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산행ㅣ일본 동북지방의 산] 곤니치와. 도호쿠 야마! 안녕하세요. 동북의 산!
동북지역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本島)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일본 동북지역은 한국에 알려진 지명도에 비해 무척 가깝고 자연미가 빼어나다. 아오모리와 아키타는 인천공항에서 각각 주 3회 항공편이 운항하며, 2시간 30분이면 닿는다.
1,000~2,000m 높이의 산이 많아 한국 등산객의 입맛에 잘 맞아 관광을 겸한 당일산행지로 적합하다. 중국이나 한국 관광객이 드물어 조용히 일본 전통문화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고도는 낮지만 위도가 높아 2,000~3,000m대의 고산식물을 볼 수 있다. 북알프스 같은 곳에 비하면 산행이 쉬워 등산초보자나 노약자들을 동반한 산행지로도 인기다.
본지는 아오모리, 이와테, 아키타 세 개 현의 명산을 소개한다.
아오모리현 핫코다(八甲田)
핫 코코아처럼 달달한 핫코다 절경을 걷다
로프웨이 정류소~아카쿠라다케~이도다케~오다케~고산습지~스카유온천 10km
케이블카 창밖으로 드넓은 경치가 펼쳐졌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것 같은 깨끗한 풍경에 놀란다. 부드러운 산의 결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너도밤나무숲. 숲 너머엔 바다가 원을 이루며 해안선을 그렸고 아오모리시가 차분히 자리를 잡고 있다. 단순하면서 깨끗한, 일본 만화 같은 풍경이다.
10분 만에 670m에서 1,320m로 고도를 높였다. 핫코다(八甲田)산은 1,584m 높이의 일본 100명산에 속하는 산이다. 아오모리현(青森県) 도와다하치만타이(十和田八幡平)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핫코다 로프웨이를 나와 전망대에 서면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산이 있다. 구름 사이로 홀로 고고하게 솟은 산이 아오모리현의 다른 명산인 이와키산(岩木山·1,625m)이다.
핫코다산의 특징은 눈이 많다는 것이다.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는 눈에 덮여 있어 세계적인 산악스키 대상지로 손꼽힌다. 질 좋은 눈이 매일 내려 신설을 가르는 산악스키의 묘미를 매일 즐길 수 있다.
핫코다산은 1,500m대 높이지만 위도가 높은 북쪽이기에 일본 북알프스의 2,000m대 환경을 갖추었다. 2,000~3,000m대의 큰 산이 부담스런 이들을 위한 대중적인 고산인 셈이다. 주봉인 '오다케'를 중심으로 여덟 개 봉우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 꼭 거북이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핫코다(八甲田)'가 됐다 한다. 또 다른 설은 일본에서 숫자 8은 아주 많다는 뜻인데, 일본 무사의 투구같이 생긴 봉우리가 많다고 해서 유래한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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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같은 정비가 잘된 길을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온 관광객을 위한 8자 형태의 산책로다. 구상나무와 산죽이 빼곡하게 벽을 이뤘다. 핫코다산의 명물은 고산습지다. 10분을 걷자 트인 경치가 한국에서 온 산객을 맞는다. 노란 풀 사이로 물이 차 오른 습지와 초록의 산등성이들이 인사를 한다.
핫코다산이 처음 유명해진 건 온천 때문이다. 산 중턱의 스카유온천은 1954년 일본에서도 국민온천 제1호로 지정되었다. 하산 지점에 온천이 있어 자연스럽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핫코다산이지만 아직 초록색 일색이다. 매년 10월 20일쯤에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
올라갈수록 나무들의 키는 작아지고 초원마냥 시야가 트인다. 핫코다 연봉은 물론 바다와 아오모리의 산줄기가 모두 드러난다. 등산로 곳곳이 조망터다. 핫코다산이 명산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런 탁월한 조망도 한 몫 한다. 지리적 특성상 동해와 태평양, 그리고 북해도가 다 보인다. 일본에서도 동해와 태평양이 모두 보이는 산은 드물다. 한동안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잠깐 숨 돌리며 뒤돌아보면 일본 본섬 최북단의 아오모리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르막이 끝나는 주능선에서 산 너머 동쪽 풍경이 펼쳐진다. 서쪽은 완만한 산세인 데 반해 동쪽은 가파르다. 벼랑 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어 보니, 산양이다. "스고이(대단하다)"를 외치는 일본 등산객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일본에서도 산양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키 큰 나무가 없어 가야 할 산줄기가 훤하다. 덕유평전처럼 저 멀리서 걸어오는 등산객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여기서 북쪽 산자락이 내려다보이는데 이곳이 100년 전 행군하던 군인 199명이 죽은 곳이다. 험한 산악지형이 아닌 완만한 고개임에도 워낙 많은 눈이 오는 지역이라 행군에 나선 210명 중 199명이 동사했다. 그만큼 아오모리는 눈과 추위로 유명한데 흔히 북해도가 눈이 가장 많이 올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오모리가 더 많이 온다고 한다. 바람도 강해 영하 18℃가 평범한 겨울 날씨다.
