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주 69시간’ 한발 뒤로 물러났지만 일부 업종·직종은 고수키로

김지환 기자 2023. 11. 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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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근로시간 설문조사 및 개편 방향 발표
“주 52시간제로 어렵다”는 사업주 14.5%뿐
노동계 “‘주 69시간’ 불씨 살려둔 것” 비판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설문조사 결과 및 개편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노동부 제공

정부가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일부 업종·직종에서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3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해 특정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하도록 한 방안을 발표했다가 전 사회적으로 역풍이 불자 적용 범위를 좁히기로 했다. 정부가 시행한 근로시간 설문조사에서 사업주 대다수는 현행 주 52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계는 정부가 ‘주 69시간제’ 추진을 위한 불씨를 남겨뒀다고 비판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근로시간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노동부 브리핑이 끝난 뒤 한국노총에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 근로시간 등 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6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전면 중단을 선언한 한국노총도 대통령실 제안을 받아들여 전격적으로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했다.

앞서 노동부가 지난 3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입법예고하자 청년 노동자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거셌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완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노동부는 지난 6~8월 6030명(노동자 3839명, 사업주 976명, 시민 1215명)을 대상으로 방문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노동부가 “획일적·경직적 제도”라고 비판했던 현행 주 52시간제(법정 40시간+연장 12시간)가 현장에서 정착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최근 6개월간 주 52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업주는 14.5%에 불과했다. 주 52시간제는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졌다. 어려움을 겪은 사업주 중 36.6%는 추가인력을 채용했다고 답했다.

주 52시간제와 같이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총량은 유지하되 주 단위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의 경우 동의 비율(노동자 41.4%, 사업주 38.2%, 시민 46.4%)이 비동의 비율보다 약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특히 연장근로 단위 확대를 일부 업종·직종에만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선 노동자 43.0%, 사업주 47.5%, 시민 54.4%가 동의해 동의와 비동의 간 비율 차는 더 컸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 개편이 필요한지를 묻는 항목에서는 업종으로는 제조업·건설업, 직종으로는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공학 기술직의 응답 비율이 노사 모두 높았다.

이 차관은 향후 정책방향에 대해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로 한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면 특정 주에 몰아서 52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연장근로 관리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확대하면 한 달 치 연장근로시간인 52시간(12시간×4.345주)을 한 달 중 특정기간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 52시간 상한을 넘을 수 있는 우회로가 열린다. 노동부는 일부 업종·직종에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경우 주당 근로시간 상한 설정,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 등을 노동자 건강권 보호장치로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올 1~8월 포괄임금 오남용 의심 사업장 87곳에 대한 기획감독 결과도 발표했다. 87곳 중 임금체불 64개소(73.6%, 26억3000만원), 연장근로 한도위반 52개소(59.8%) 등을 적발해 행정·사법 조치했다.

노동계는 노동부 근로시간 개편 방향에 대해 반대 견해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개편방향을 확정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는 노동시간 개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특정 시기에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필요가 있다면 현행 탄력근로시간제나 선택근로시간제를 활용하면 된다”고 밝혔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주 52시간 상한의 예외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말 그대로 예외적인 제도로 운영되어야지, 특정 업종·직종에 대해선 전면적으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주 69시간제’ 추진의 재판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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