태계 구축을 돕는 사업이다. 지역 대학 산학협력단을 중심으로 지역 기업에 대학이 보유한 기술이전을 지원하는 사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방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 사업으로 지역 R&D의 근간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지난 2020년 132억2100만원이던 예산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에는 209억5100만원으로 늘면서 윤석열 정부가 표방한 지방 과학시대의 핵심 정책처럼 간주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R&D 예산 삭감의 삭풍을 비켜가지 못했다.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43.9% 깎이면서 여러 세부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구개발지원단 육성 지원 예산은 65억원에서 40억1000만원으로 줄었고, 지역 혁신역량 축적을 돕기 위한 예산은 90억원에서 56억원으로 줄었다. 지역산업과 연계해 대학에 오픈랩을 육성하는 사업도 82억2000만원에서 37억원으로 반이 넘는 예산이 사라졌다. 사업 관계자는 “기존에는 신규 사업을 계속해서 선정해 지역 기업과 대학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예산 삭감으로 신규 사업은 모두 포기하고 기존에 있던 사업도 지원 예산을 반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여권과 예산 당국의 지적처럼 ‘비효율’이나 ‘부실’ 사업이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균형발전사업 종합평가에서 91.8점을 받은 ‘우수’ 사업 중 하나다. 지원 실적 달성률도 122.6%에 이를 만큼 예산을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냈다. 오죽하면 과기정통부마저도 “지역의 자체적 R&D 역량 제고를 위한 사업인 만큼 지속적·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할 정도였다. 그러나 과기정통부의 반대 입장에도 결국 최종 정부안에는 대폭 삭감이 유지됐다.
다른 지역 R&D 사업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연구개발특구 육성 사업 예산은 올해 1283억900만원에서 내년엔 1000억3200만원으로 22% 줄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대덕특구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연구개발특구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다. 정부가 세운 중기 재정 계획에도 1300억원 안팎의 예산이 내년에 배정돼 있지만, 갑작스러운 예산안 삭감에 20% 넘는 예산이 사라진 셈이다.
부산과 대전의 연구산업진흥단지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도 48억원에서 40억원으로 삭감됐다. 연구산업진흥단지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새로 생긴 지원 사업인데, 출범 1년 만에 예산이 삭감되면서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됐다. 원래 계획으로는 내년 예산이 64억원으로 올해보다 16억원 증액돼야 했다.
지역 과학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해 추진하는 지역과학관 활성화 지원 사업도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의 반대 의견에도 예산이 삭감됐다. 올해 예산은 203억1400만원인데, 내년에는 116억5900만원으로 42.6% 삭감됐다. 과기정통부가 한 차례 삭감한 171억9100만원보다도 큰 폭으로 예산이 줄었다.
한웅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개별 사업의 입장에서 보면 예산이 줄어들면 당연히 원래 목표했던 것들을 달성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연구위원은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지역 R&D 예산 삭감이 어떤 영향을 줄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내년 한해를 지나고 나서 면밀한 후속 진단을 통해 사안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R&D 예산 삭감에 더 민감한 반응이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실이 한국연구재단의 과기정통부 R&D 사업 지역별 지원 예산을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 내년 전체 지원액 가운데 서울의 지원 비율이 33.1%에 이른다. 대전은 35.1%로 지원 비율이 서울보다 높다. 서울과 대전을 합하면 지역별 R&D 지원이 68.3%에 이른다. 여기에 경기와 인천까지 더하면 75.5%로 전체 예산의 4분의 3이 수도권과 대전에 집중돼 있다.
홍 의원은 “지역별 R&D 지원 예산 불균형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수도권과 대전에 비해 지역은 격차가 너무 심하다”며 “R&D 인력이 수도권과 대전이 아닌 지역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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