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스포인 '고려거란전쟁'을 봐야하는 이유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대하사극은 '역사가 스포일러'인 대표적 장르 중 하나다. 시대적 배경에 상상력과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퓨전 사극과 달리 주요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행동이 이미 정해져 있고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공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극은 그 특성상 많은 제작비를 요구하고 PPL 등을 통해 이를 충당할 방법도 제한적이다. 이런 이유로 '정통대하사극'의 입지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KBS 2TV '고려거란전쟁'은 이 같은 상황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정통대하사극이다. 이미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고려거란전쟁'은 당대 최강국 거란과의 26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려의 번영과 동아시아의 평화 시대를 이룩한, 고려의 황제 현종과 강감찬을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태종 이방원' 이후 약 1년 6개월 만에 선보이는 KBS의 34번째 대하드라마로 서기 993년부터 1019년까지 치러진 여요전쟁 중 1009년부터 1019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KBS 공사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고려거란전쟁'은 기획 단계부터 각종 최신 기술을 동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제작비 역시 역대 최대였다. '고려거란전쟁' 제작발표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인삿말을 남긴 김덕재 KBS 부사장도 "기존 어떤 대하사극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투여했다. 국민들의 대하사극을 향한 열망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고려거란전쟁'은 작품의 핵심이자 최신 기술과 제작비를 쏟아 부은 귀주대첩의 한 장면을 작품의 시작으로 택하며 시청자들을 순식간에 몰입시켰다.
'고려거란전쟁'은 '사극의 왕' 최수종이 10년 만에 복귀하는 사극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까지 최수종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따라가는 대하(大河)사극답게 고려 초반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가 공개되고 있다. 중심에 있는건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목종(백성현)과 천추태후(이민영), 김치양(공정환)의 궁중 암투다. 특히 목종을 맡은 백성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남색과 향략에 빠진 암군의 모습과 훌륭한 재상을 보호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명군의 모습을 오가며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목종이 곧 퇴장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에 인상깊은 연기를 볼 장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백성현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를 김동준 역시 자신의 서사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조용히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 양규(지승현)와 정변을 일으킬 강조(이원종)부터 고려를 침입할 빌미를 찾고 있는 거란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며 앞으로의 전개를 궁금하게 하고 있다. 아직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최수종 역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 '강감찬' 혹은 '귀주대첩'이 아닌 '고려거란전쟁'인 이유 역시 이렇게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은 나쁘지 않다. 촘촘한 캐릭터 구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배우들의 연기,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규모 전쟁신 등이 조화를 이룬 '고려거란전쟁'은 1회 5.5%, 2회 6.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정통사극에 목말랐던 시청자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고려 거란 전쟁'은 OTT 플랫폼으로 넷플릭스를 택했다. 대하사극에 익숙한 기존의 시청층뿐만 아니라 젊은 시청자들까지 유입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시청률과 화제성 등으로만 '고려거란전쟁'을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고려거란전쟁'이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시대를 보는 아이디어, 인사이트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김덕재 KBS 부사장의 말처럼 '고려거란전쟁'은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의미를 주고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준다. 또한 수신료 분리징수·수신료 인상 등의 논의가 치열한 시점에서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가장 잘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의 대군을 물리친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만으로도 '고려거란전쟁'은 꾸준히 시청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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