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친구] 재일교포 김병철과 일본인 친구들
13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적을 바꾼 사람이 있다. 재일교포 김병철(58)씨다. 그는 25년간 함께 산에 다닌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자존심처럼 여긴 조선 국적을 한국 국적으로 바꾸었다. 산친구들과의 어떤 약속이었기에 국적까지 바꾸어야 했는지, 그들의 북한산 산행에 동행했다.
북한산 우이동에서 만난 이는 김씨를 비롯 니시오카 유즈루(62), 노지마 유타카(62), 노지마 크미코(61), 혼도 유카리(46)씨다. 김병철씨는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왔고 그의 일본 친구들은 후쿠오카현 북규슈시에서 왔다. 북규슈시와 우베시는 일본 남서쪽 끝에 있는 도시들이라 원전 사고지역과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 편이다.
이들은 25년을 함께 산에 다닌 사이다. 처음 만난 건 어느 산악회에서였다. 그 중 한 명이 직업 가이드 역할을 하여 그를 따라 산행하는 무리가 자연스럽게 생겼고, 관계가 25년 동안 이어지게 되었다. 그 사이 산악회는 이름이 몇 번 바뀌고 없어지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어졌다.
이들에게 등산은 취미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의 등산 붐과 상관없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산행을 했다. 혼도 유카리씨가 산행 경력 21년으로 가장 짧고 다른 이들은 모두 50년 경력이다. 니시오카씨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업고 산에 다녔을 정도로 산행이 몸에 배어 있다. 산행할 때도 일행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조용히 혼자 산행하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철학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부부인 노지마 유타카씨와 크미코씨는 오래 전에 북한산을 온 적 있다. 클라이머인 유타카씨가 인수봉을 올랐었다고 한다. 그는 "꽃과 나무, 산새를 볼 수 있어 산이 좋다"고 한다. 끄미코씨는 "산에 있으면 도시의 생각을 잊을 수 있어 좋다"며 특히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걸 좋아하는데 산에서 느끼는 바람은 도시의 바람과 달리 기분 좋은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혼도씨는 "등산을 하면 몸도 마음도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며 그런 곳은 자연뿐이며 20여 년을 함께한 산친구들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좋다고 한다. 김씨는 유타카씨가 지금은 클라이머가 아니고 '클라우'가 됐으며 일본에서 술꾼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들은 다들 산행 후 뒤풀이를 즐긴다.
일본 정부를 대신해 사과한 일본인 산친구들
우이동에서 도선사를 들머리로 용암문을 향해 오름길에 몸을 던진다. 북한산이 이렇게 한가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등산로는 조용하다. 흐린데다 가는 빗방울이 내리는 탓이다. 비가 오는데도 산을 찾은 건 짧은 기간 동안 잡아 놓은 일정 탓이다.
13년 전 김병철씨의 산친구들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김상, 김상은 한국 사람이니 언젠가 자기 나라를 자유롭게 갈 수 있을 때 한국산을 꼭 같이 갑시다. 우리 일본사람은 언제든지 한국산을 갈 수 있지만 김상은 조선 사람이라 한국을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산행이 25년을 이어오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속에는 아픈 역사도 담겨 있었다. 그의 일본 산친구들은 "우리 일본인이 참 나쁜짓을 했다"며 김병철씨에게 미안해했다. 더불어 "김상의 부모님이 일본에 강제 징용을 왔고 김상이 조선 국적이어서 자기나라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미안하다"며 "김상이 한국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것이다. 김병철씨의 말에 따르면 일본 사람은 이런 얘기를 거의 안 한다고 한다.
"자국 역사에 대한 반성 같은 얘기를 일본 사람은 일부러 안 해요.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일본 정부가 감추고 역사교육에서도 가르치질 않아요. 있었던 일도 모른다고 하죠. 그래서 젊은 세대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친해지기 위해서는 과거를 잘 청산해서 속을 털어놔야 되요. 그런데 지금처럼 한쪽이 감추고 교육에서 진실을 가르치지 않으면 한일관계가 어디까지 가더라도 서로가 믿질 못한다는 얘기도 이 친구들과 했어요. 실은 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걸 강하게 얘기하면 싫어해요. 하지만 이들은 오래 알아 온 사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를 대신해 사과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김병철씨와 일본 산꾼들이었다. 그래서 김씨는 이들의 부탁을 늘 가슴속에 간직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번에 한국산을 찾은 것이다. 짧은 일정 속에서 이들은 설악산과 북한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설악산을 다녀온 이틀 후 기자와 북한산을 찾은 것이다. 일본인 산친구들은 김씨의 국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13년을 기다려주었다.
"13년을 기다려서 한국산을 찾은 겁니다. 조선 국적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쉽게 한국에 올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영사관에 가서 신청을 하더라도 어렵고 순조롭게 비자가 안 나옵니다. 조선 국적은 일본에서도 남몰래 차별이 있어요. 이런 걸 이 분들은 다 알죠. 그래서 제가 자유롭게 한국에 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겁니다. 제가 갈 수 있을 때 함께 가겠다고 한 거죠."
