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수 오지환, 또 하나의 천직이 된 ‘5번’ 5지환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염경엽 LG 감독은 한국시리즈 준비과정에서 1차전부터 쓸 선발 라인업을 일찌감치 공개했다. 1번 홍창기(우익수)부터 9번 신민재(2루수)로 이어지는 베스트9을 공개하고 청백전부터 가동했다.
그런데 딱 한자리만큼은, 변동의 여지를 뒀다. 염 감독은 3번 김현수(지명타자)와 4번 오스틴 딘(1루수)을 잇는 5번 타순에 오지환(유격수)을 우선시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문보경(3루수)과 타순을 맞바꿀 가능성을 열어놨다. 준비과정에서의 두 선수 타격감을 보고 중심타선을 완성하겠다는 뜻. 결과적으로, 염 감독의 선택은 ‘플랜A’였다.
‘5번 오지환’에서 LG가 한국시리즈 ‘황금 열쇠’가 될지 그때는 누구도 짐작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잠실 2차전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연속 터진 오지환의 홈런으로 LG는 1994년 이후 맺힌 29년 한풀이를 완성해가고 있다.
오지환은 이번 시리즈 4차전까지 타율 0.400(15타수 6안타) 3홈런 8타점에 볼넷 3개를 얻고 있다.
오지환은 이미 유격수로는 리그 전체에서도 ‘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유격수’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붙는다. 또 누구라도 오지환이라면, 유격수 자리에 선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5번 타순’도 오지환’과 연관성이 깊어지고 있다. 오지환이 5번타자로 본인 가치를 극대화한 것은 지난해였다. 2번타자로도 중용되는 등 타순 변화가 종종 있었던 오지환은 중심타선의 마지막 해결사인 5번타자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2021년만 해도 오지환은 2번과 5번 타자로 거의 절반씩 출전했지만, 지난해에는 5번타자로만 103경기에 출전했다. 무엇보다 5번 타순에 홈런 17개를 터뜨리며 OPS 0.848로 중량감 있는 타격을 했다. 각 타순에서 나타나는 성적 변화를 놓고 ‘왜’라는 물음에 객관적 답을 돌출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오지환이 5번 타자로 조금 더 활약도 높아진다는 것은 그간의 결과로 패턴화된 현상이었다.
어쩌면 연륜이 쌓이면서 수 싸움에서 시야가 넓어진 결과일 수 있다. 5번 타순은 상대 배터리 입장에서는, 흐름을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고비 중 하나다. 5번타자의 위압감을 고려해 3, 4번 타자와 승부의 방향도 잡아가게 된다. 5번타자 시선에서는 3, 4번 타순을 지나는 동안 상대 배터리의 움직임을 읽을 수도 있다.
지난 10일 수원 3차전. KT 마무리 김재윤은 7-5 리드에서 9회 등판해 직구를 11구 연속 던졌다. 그렇게 2사 1루에서 오스틴과 볼카운트 1-2. 김재윤은 직구가 연이어 파울 커트 당하자 슬라이더를 3개 연속 던졌는데 모두 볼이 되며 볼넷. 이어 나온 오지환은 초구 포크볼을 흘려보낸 뒤 한 번쯤 날아올 직구가 2구째 한복판으로 오자 100% 자기 스윙으로 돌렸다. 적어도 4차전까지 최고의 장면이 LG 5번 타순에서 나왔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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