주능선을 이어간다. 파노라마로 열린 경치가 쭉 이어진다. 동쪽의 가파른 절벽엔 붉은 흙이 붓질을 해놓은 것마냥 예쁘다. 작은 미니사당과 돌탑을 쌓은 곳은 무명봉인데 아오모리시내에서 보면 이곳이 정상처럼 보인다. 바닥에 엎드린 소나무가 밭을 이뤘다. 1,548m 높이의 아카쿠라다케(赤倉岳)는 봉우리라기보다 길가에 정상 표시만 있는 곳이다. 로프웨이 때문에 이 코스가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찾는 사람이 많아진 봉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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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영남알프스와 다른 것은 훨씬 산세가 둥글둥글 부드럽고 시야가 깨끗하고 바다까지 드러나는 것이다. 얼마 안 가 돌탑이 있는 이도다케(井戶岳·1,550m)다. 원래는 저만치 불끈 솟은 암봉인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에 정상 표시를 해놓았다. 이도다케를 지나며 산길은 분화구를 따라 돈다. 백록담에 비하면 작은 오름 같은 분화구지만 이색적이다.
분화구를 지나자 핫코다의 주봉인 오다케(大岳·1,584m)가 보인다. 최고봉이지만 위협적이기보다는 황소 등마냥 푸근한 모양새다. 오다케의 사면에는 거대한 구멍이 있는데 연중 2개월을 제외하곤 눈이 쌓여 있다. 독특한 것은 정상을 기준으로 서쪽은 나무가 많고 반대편은 나무가 없다. 이유인즉 겨울이 되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이 불어 반대편 능선으로 눈을 날려 서쪽 사면에는 눈이 깊게 쌓이지 않는다. 서쪽 사면이 보통 2m, 동쪽 사면이 10m 정도 쌓인다. 그래서 산악스키를 탈 때도 나무가 있나 없나를 보고 방위를 확인할 수 있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 고도가 뚝 떨어진다. 정상 아래의 안부에 무인대피소가 있다. 건물 꼭대기에 창문이 있는데 겨울이 되면 저곳이 출입구가 된다. 많은 등산객이 식사를 하고 숨을 돌리는 곳이다. 정상으로 이어진 길은 사람이 많아 간간히 정체가 된다. 일본인 특유의 예절로 사람이 올라오면 옆으로 비켜나 기다리거나, 걸음이 빠른 사람이 추월하도록 옆으로 비켜난다. 몸에 배인 등산예절만큼은 부럽다.
오다케 정상은 덩치만큼이나 너르다. 가리왕산 정상과 비슷한데 그보다 더 넓고 완만하고 경치도 시원하다. 정상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건 한국과 매한가지다. 산 너머 남쪽에는 거대한 너도밤나무숲이 한눈에 든다. 부드럽고 단순한 산세의 미학, 단풍이 더해진다면 풍경만으로 취하게 될 것 같다. 핫코다산 너머 서쪽의 시라카미산지 산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드넓은 너도밤나무숲이다. 끝없이 펼쳐진 숲의 파라다이스, 눈이 맑아지는 듯하다.