13년이 지나는 동안 크미코씨가 건강이 나빠져서 산에 갈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김씨는 "나도 이제는 일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면 친구들 중 누군가 걸어서 한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국적을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바꿨다. 크미코씨의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김병철씨는 수개월 전 이들과 상의해 5월 초 일본의 연휴에 맞춰 한국을 찾기로 한 것이다.
김병철씨에게 조선 국적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부모님은 고향이 경남 마산이다. 광복 후 일본에 있던 한국 사람들은 '조선' 국적을 부여받았다. 이후 6·25가 터져 나라가 분단되었다. 이로 인해 국적을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한국이나 북한으로 바꿀 것을 권했지만 그는 조선 국적을 유지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하나다"고 말한다. 그는 진지하다.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부모님은 조선에서 건너온 조선 사람이고 나는 그 피를 물려받은 조선 사람입니다. 조선, 한국, 북한으로 나뉘지만 민족은 조선입니다. 역사의 큰 틀에서 보면 우리 민족이 떨어져 있는 건 아주 짧은 세월일 수 있습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이 신념 때문에 그는 육십 평생을 온갖 차별 속에서 살아 왔다. 기자도 그와 일본에서 함께 산행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산장에서 어느 일본 산악회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모르는 사이였지만 돌아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인사를 하기로 했다. 평소 농담을 즐기는 장난기 가득한 그였지만 다른 사람이 된 듯 진지한 얼굴로 일어나 "나는 김헤이테츠(김병철의 일본식 발음)이며 조선 사람이다"라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 얘기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이런 인사는 무척 익숙해 보였다. 그 익숙함과 결의에 찬 진지함 속에 평생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온 억척스런 세월이 배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산친구들과의 13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것이다.
보통 국적을 바꾸는 데 6개월 이상 걸리지만 그는 한국영사관에 지인이 있어 일사천리로 두 달 만에 바꿨다고 한다. 그를 잘 알고 있었던 영사관 관계자는 그에게 늘 한국 국적으로 바꿀 것을 권했지만 거절해 왔었다.
그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한국의 설악산과 북한산을 가보는 것, 둘째는 한국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셔보는 것이었다. 첫째 소원은 워낙 산을 좋아해서 고국의 산을 보고 싶은 것이고, 둘째는 한류 드라마에서 탤런트 배용준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걸 본 게 기억에 남아서다. 김씨가 워낙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인 이유도 있다. 이번 한국 방문으로 그는 두 가지 소원을 모두 이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북한산을 오른다. 며칠 전 다녀온 설악산에 대해 묻자 "계단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며 "산행을 안내해 준 안명선(대산련 대외협력위원), 이승철(남설악산악구조대)씨의 호의에 감동받았다"고 얘기했다. 신록과 봄꽃이 돋기 시작한 북한산, 뭐가 그리 신기한지 사소한 것들까지 사진을 찍어가며 오른다.
일본의 산은 북알프스와 남알프스를 같이 갔고 규슈 지역 산을 주로 같이 다녔다. 이들은 25년을 함께 다녔지만 별도의 회칙이나 규율이 없다. 모두 회원이고 모두 회장이라 말한다. 정기산행처럼 날짜를 정해 놓고 산행을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연락해서 산행지와 날짜를 정한다. 1년에 보통 15~20번 정도 함께 산행한단다. 장난기가 많은 김씨가 농담식으로 지은 산악회 이름은 '병아리산악회', 이제 회원 대부분 놀아야 할 정년이라고 해서 '정년산악회', '당신도 그래' 산악회 등이 있다고 한다. '안타 모카이(당신도 그래)'는 일본말로 동조를 뜻하는 말이다.
"나는 집에 가면 마누라한테 꾸지람 듣는데 당신도 그래, 회사에서 윗사람한테 크게 꾸지람 들었는데 당신도 그래, 어제 술을 엄청 마셔서 머리가 아픈데 당신도 그래, 하는 식이죠. 규칙을 엄하게 적용하지 않고 서로 자율과 존중을 중시해요."
건강이 좋지 않은 노지마 크미코씨는 설악산은 가지 못했지만 "북한산만큼은 아파도 꼭 가고 싶다"고 하여 함께했다. 용암문에 도착,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잠시 쉰다. 노지마 부부는 과거 인수봉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때 인수봉 야영장에 여자들이 가면 안 되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모른 크미코씨가 실수로 들어가 무척 미안했다고 얘기하자 김병철씨가 "여자 같아 보이지만 나는 실은 남자라고 얘기했어도 다들 속았을 텐데 왜 미안하다고 했냐"고 하자 일행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김씨의 일본 산친구들은 그를 "미스터 코미디언"이라 한다. 늘 유머러스한 말솜씨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백운대 가는 길, 빗방울이 거세지자 준비성 좋은 일본 등산인들답게 방수 재킷과 바지를 꺼내 입는다. 만경대와 용암봉을 보고선 연신 "스고이~ 스바라시~"를 외쳐댄다. 북한산은 등산객이 많아 산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반해, 이들은 연신 인사를 하고 조금만 좁은 길이 나오면 맞은편 상대가 지나갈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에 올라서자 악천후에도 줄지어 오르는 많은 등산인파에 놀라고, 바위산의 위용과 서울 경치에 놀란다. 강풍과 잔 빗방울이 몰아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백운산장으로 내려선다. 산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산행의 소감을 나눈다. 노지마 유타카씨는 "도시 속의 산인데도 보존이 잘돼 있어 놀랐다", "등산로를 자연석으로 자연스럽게 꾸민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김병철씨는 "감동이었다"며 "13년 전부터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었던 원을 드디어 풀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전날은 다 같이 서울 시내 구경을 했다. 김병철씨가 이들을 직접 안내했는데 식사 시간을 지나서까지 시내를 걸어 다녀 친구들이 불만을 표시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김병철씨의 마음이 지나쳐 역효과가 난 것이다.
