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명의 계좌 만들어 대포통장 유통시킨 일당 검거

김태희 기자 2023. 11. 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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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고 있는 A씨 조직원의 모습.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노숙자의 명의로 유령법인을 만든 뒤 법인 통장 계좌를 범죄조직에게 넘기고 사용료를 챙겨온 ‘대포통장’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범죄단체조직,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총책 A씨(30대) 등 32명을 검거하고, 이 중 비슷한 범죄로 이미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A씨 등 9명에 더해 조직 간부 20대 B씨 등 2명을 추가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A씨 등은 2020년 9월부터 최근까지 경기도와 대전, 대구 등의 노숙자 22명에게 명의를 넘겨받아 유령 법인 38개를 만든 뒤 법인계좌 125개를 개설해 불법 도박사이트와 전화금융사기 등 범죄 조직에 제공하고 사용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동네 선후배들이 점조직처럼 모여 단체를 꾸린 이들은 4∼5명씩으로 구성된 ‘통장개설팀’과 ‘A/S 팀’에 배정돼 전국 각지로 나뉘어져 활동했다.

통장개설팀은 주거가 확실치 않은 노숙자나 신용불량자에게 접근해 100만∼200만원을 주고 인감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법인을 설립하고 통장을 개설했다. A/S팀은 법인 서류를 관리하고, 만들어진 계좌들의 금전 흐름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범죄조직들에 통장을 넘기는 역할은 대부분 A씨가 도맡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월 80만∼200만원의 사용료를 받아가며 국내외 도박사이트 등에 계좌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기간 해당 계좌를 거친 입출금액은 모두 1조8200억원에 달한다. 이들이 넘긴 계좌를 통해 발생한 전화금융사기 피해자는 101명, 피해액은 68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 관련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금융기관에 제출된 법인 관련 서류를 토대로 등기 대상자들의 금융기록을 조사한 끝에 이들을 차례로 검거했다. 조직원들은 A씨로부터 월 300만원가량의 임금과 개설된 통장 1개당 10만원 남짓의 인센티브를 받고 범행에 가담했으며, 받은 돈은 생활비와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수사망이 조직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원 가명을 사용했고, 조직원끼리도 사무실 위치를 공유하지 않는 등 추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하부 조직원이 경찰에 체포될 시 “인터넷에서 고수익 알바를 구한다고 해 참여했다”고 둘러대도록 사전에 교육하고, 텔레그램 대화방을 수시로 삭제하게 하는 등의 행동 수칙도 만들어 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해 체포된 32명 전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면서 “범죄에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령 법인 계좌 900개를 추가로 확인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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