온 길을 되돌아가 무인대피소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하산한다. 하산길에 핫코다산의 제대로 된 고산습지를 볼 수 있다. 로프웨이 근처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축구장 여러 개를 합한 넓은 습지다. 숲 속을 걷다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드러난 광경에 눈이 호강한다. 습지 사이로 난 1m 폭의 데크길을 따라 걷다 뒤돌아서자 감탄이 절로 난다. 알록달록하게 물든 천연색 단풍이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듯 서 있다. 일본의 단풍은 뭐랄까, 만화처럼 깨끗하게 색조가 딱 떨어지는 맛이 있다.
숲을 지나면 두 번째 고산습지가 나온다. 노란 풀섭과 투명한 물, 잘생긴 구상나무와 화려한 단풍이 일본의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 준다. 숲길로 접어들어 빠르게 걷자,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된 단정한 건물이 보인다. 산행이 끝나는 스카유온천이다. 핫 코코아처럼 달달한 핫코다 산행이었다.
산행가이드
핫코다 로프웨이를 타고 1,320m 고도의 능선에서 산행을 시작해 아카쿠라다케와 이도다케, 주봉인 오다케를 올라 고산습지를 지나 스카유온천으로 하산하는 산행코스는 핫코다산의 베스트 코스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주면서도 탁 트인 핫코다의 능선과 정상에서의 경치, 매력적인 고산습지를 하루에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 이정표는 없지만 길이 단순하고 시야가 트여 있어 기본 산행 코스만 숙지하고 있다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가파른 오르내림이 몇 곳 있지만 같은 시간이 소요되는 국내산 당일산행에 비하면 쉬운 편이다. 총 산행거리는 10km, 5~6시간 정도 걸린다. 기후변화가 심하고 바람이 센 곳이므로 방수방풍재킷과 보온옷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핫코다산은 원래 산악스키로 유명한 곳이다. 11월부터 매일 눈이 오고 5월까지 눈이 남아 있다. 산행은 6월부터 10월까지가 적기다. 특히 10월 중순에 찾으면 절정의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9월 말부터 눈이 내리는 곳이므로 동계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핫코다산 가이드협회가 있으며 1일 가이드 비용은 1인당 3만 엔이다.
이와테현 하치만타이(八幡平)
산책하듯 즐기는 고원습지 트레킹
미가에시도우게 레스트하우스~하치만타이~겐타모리~차우스다케구치 10km
이와테현(岩手)은 아오모리현의 남쪽, 아키타현의 동쪽에 태평양과 접해 있다. 하치만타이(八幡平)는 1,613m 높이의 산으로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일본 100명산에 속하는 명산으로 해발 1,400~1,600m의 고원 화산지대다.
하치만타이는 산행이라기보다 트레킹에 가까운 코스다. 넓은 고원 위에 수많은 화산이 작은 언덕을 이루며 솟아 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늪과 습지가 흩어져 있다. 160종에 달하는 고산식물과 늪지대 식물의 보고다. 제주의 오름처럼 작은 봉우리가 솟은 화산지역인 셈이다. 사이사이에 많은 늪지대와 호수가 있다. 완만한 고원습지 트레킹이라 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날씨가 말썽이다. 비바람이 거센 데다 가스가 자욱해 시야가 5m 정도다.
일본 현지 산행가이드는 방수재킷과 바지를 입지 않으면 산행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 등산객들은 방수바지까지 준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 여러 사람이 산행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방수바지를 입은 정예 멤버로 빠르게 코스를 돌기로 하고 미가에시도우게 레스트하우스를 나선다.
레스트하우스의 고도가 1,510m이니 고도 100m만 올리면 정상이다. 예상대로 길은 완만하다. 걷기길 수준으로 길 정비가 잘되어 있어 악천후만 아니라면 노약자라 해도 무리가 없는 코스다. 그러나 비바람이 매섭게 압박해 카메라를 꺼내거나 메모할 엄두도 못 내고 빠르게 걷는 데 집중한다. 키 큰 전나무들이 훤칠한 폼으로 서 있고 길은 뛰어도 좋을 정도로 잘 닦여 있다.
산길 옆으로 연못이 나타난다. 안경처럼 둥근 연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안경연못'이다. 30m 깊이지만 위도가 높은 고산이라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큰 오르막 없이 온 것 같은데 20분 만에 정상이다. 가이드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완만한 곳의 전망대라 여겼을 만한 정상이다. 목재로 지은 2층 구조물 전망대는 공사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내리막 걷기길로 빠르게 걷자 전망데크다. 이곳이 하치만타이에서 가장 멋진 고원습지 전망대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바람은 매섭지만 길이 워낙 수월해 마음이 놓인다. 가스 속에서 뭔가 커다란 형체가 보인다.
