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자식을 가르치지 마라

2023. 11. 1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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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아마도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다.

자식을 잘 키운 부모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자식 기르기가 어렵고,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가 옳은 것을 가르치려 했는데 자식이 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이에 계속 화를 내게 되면 자식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다.

그런데 또한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모 자식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까움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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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아마도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다. 자식을 잘 키운 부모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자식 기르기가 어렵고,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을 셋은 키워야 어른이 된다’는 말도 있다. 셋 이상 키우면 그 가운데 하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자식이 내 뜻과 달리 가고, 문제가 발생하면 삶의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였을 것이다.

한둘의 자식이라면 뜻대로 자라주기도 하지만 셋을 넘어가면 어찌할 수 없는 만남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둘이라고 해도 그런 만남은 허다하다. 둘까지는 운이 좋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의미인데 그런 측면에서 아이를 적게 낳는 요즘은 그저 운이 좋을 수도 있겠다.

자식을 키우는 비법에 대한 강의는 들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일단 세상의 자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식도 다 다르다. 아들이 다르고, 딸이 다르다. 여기에 첫째가 다르고, 둘째가 다른 한편 부모 역시 모두 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부모라고 하더라도 20대의 부모가 다르고 30대 시절의 부모가 다르게 된다. 조급할 때의 부모와 여유가 생긴 부모도 다른데 어찌 자식교육에 정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필자는 자식을 가르칠 때 꼭 기억했으면 하는 글을 ‘맹자’의 한 부분인 ‘이루 상’에서 만났다.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가 맹자께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일단은 전제가 안 가르친다는 내용이니 약간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전제에 따라서 답도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군자는 자식을 직접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인데 그러면 왜 자식을 가르치면 안 되는 걸까.

여기에서 맹자는 좋은 답을 주었다. 부모가 옳은 것을 가르치려 했는데 자식이 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이에 계속 화를 내게 되면 자식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을 맹자는 덧붙인다. 자식을 가르치는 데 성을 내는 등 감정을 실으면 올바르지 않은 것이고, 이는 오히려 자식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부모 자식 간에 축하하고 위로하는 마음은 깊어져야 하지만 나무라고 비난하는 마음은 적어야 한다고 본다. 부모 자식 간의 상처도 오래간다. 맹자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한다. 부자 간에는 선(善)을 행하라고, 질책해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부자 간의 질책이 결국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데 부자 간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모 자식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까움이라는 점이다. 부모 자식은 서로 가깝고 친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나의 말이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서로 멀어진다면 가르침은 그르침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포기하고 못 본 체하라는 말일까.

맹자는 옛 사람의 이야기를 슬쩍 인용하고 있다. 옛 사람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쳤다고 말한다. 필자는 자식에게 좋은 스승을 찾아주는 일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스승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도와줄 필요도 있겠다. 어쩌면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세 번이나 갔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교훈은 결국 좋은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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