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 주민들과 중성미자 주제로 수다 떨어요"

정선=박건희 기자 2023. 11. 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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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0m 예미랩, 과학문화마을 거점으로
예미랩 내부에서 중성미자 검출에 대해 설명하는 소중호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 정선=박건희 기자

"'우주를 탐험하는데 왜 지하 1000미터 아래로 들어가요?'라고 묻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 아이들에게 중성미자 실험시설인 '예미랩'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땅 속의 우주'가 됐을 겁니다."

강원 정선군 소재 예미산 지하 1000m 아래 만들어진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실험시설인 '예미랩'. 서울 잠실 롯데타워 길이인 555m보다 깊은 600m 터널을 뚫고 검은 먼지가 지나는 철광석 레일을 지나 맞닥뜨린 회색빛의 거대한 지하실험실에서 지난 7일 만난 소중호 IBS 책임기술원이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이같이 말했다.

정선군 일대를 과학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그는 "정선군 내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주민 누구나 연구단을 방문해 우주를 이루는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토론할 수 있다"며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과 수다 떨듯 핵입자물리 이야기를 하는 동네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과학으로 수다 떠는 마을' 떠올려

약 1년여 전인 지난해 10월 5일 준공한 예미랩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관측 등을 통해 우주의 구조와 기원을 연구하는 실험시설이다. 지하 1000m에 실험실을 구축한 이유는 이곳에선 우주에서 오는 방사능이 지표면에 비해 5만분의 1로 차단돼, 관측이 쉽지 않아 '유령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 관측은 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 박사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리드에 위치한 지하실험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당시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간 도넛 가게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과학문화마을'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평범한 노인들은 우주의 23%를 구성하고 있지만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암흑물질의 유력 후보 '윔프(WIMP)'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박사는 "그 순간 '동네 전체가 수다 떨듯이 과학 얘기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을을 내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소 박사는 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예미랩이 준공하자 예미랩이 기점이 되는 과학마을을 떠올렸다. 먼저 직접 인근 학교에 연락해 우주 입자, 핵물리입자에 대한 강연을 자청했다. 소 박사의 강연 기회를 마련한 김문섭 강원사북고 교사는 "강원 정선군 아이들이 과학자를 만날 기회 자체가 없다"며 "학생들이 과학자를 직접 만나면서 이공계 진로진학 상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극심한 지방 소멸, 낮은 출생률에도… '꿈은 마을에 있다'

소 박사의 노력으로 유아부터 중학생까지 참여한 마을 단위의 첫 행사가 지난달 열렸다.  정선 신동읍 함백중고등학교 총동문회의 지원으로 '과학 그림그리기 대회'를 열었다. 어른들이 간식을 만들어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등 대회는 지역 축제가 됐다. 초등학교 2곳, 중·고등학교 각 1곳에서 총 180명이 참가해 '예미랩'과 '우주', 그리고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광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첫 행사의 성료에  탄력을 받은 IBS 연구진과 읍내 교사들은 내년 4월 과학의 달을 앞두고 또 다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지난 주 첫 기획회의를 마쳤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퀴즈, 초등생을 중심으로 한 '나무젓가락으로 다리 만들기' 등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현재 한창 공사중인 지하실험연구단 지상연구실은 추후 지역 주민을 위한 세미나실로 개방할 예정이다. 한쪽에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검출기 등을 전시해 누구나 관람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예미랩에서 연구를 수행중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연구자들과의 만남도 기획중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정선군 교사들은 3년 내 학교의 인원이 한 반에 약 7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도 문제지만 더 나은 교육·생활 여건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태백에서 한국항공고 교사로 근무하는 김문섭 교사는 "아이들에게 꿈꾸는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결국 자신들이 이 마을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직업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미래의 노벨상을 꿈꾸게 될 것"이라며 "아이들의 꿈은 그 마을에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제1회 과학그림그리기 대회에 참가한 신동읍 학생들. 소중호 제공

[정선=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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