무인대피소다. 들어가 복장을 정비하고 허기를 채운다. 무인대피소지만 화장실을 비롯해 내부까지 꼼꼼히 관리되고 있어 부럽다. 이렇게 완만한 지형에서 사고가 날까 싶은데, 간혹 사고가 난다. 대부분 조난사고인데 눈이 쌓였을 때 눈에 띄는 봉우리가 없다보니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서 발생한다. 원체 눈이 많이 오는 동북지역이라 하얀 사막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다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행은 눈이 없거나 적은 6~10월에 할 것을 권한다.
비가 옅어진 틈을 타 고원습지가 살짝 드러난다. 노랗게 익은 벼 같은 풀이 습지를 점령하고 빨래판 같은 홈이 난 목재로 데크길을 만들었다. 일본은 등산로에 산림보호를 위해 철제품을 거의 쓰지 않는다. 데크 나무가 수명이 다하면 옆으로 젖혀 놓아 썩게 내버려 두고 새로 설치한다. 반면 우리는 철제 사용은 물론 나무데크에 화학처리를 하여, 이 데크가 두고두고 자연을 해친다는 결과가 발표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얼핏 보면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에 태풍이 닥친 것 같은 장면의 연속이다. 앞 사람이 조금만 멀어져도 희미해진다. 촉감과 청각을 닫고 보면 꿈결 같은 장면이다.
오랜만에 조릿대가 나타나고 나무가 늘어선 평범한 오르막이다. 길지 않은 오름길 끝에 겐타모리(源太森·1,595m)가 있다. 하치만누마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산정이지만, 흰 가스와 비바람만 산객을 맞는다.
<일본 100명산> 저자인 후카다 규야는 하치만타이에 대해 "광대한 고원의 소박한 산들과 온천탕, 운치 있는 늪, 북방 특유의 수림이 산재해 일대가 고산식물의 낙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치만타이 산행을 '산책'이라 표현했다. 하치만타이의 진가는 고원을 한가롭게 산책하는 것이며, 기분 좋은 평원을 지나면 훌륭한 원시림이 나타나기도 하고 언덕을 넘으면 늪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듯 변화하는 풍경을 거니는 것이 하치만타이 트레킹의 재미다.
이와테현에는 100명산에 포함된 산이 3곳인데 하야치네산(1,917m)과 이와테산(2,038m), 하치만타이다. 날이 맑을 때는 이와테산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능선을 보며 걷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이곳 역시 눈이 많은 곳이라 산행이 가능한 6월에도 잔설이 있다. 초여름을 생각하고 온 한국 등산객은 당황할 수도 있다.
편안하던 길이 험악해진다. 완만한 내리막이라 지형이 험한 것은 아니지만 목재데크길이 사라져 움푹 파인 산길이 물길이 되었다. 1m 폭의 등산로가 1.5m 깊이로 파여 있어 자연스럽게 물길이 된 것이다. 젖지 않으려, 미끄러지지 않으려 걸어야 하기에 딛기가 까다롭다. 작은 점프도 해가며 모처럼 나타난 난코스를 돌파한다.
발디딤 애매한 길이 끝나자 선물처럼 드넓은 습지가 나타난다. 전망대가 있어 경치를 감상한다. 모처럼 100m 정도까지 시야가 트인다. 푸른 전나무숲이 누런 풀의 습지를 에워싸고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고요한 풍경이다. 나무로 만든 길이 저 멀리까지 뻗어 있다. 구마노 이즈미에서 도로쪽으로 방향을 튼다. 속도를 높여 걷자 아스팔트길이다.