"한국에 드디어 함께 왔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감동을 주려고 자꾸 욕심을 내니까 힘들어요. 서울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 재일교포인 내가 더듬더듬 한국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일본말을 쓰는 사람에게 더 친절히 대해줘요."
그는 한 달 전에 혼자 서울에 왔다. 서울 시내와 북한산 등을 둘러보며 친구들을 가이드하기 위해 미리 사전답사를 한 것이다. 그때도 발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제가 조선 사람이라 기대를 하고 있는데, 조선 사람이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전철 타는 것도 모른다고 할까봐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나쁘지만 일본 사람은 그렇지 않다"
포장마차에 가고 싶었던 것도 지인의 도움으로 이뤘다. 한국의 정효식씨는 우연히 일본 오이다현에 있는 유후다케에서 만나 알게 되었다. 산행도중 길을 잃은 정씨 일행을 김병철씨가 도와줬고, 이에 정씨는 김병철씨에게 "목숨을 구해줬다"며 한국에 오면 꼭 자신에게 연락하길 당부했다고 한다. 김씨는 "하늘의 뜻이 있었기에 우연히 정 사장 일행을 만난 것"이라며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한다.
김씨는 한국에 온 지 4일째 되던 날 저녁에 연락을 했고, 정씨는 다른 약속이 있었음에도 취소하고 부랴부랴 김씨의 숙소로 부인과 함께 찾아와 식사 대접을 했다. 정씨가 2차를 가자며 어디든 가고 싶은 데를 얘기하라고 하자 김씨는 "포장마차에 가고 싶다"고 하여 뜻을 이루었다.
일본 친구들은 식사 후에 기념품을 사러 갔는데 여자인 크미코씨와 유카리씨는 옷이랑 화장품을 사러 갔다. 남자들은 흥미가 없어 다른 걸 보러 갔는데 정 사장이 이들에게 뭘 사러가고 싶냐고 묻자 유타카씨와 유즈루씨는 한국 아이돌 걸그룹인 '카라'와 '소녀시대'의 CD와 DVD를 사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 주려고 그러냐고 묻자 본인들이 소장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해서 정 사장과 김씨가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이들은 휴일 인사동의 많은 인파를 보고 놀랐다. 일본은 저출산과 불경기, 원전사태 등으로 휴일의 이런 인파는 찾아보기 드물다고 한다. 일본은 현재 암흑기이며 정년퇴직 나이도 더 빨라졌고, 젊은이들이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원전상황에 대해 발표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국민들을 속여 왔거든요. 중요한 문제는 잘 보도를 하지만 일부는 안 믿죠. 진짜 보도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의심이 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원전사태가 사람에게 무방하다, 얘기해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죠. 가장 큰 피해자는 원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죠. 일본 정부가 안심해도 좋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실제로 건강에 안 좋고 자기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바닷물은 오염되고 농산물은 팔지도 못하게 됐으니 말이죠."
김씨는 "일본 정부는 나쁘지만 일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특히 그의 친구들에 대해서는 무척 소중히 여긴다. 그가 이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은 "속에 다른 맘이 없고 다들 소탈하고 편하기 때문"이라 한다. 과거에는 가족들보다 이 친구들과의 산행을 더 우선시 여긴 적도 있을 정도로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친구들이 내 맘을 60% 정도 알고 있을 것이며 90%를 알아달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얘기한다. 그가 국적을 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꾼 데에는 이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 반 이상이라고 한다. 친구와의 약속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김병철씨다.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일본 친구들에게 김씨에 대해 물었다. 유타카씨는 "내가 참았기 때문에 그동안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며 김씨가 잘 구사하는 농담을 섞어가며 얘기한다. 니시오카씨도 "얼굴도 못생기고 머리도 벗겨졌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니 좋다"고 한다. 크미코씨는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 한마디로 그를 정의했다.
김병철씨에게 다른 바람이 있냐고 묻자, "다음에는 혼자서 한국에 오고 싶다"고 한다. 13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워낙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국적을 바꾼 감회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준비했기에 다음번엔 자유로운 마음으로 오고 싶다고 한다. 13년 전의 약속을 지킨 의리의 조선 사나이가 친구들과 함께 북한산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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