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스물다섯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11. 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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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프리즘’



“유일하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음에 감사하는 일인 것 같아. 보잘것없이 하찮고 멋도 향도 없는 일상이지만.”

예진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음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진을 비롯한 주인공 도원·호계·재인 등 소설 속 인물들의 일상은 처참히도 무너진다. 일상의 붕괴는 다름 아닌 주인공들 자신들이 지닌 미숙함에서 나왔다. 결국 평온했던(혹은 생각했던) 일상은 관계로 인해 무너지고, 다시 회복되길 반복한다.

프리즘처럼 우리의 일상도 시시각각 색을 달리한다. 예진의 안도와는 다르게 ‘멋도 향도 없는 일상’은 없다. 이미 모두가 고유한 향과 색을 띠며 일상을 꾸려간다. 덕분에 얽히고설킨 네 명의 주인공같이, 우리도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삶을 다양한 색으로 비춰주고 있다. 복잡하고 날카롭지만 프리즘의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인생이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그리고 다양한 빛을 수렴하다 보면, 어느샌가 우리도 성장통이 지나 조금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윤인혁 / 사회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윤인혁



■모던 키친(박찬용 지음 / 에이치비프레스)

‘모던 키친’



음식과 그 음식을 구성하고 있는 존재들의 여정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음식은 무수히 많은 연결의 집합체다. 그리고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수많은 연결의 피날레다. 하지만 음식이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그리고 우리를 만나기까지 걸어온 길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그 재료의 원산지는 어디이고, 재료를 획득하고 또 가공한 방식은 무엇일까.

‘모던 키친’은 그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음식의 탄생을 취재한 책이다. 농장과 식품 공장 그리고 주방까지. 음식이 만들어지는 데 관여하는 공간들을 사진과 함께 담아내 ‘식품’이라는 역할 뒤에 가려진 음식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게끔 이끈다. 탄생부터 시작해 완성되기까지 어떤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게 되면 음식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구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김현구



■몫(조기현 지음 / 이매진)

몫‘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참 이상한 일이다. 다른 일은 오래 하고 잘하면 경력을 인정받는데, 이 일만은 전문가로 존경받는 사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헌신적이다’ ‘딸 같다’는 말은 듣지만 ‘저렇게 되고 싶다’ ‘멋지다’라는 말은 잘 듣지 못한다.

조기현은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으로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들 ‘영 케어러’가 처하는 특수한 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전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청년이 주 돌봄자가 되기까지는 빈곤으로 인한 가족 해체가 선행된 경우가 많고, 당장 돌봄과 부양을 해내는 것만도 벅차다. 돌봄과 병행하기 어려워 학업 중단이나 퇴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들의 위기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언뜻 의료비와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돌봄이 떠넘겨야 하는 일이라는 전제를 그대로 두면 돌보는 삶 역시 뒤처진 시간으로 남고 만다. 조기현은 돌봄을 부담도 영광도 아닌 누구나 함께 져야 할 당연한 의무, ‘몫’으로 다시 정의한다. 그가 그리는 돌보는 자의 관점으로 바라본 풍경은 숨을 늦춘다. 위기가 긴박해서만이 아니다.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느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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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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