전화로 일행을 불러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일본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다. 마침 도로 보수를 하는 근로자들이 있어 사정을 얘기하자 레스트하우스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흠뻑 젖은 상태라 차에 몸을 싣기가 미안하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도로보수 직원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트레킹가이드
'아스피테라인'이라 불리는 도로가 해발고도 1,500m대까지 이어져 있어 1,613m가 정상인 히치만타이 산행은 쉽다. 미가에시도우게 레스트하우스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다음 무인산장을 지나 겐타모리를 거쳐 차우스다케구치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10km로 짧지 않은 거리지만 경사가 완만해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악천후시 구마노이즈미에서 도로로 나올 수 있다. 900m 거리에 20분이면 닿는다. 한글 이정표는 없지만 좁은 목재길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길을 안내한다. 갈림길에서 이정표만 잘 확인하면 길찾기는 수월하다. 아스피테라인은 매년 4월 이후에 길이 열리며 6월에도 잔설이 있으므로 아이젠과 스패츠를 준비해야 한다.
아키타현 고마가타케(秋田駒ケ岳)
야생화 천국이라 불리는 아키타현 최고봉
8합목 산장~아미다이케 무인산장~오나메다케~요코다케~야케모리~8합목 산장 6.2km
아키타현의 명산이라고 하면 대개 초카이산(鳥海山·2,236m)을 떠올린다. 그러나 아키타 사람들은 1,637m 높이의 고마가타케(秋田駒ケ岳)를 아키타의 대표적인 산으로 추천한다. 초카이산은 지역 경계에 있는데 정상을 비롯한 상당수가 야마가타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키타의 최고봉 역시 고마가타케다. 그러나 아키타현 최고 고도는 초카이산 중턱이다.
일본에는 '고마가타케'란 이름이 우리나라의 옥녀봉이나 국사봉처럼 흔한 산 이름인데, 전국의 고마가타케 중에서도 고산식물이 가장 풍부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의 고마가타케와 구별하기 위해 '아키타 고마가타케'라고 불린다. 지역민들은 애칭을 담아 줄임말로 '아키타코마'라고도 부른다.
산에는 오나메다케(男女岳·1,637m)산과 오다케(男岳·1,623m)산, 메다케(女岳·1,512m)산이 있다. 즉 남녀산, 남산, 여산이 있는데 고마가타케는 이를 총칭한 것이다. 1,600m대라 북알프스의 여느 산들에 비하면 낮지만 위도 자체가 높기 때문에 고산식물이 풍부하다.
정상 일대에 피는 '다카네스미레(구름제비꽃)'나 '고마쿠사(성주풀)', 에델바이스 등 수백 종류의 고산 식물군은 1926년 2월에 '아키타 코마가타케 고산 식물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일본 100명산에 포함된 산은 아니지만, '일본 꽃이 좋은 산 100선'에 꼽힌 야생화 천국이다. 때문에 6월 20일부터 8월 8일까지가 천상화원을 볼 수 있는 적기다. 이때 산을 찾으면 4시간 정도의 산행으로 30~40개의 야생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산행은 매년 6월 초부터 가능하다.
산행은 수월하다. 산 아래의 고마가타케 아루파 고마쿠사(화산방재센터)에서 8부 능선의 8합목 대피소(8th station)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일반차량은 통제된다. 산행을 시작하는 8합목 대피소의 고도가 1,305m이므로 해발고도 300m 정도만 높이면 정상이다. 8합목에서 '신도(新道·샛길)' 코스를 따라 약 50분 걸으면 '아미다이케(阿弥陀池)'라는 습지에 도착한다. 신도 코스는 전망이 좋은 데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아미다이케의 늪가에는 무인산장(대피소)이 지어져 있다. 거기서 약 20분 걸어가면 오다케나 오나메다케에 도착한다. '규도(舊道·옛길)' 코스는 길이 가팔라, 약 40분이면 무인산장에 갈 수 있다.
아키타현의 청명한 하늘이 일행을 맞는다. 고마가타케 아루파 고마쿠사(화산방재센터)에는 산에 피는 꽃과 산행 코스를 상세하게 설명한 안내판이 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꼬불꼬불한 산길 9km를 30분 동안 오른다.
8부 능선의 대피소에 닿자 산 아래에서 보았던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가스가 자욱하다. 기온이 떨어지고 칼바람이 분다. 고도 300m만 높이면 되는 간단한 산행이라 얕봤는데 뒤통수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부랴부랴 옷을 더 꺼내 입고 장갑과 버프로 무장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조릿대가 산길 주변을 메우고 산은 오르막과 완만한 길을 번갈아 내어준다. 산행은 어렵지 않지만 날씨가 급변하고 있다. 가스가 짙어져 시야가 5m도 채 안 된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빗줄기가 쏟아진다. 옆에서 들이닥치는 비라 방수바지가 없으면 신발과 팬티까지 쫄딱 젖을 기세다. 이른 아침의 파란 하늘만 믿고 방수바지를 두고 왔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판초우의를 대충 뒤집어쓴다.
