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후쿠 명산ㅣ아오모리현 핫코다산] 핫 코코아처럼 달콤한 일본 본토 최북단의 조망 명산
다재다능한 아오모리의 명산
도와다하치만타이十和田八幡平국립공원에 속한 핫코다八甲田1,584m산은 아오모리현의 대표적인 명산으로서 일본 100명산 중 하나이다. 핫코다산은 정상 오다케大岳의 높이가 해발 1,584m로 3,000m대 산이 즐비한 일본에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위도가 높아 일본 북알프스의 2,000m대 환경을 갖추었다. 2,000~3,000m대의 큰 산이 부담스런 이들을 위한 대중적인 고산인 셈이다.
산 이름은 주봉 '오다케'를 중심으로 여덟 개 봉우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 꼭 거북이 등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핫코다八甲田'로 지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숫자 8은 아주 많다는 뜻인데, 일본 무사의 투구같이 생긴 봉우리가 많다고 해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핫코다산의 특징은 눈이 많다는 점.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깊은 눈에 덮여 세계적인 산악스키 대상지로 손꼽힌다. 질 좋은 눈이 매일 내려 신설을 가르는 파우더 산악스키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일본 혼슈 최북단 지역으로 쓰가루해협津輕海峽을 사이에 두고 훗카이도와 마주하고 있는 아오모리현靑森県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같은 곳으로 바다를 접한 청정 산골이다. 한국에도 유명한 '아오모리 사과'의 원산지이며 전국 생산량의 51%에 이를 만큼 일본 내에서도 대표적인 사과 재배지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인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의 고향이기도 하다. <인간실격>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그는 고향인 쓰가루 반도를 여행하고 쓴 기행문 형식의 소설 <쓰가루>로 더 유명해졌다. 쓰가루는 아오모리현 서부를 가리키는 지역 호칭이다.
아오모리를 시골 깡촌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오모리시市는 일본 동북지역에서도 교통요지로 손꼽힌다. 아오모리국제공항에는 일주일에 세 번(수/금/일) 인천을 오가는 직항 노선이 있으며, 신칸센열차가 바다 속 터널로 홋카이도로 연결된다. 세계 최장 해저터널로 길이 53.85km의 세이칸 터널이다.
산중턱 스카유온천은 '국민온천 제1호' 온천
핫코다 산행은 산로쿠역山麓駅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경치를 감상하며, 고도를 높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케이블카 창밖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너도밤나무숲이 끝없이 펼쳐지고, 숲 너머엔 바다가 원을 이루며 해안선을 그려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단순하면서 깨끗한,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풍경에 빠져드는 것으로 핫코다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케이블카를 타면 10분 만에 해발고도 670m에서 1,320m로 높이를 올릴 수 있다. 케이블카(로프웨이) 정류소를 빠져나와 전망대에 서면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산이 있다. 구름 사이로 홀로 고고하게 솟은 산이 아오모리현의 또 다른 명산인 이와키산岩木山·1,625m이다.
둘레길처럼 정비가 잘된 산길을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온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섞이는 곳으로 8자 형태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분비나무와 조릿대가 빼곡한 숲을 가로지르는 산길은 핫코다산 명물인 고산습지로 연결된다. 10분을 걸으면 닿는 고산습지는 풀 사이로 물이 차 오른 습지와 산등성이가 어울려 장관을 보여준다.
경치가 뛰어난 핫코다산이지만, 처음 유명해진 건 온천 때문이다. 산 중턱의 스카유온천은 1954년 일본에서도 국민온천 제1호로 지정되었다. 때문에 핫코다 산행은 케이블카 정류소에서 능선을 거쳐 스카유온천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전형적인 온천산행 코스인 것이다. 핫코다산은 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데, 매년 10월 초순쯤이면 절정에 이른다.
본격적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면 나무들의 키는 작아지고 초원마냥 시야가 트인다. 핫코다 연봉은 물론 바다와 아오모리의 모든 산줄기가 드러난다. 등산로 곳곳이 조망터라 지루할 틈이 없다. 핫코다산이 명산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런 탁월한 조망이 한몫 한다. 지리적 특성상 동해와 태평양, 북해도가 다 보인다. 일본에서도 동해와 태평양이 모두 보이는 산은 드물다. 이후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산행 중 걸음을 멈춰 뒤돌아보면 일본 혼슈本島 최북단의 아오모리만이 시원하게 펼쳐져 걸음걸음 핫(hot) 코코아처럼 달콤한 핫코다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오르막이 끝나는 주능선에 서면, 산줄기 동쪽 풍경이 처음으로 펼쳐진다. 서쪽은 완만한 산세인 데 반해 동쪽은 가파른 것이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선 벼랑에 서식하는 산양을 간혹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산양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귀한 야생동물이다.
