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삼각주에서 심연(深淵)을 꿈꾸는 골퍼들이여!
[골프한국] 한 골프장에 16년째 다니고 있다. 관악산 자락으로 이사 오며 이용하기 시작해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도 계속 애용하고 있다. 숲속이라 4계절을 대하며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데다 시간제한이 없어 '골프탐험가'를 자처하는 내게는 최적의 연습장이다.
거리가 꽤 먼 지역에 살면서도 이 연습장을 찾는 분이 많다. 한 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온다는 분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집 근처 연습장은 이용료가 비싼 데다 시간제한을 하는 바람에 차분하게 연습할 수 없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한곳에 오래 다니다 보니 어쩌다 찾는 '뜨내기'가 아닌 한 거의 모든 내장객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주말에 짬을 내 잠깐 연습장을 찾는 젊은 층과는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지만 대부분은 나이를 초월해 커피 타임을 즐기고 눈이 마주치면 등산로 입구의 식당에서 막걸리 모임을 갖기도 한다.
우리 골프장은 큰 강 하구의 삼각주 같다. 각계각층에서 활동하셨거나 활동하시는 분들이 모인다. 현직에 있는 분들은 이른 아침 시간이나 주말에나 나오지만 은퇴한 분이나 시간 여유가 있는 분은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연습장을 찾는다.
몸담은 분야도 참 다양하다. 장·차관이나 시장을 지낸 분도 있고 교수, 교장 선생님, 소설가, 시인, 금융기관의 장을 지냈던 분, 개업 중인 의사,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 기업의 오너, 자영업을 하는 분, 아직 농사를 짓는 분 등 거의 모든 직업군이 망라돼있다. 가끔 TV 화면에서 보던 이름있는 탤런트의 얼굴도 보인다. 이분들의 배우자 역시 대부분 골프를 즐겨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다양한 직업군만큼 이들이 펼치는 골프의 스펙트럼도 한없이 넓다. 연령대가 20대 초반에서 80대 중반까지 퍼져있으니 골프 이력은 물론 기량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걸음마를 하는 단계, 골프 맛을 알기 시작한 단계, 한때 싱글을 치며 전성기를 보냈던 사람, 산전수전 다 겪고 달관 혹은 체념의 경지에 이른 사람, 나이 70~80에도 보다 나은 스코어를 위해 스윙 교정에 열심인 사람, 지나는 골프고수들(?)로부터 지적받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괴기한 스윙을 버리지 않고 운동 삼아 매일 연습장을 찾는 사람, '이제 골프와 결별해야겠다'고 말하면서도 다음날 어김없이 연습장에 모습을 보이는 사람 등등.
말하자면 연습장은 골프의 삼각주다. 온갖 곳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기들이 다른 물줄기와 만나 흘러 흘러 바다와 만나는 삼각주에 모이는 것처럼 연습장에도 '왠갖 잡새가 날아들 듯' 온갖 골퍼들이 모여든다. 다른 스포츠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나 골프의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을 동원하면 의문이 풀린다.
- 골프는 끝이 없는 게임이다.(영국 속담)
- 인간의 지혜로 발명한 놀이 중에 골프만큼 건강과 보양, 상쾌함과 흥분,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다. (전 영국수상 아더 발포어)
- 골프 치러 가는 것과 장례식에 가는 것은 물론 다르다. 그러나 두 곳에서 느끼는 슬픔은 같다. (골프평론가 버나드 다윈)
- 골프코스는 머물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야 할 덧없는 세상살이 그 모든 것의 축약이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외교관 장 지라두)
- 골프를 보면 볼수록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보면 볼수록 골프를 생각하게 한다. (골프 평론가 헨리 롱허스트)
- 골프는 결코 끝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것은 다듬어진 자연에서 외롭게 헤매는 것이다. 골프는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고 또 생각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골프는 인생 자체보다 더 인생 같은 것이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 데이비드 누난)
- 골프는 특별한 목적 없는 라운드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
위에 예로 든 골프 명언들을 보면 왜 골퍼들이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노역을 되풀이하는지 감이 잡힌다.
골프라는 불가사의에 홀려 시지프스의 노역을 떠안은 사람들이 삼각주에 모여드는 물줄기처럼 연습장에 모이는 것이다. 골프의 오묘함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나이도 잊고 계절 가리지 않고 골프의 삼각주에 모이는 것이다.
그 기세 좋던 물줄기들이 바다와 만나는 삼각주에서 한 방울 물이 되듯 나름의 골프애호가들도 연습장을 찾아 샷을 휘두른다. 삼각주의 물은 흐름에 따르지만 연습장을 찾는 이들은 골프의 심연을 꿈꾼다. 그 심연에 다다르지 않아도 좋다. 심연의 꿈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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