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코알라가 있다면, 우리에겐 산양이 있어요 [영상]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울진삼척 산불 피해 현장의 멸종위기종 산양이 화마에 빼앗긴 서식지 경계 밖에서 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피해지 경계 밖에서는 곳곳에서 산양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었다.
지난 10월 21일 녹색연합 야생동물탐사단이 울진삼척 산불 피해지역을 찾았다. 산불 피해지역 및 주변지역의 산양 서식지 변화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것이었다. 야생탐사단은 “똥자리”라 부르는 산양의 배설물을 찾아 위치와 현황을 기록하며 산불 피해 현장의 산양 서식지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산양의 배설물은 커피콩처럼 생겼다. 한 장소에 천여 개의 산양 배설물이 쌓여 있는 모습을 서식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장소에 배설하는 산양의 습성 때문에 이런 장소를 산양의 “똥자리”라 부른다. 산양의 똥자리는 대개 높은 고도의 경사면에서 주로 발견된다. 앞은 탁 트여서 천적을 피하기에 유리하고 뒤는 바위 등의 암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을 선호한다.검은 숲에 초록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검게 불탄 나무들 사이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초본류는 숲이 자연의 힘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경북 울진군 북면 덕구리의 경계 일대다. 응봉산(999m)에 보리골로 이어지는 능선 일대다.
응봉산은 강원 삼척과 경북 울진의 도 경계지에 위치한 전 세계 최남단 산양 서식지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산양 집단 서식지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야생지대이자 첩첩산중으로 사방이 암릉과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 그래서 작년 산불 때도 진화에 애를 먹어 10일 동안 산불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모니터링에서 산불 피해지와 맞닿아 있는 미피해지역에서 산양 흔적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응봉산 정상에서 삼척 덕풍계곡 방향으로 이어지는 지역에서 크고 작은 산양 똥자리 200여개를 발견했다. 산불 직후의 조사 당시보다 5배는 늘어난 수치였다. 무인센서카메라를 설치한 결과 각각 다른 개체로 추정되는 여러 마리의 산양이 한 달 사이 30회가량 촬영되었다. 야생동물탐사단의 모니터링에 참여한 김효원 씨는 “산양이 누고 간 배설물을 관찰할 수 있었고, 담비, 너구리, 오소리, 고라니들의 구체적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며 야생동물 서식 상황을 밝혔다.
☞포털 환경상 영상이 보이지 않을 경우, 아래 한겨레 누리집과 유튜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16038.html
https://www.youtube.com/watch?v=3Pf51Kx_46E
산불 피해지에 서식했던 산양이 여러 이유로 기존의 서식지에서 산불 피해를 입지 않은 덕풍계곡 능선부 인근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탐사단은 작년 산불 직후부터 올해 10월까지 멸종위기종 산양에 대해 시민과학 차원에서 울진 삼척 산양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산불 피해지에 설치한 무인센서카메라 30대 중 절반이 넘는 지점에서 산양이 관찰됐다. 산불이 진화된 4월부터 출현하기 시작해 8월까지 출현빈도가 상승했다. 벌목 및 임도 보수공사가 진행되는 지점에서는 출현하지 않거나 공사 이후 출현 빈도가 낮아졌다. 산불 이후 야생동물은 다시 서식지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지만 벌목, 임도공사와 같은 인위적 개입이 많아진 지역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울진삼척 대형산불은 우리나라도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216시간동안 20,928ha의 숲을 태우며 역대 최장, 최악의 산불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울진삼척뿐만 아니라 작년 한 해 동안 740건의 산불로 24,782ha의 숲이 불탔다.
야생동물은 기후재난으로 인한 대형산불의 숨은 희생자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0년에 호주 남부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인해 10~3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죽거나 다친 것을 예로 들며 대형산불이 생물다양성 악화를 초래하는 멸종위기 요인이 되었음을 보고했다. 대형산불에 따른 야생동물의 서식지 피해 조사와 야생동물의 서식지 회복을 고려한 생태복원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까지의 산불 피해지 복원은 인공 조림에 의한 식재 복구가 중심이었다. 자연회복력을 무시한 인공 조림 자체도 문제지만, 조림을 하기 위해서는 산불 피해목을 벌채하고 중장비 통행을 위한 임도를 개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산불 속에서 살아남은 야생동물은 또 다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생태복원에서 서식지의 회복은 종의 이입과 종다양성의 확보에 직결된다. 또 복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식지에 대한 2차 훼손을 막기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차 훼손은 그나마 남아 있는 자연치유능력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시도와 계획이 복원 주체의 편의성이 중심이 되기보다 산불 피해지가 본래의 생물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심한 계획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산림생태계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곳이며 야생동물의 종 다양성은 식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산불 피해지 복원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검토 되어야 하는 것이 야생동물이다. 산림생태계의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서 산림을 관할하는 산림청과 멸종위기종 정책을 수립하는 환경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지자체가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해 야생동물을 고려한 복원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산림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고 서로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산불 피해지의 복원과 회복은 나무를 비롯한 식생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기존에 서식했던 다양한 종들이 다시 공존할 수 있도록 회복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때 산불 피해지의 온전한 복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대형산불의 발생 빈도는 높아질 것이다. 산불 대응을 넘어 피해지를 어떤 관점으로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식생과 야생동물에 대해 따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라 산림생태계의 종합적 회복을 위한 생태복원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김원호 기후위기기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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