주능선 역시 키 큰 나무가 없어 시야가 탁 트인다. 여기서 북쪽 산자락이 내려다보이는데 이곳에서 100년 전 행군하던 군인 199명이 죽은 곳으로 일본 내에서 유명하다. 험한 산악지형이 아닌 완만한 고개임에도 워낙 많은 눈이 오는 지역이라 행군에 나선 210명 중 199명이 동사했다. 그만큼 아오모리는 눈과 추위로 유명한 곳이다. 흔히 홋카이도가 눈이 가장 많이 올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오모리의 적설량이 더 많다. 바람도 거센 편이라 영하 18℃가 평범한 겨울 날씨일 정도다.
주능선을 이어가면 파노라마로 열린 경치가 쭉 이어진다. 동쪽의 가파른 절벽엔 붉은 흙이 붓질을 해놓은 것처럼 예쁘게 이어진다. 작은 사당과 돌탑을 쌓은 곳은 무명 봉우리이다. 아오모리 시내에서 보면 이곳이 정상처럼 보인다.
거센 바람 때문에 눈잣나무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1,548m 높이의 아카쿠라다케赤倉岳는 봉우리라기보다 길가에 정상 표시만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 때문에 이 코스가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찾는 사람이 많아진 봉우리다.
한국의 영남알프스처럼 열린 풍경이 펼쳐진다. 영남알프스와 다른 것은 훨씬 산세가 두루뭉실 부드럽고 시야가 깨끗하고 바다가 보인다는 것. 더 가면 돌탑이 있는 이도다케井戶岳·1,550m다. 정상은 더 높은 곳에 솟은 암봉인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등산로에 정상 표시를 해놓았다.
이도다케를 지나며 산길은 분화구를 따라 돈다. 백록담에 비하면 작은 오름 같은 분화구지만 색다른 재미를 준다. 분화구를 지나면 핫코다의 주봉인 오다케가 나타난다. 최고봉이지만 위협적이기보다는 황소 등처럼 푸근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오다케 사면의 거대한 구멍은 연중 여름철 2개월을 제외하곤 눈이 쌓여 있다. 정상을 기준으로 서쪽은 나무가 많고 동쪽은 나무가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는 겨울이면 서풍이 불어 반대편 능선으로 눈을 날려 서쪽 사면에는 눈이 많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쪽 사면이 보통 2m, 동쪽 사면이 10m 정도 쌓인다. 산악스키를 탈 때는 나무가 있나 없나를 통해 방위를 확인할 수 있다.
고산습지의 진수 펼쳐지는 하산길
정상을 목전에 두고 고도가 뚝 떨어진다. 정상 직전 안부에 무인대피소가 있다. 건물 꼭대기에 창문이 있는데 겨울에는 이 창문이 출입구가 된다. 그만큼 눈이 많이 오는 산이다. 대피소 앞은 등산객들이 식사를 하고 숨을 돌리는 곳이다. 여기서 정상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은 사람이 많아 주말이면 간간이 정체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오다케 정상은 덩치만큼이나 너른 곳이다. 가리왕산 정상과 비슷한데 그보다 더 넓고 완만하고 경치도 시원하다. 정상 표지판이 있으며 산 너머 남쪽에는 거대한 너도밤나무숲이 드러난다. 부드럽고 단순한 산세의 미학으로 정상에 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핫코다산 너머 서쪽의 시라카미산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드넓은 너도밤나무숲이다. 끝없이 펼쳐진 천년 숲의 파라다이스인 것이다.
정상에서는 무인대피소로 되돌아가야 한다. 무인대피소에서 왼쪽 하산길을 따르면 핫코다산의 진면목인 고산습지를 볼 수 있다. 케이블카 인근의 습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널찍한 습지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습지를 지날 때는 1m 폭의 데크길을 따라 걷게 된다. 고산습지 부근에는 활엽수가 많아 가을에는 알록달록 물든 천연색 단풍이 비단 병풍을 두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숲을 지나면 두 번째 고산습지가 나타난다. 노란 풀과 투명한 물, 잘생긴 너도잣나무와 화려한 단풍이 일본의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 준다. 다시 숲길을 지나 내려서면, 단정한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이 산행이 끝나는 스카유온천이다.
산행정보
케이블카를 타고 1,320m 고도의 능선에서 산행을 시작해 아카쿠라다케와 이도다케, 주봉인 오다케를 올라 고산습지를 지나 스카유온천으로 하산하는 경로는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주면서도 탁 트인 핫코다의 능선과 정상에서의 경치, 매력적인 고산습지를 하루에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 이정표는 없지만 길이 단순하고 시야가 트여 있어 기본 산행 코스만 숙지하고 있다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가파른 오르내림이 몇 곳 있지만 같은 시간이 소요되는 국내산 당일산행에 비하면 쉬운 편이다. 총 산행거리는 10km이며 5~6시간 정도 걸린다. 기후변화가 심하고 바람이 센 곳이므로 방수방풍재킷과 보온옷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핫코다산은 원래 산악스키로 유명한 곳이다. 11월부터 매일 눈이 오고 5월까지 눈이 남아 있다. 산행은 6월부터 10월까지가 적기다. 특히 10월 초순에 찾으면 절정의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9월 말부터 눈이 내리는 곳이므로 동계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핫코다산 가이드협회가 있으며 1일 가이드 비용은 1인당 3만 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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