정상부의 고원습지인 아미다이케에 닿자 빨래판처럼 홈이 난 목재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길옆 가스 사이로 물이 슬쩍 보인다. 늪이라기보다는 호수다. 아미다이케 호수 옆의 무인대피소로 들어간다. 우리처럼 비 맞은 생쥐꼴을 한 등산객들로 좁은 산장이 빽빽하다. 복장을 정비해서 주봉인 오나메다케로 향한다. 뵈는 것이 없다 해도 정상이 지척인데 그냥 갈 수 없다. 외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무인산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등산로 바닥에 자연석을 깔고 길옆에 로프를 쳤다. 가스가 짙어도 길 잃을 염려는 없는 셈이다.
가파른 경사를 빠르게 올려친다. 천천히 가던 일본 산객들이 옆으로 물러나 추월해 갈 때까지 기다린다. 선두의 우리 측 가이드는 "스미마셍" 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그들도 한 명 한 명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악천후 속에서도 철저한 등산매너가 놀랍다. 정상에는 붉은 흙 위에 돌탑이 있다. 삼각점이 있고 쇠사슬을 연결한 나무판에 '秋田駒ケ岳 男女岳(아키타고 마가타케 오나메다케) 1,637m'라 적혀 있다. 맑은 날엔 인근 연봉은 물론 도와다 호수까지 보이는 명 조망산이다. 무인산장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산행 채비를 한다. 북알프스 같은 유명산과 달리 한국 등산객이 드문 곳이기 때문인지 신기하게 바라보는 일본인들이 많다.
고마가타케는 신앙의 산으로 여겨지는데, 과거 말을 신으로 모신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오다케(男岳)는 남성적으로 뾰족하고 메다케(女岳)는 여성적인 부드러운 봉우리로, 남녀의 특징을 보여주는 산이다. 오나메다케(男女岳)는 오다케의 첩이라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지형상으로도 남자산이 가운데 있고 양 옆으로 여자 산이 있는, 삼각관계다.
산장에서 정상 반대편인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조금씩 시야가 풀린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뒤돌아보자 길쭉한 형태의 아미다이케 습지가 보인다. 데크를 깐 등산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산죽이 무성한 능선을 따라 구름 속을 걷는다. 나무가 없어 날씨만 좋다면 경치가 괜찮을 법한 능선이다. 요코다케(橫岳·1,583m)를 지나 능선을 이어가자 달 표면처럼 둥근 지형에 흙이 깔린 독특한 봉우리다. 무덤 꼭대기 같은 정상에 돌탑과 정상 표지목이 있다. 야케모리(燒森·1,551m)다.
마사토와 비슷한 화산흙이 깔린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좁은 산길을 따라 30분을 내려서자 들머리였던 8합목 산장이다. 버스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오니 햇살이 비친다. 유독 고마가타케 정상만 먹구름에 가려 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오라는 고마가타케의 뜻으로 여긴다.
산행가이드
고마가타케 아루파 고마쿠사(화산방재센터)에서 8부 능선의 '8합목 대피소(8th station)'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6~10월 새벽 5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6월 20일쯤과 8월 중순까지는 매일 운행하며 6월 초와 9~10월은 주말에만 운행한다. 요금은 600엔이며 9km거리에 35분 걸린다.
산행은 고도 1,300m의 8합목 산장에서 사면을 따라 올라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다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산장을 출발해 사면을 따라 오르면 아미다이케 습지와 무인산장이 나온다. 여기서 북쪽에 솟은 봉우리가 정상인 오나메다케이며, 20분 정도 걸으면 정상이다. 다시 산장에 되돌아와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요코다케와 야케모리가 연이어 나오고 8합목 산장으로 연결된다. 총 6.2km이며 여유롭게 걸어도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한글 이정표는 없지만 산길이 단순하고 뚜렷하다. 전체적인 산행 코스와 방향감각만 유지하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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