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이야기 | 인천수목원]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꿈을 이뤄주는 숲으로 초대합니다"
인천대공원에는 놀이시설이 없다. 숲과 자연이 주를 이루는 이곳의 핵심시설은 수목원이다. 북적이는 인파와 시끄러운 탄성, 짜릿한 자극은 없지만, 편안히 숲을 걸으며 일행과 두런두런 얘길 나눌 수 있는 곳이 인천수목원이다. 인천대공원은 1992년 개장했으며, 인천수목원은 2008년 개장했다.
인천수목원 길강섭 숲해설사가 함께 걷는다. 분수대가 있는 가장 화려한 곳이 장미원이다. 시원한 분수와 장미가 조화로운 이곳은 일년에 두 번, 6월과 10월에 꽃이 만개한다. 장미는 영양 공급이 중요하여, 어떤 비료를 주느냐에 따라 꽃의 풍성함이 달라진다. 특히 닭똥 비료를 섞어 주면 꽃이 아름답게 만발한다. 길 해설가는 "장미야말로 꽃의 여왕"이라며 "장미는 꽃이 필 때도 예쁘고, 꽃이 져도 예쁘고, 꽃이 썩어도 예쁘다"고 이야기한다.
장미원을 나와 숲으로 든다. 초록색이어야 할 둥굴레잎이 검은색 페인트를 뿌린 듯 온통 시커멓게 변했다. 미국선녀벌레 짓이다. 가지와 잎에 무리로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 먹어 나무를 말라 죽게 하고, 검은색 왁스 물질을 분비해 잎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새가 와서 부리로 쪼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류탄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새가 혼란스러워 잡아먹을 생각을 못 한단다. 때문에 천적이 없어 골치를 썩인다.
둥굴레 뒤에는 인천의 시목인 튤립나무가 있다. 높이 20m가 넘는 큰 나무는 꽃이 튤립이나 백합을 닮아 아름답다. 지금은 여름이라 꽃을 볼 수 없지만 노란빛이 섞인 신비로운 흰색이라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인천시에서 튤립나무를 시목으로 정한 것은, 속성수라 빨리 자라고,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단단해 목재로 가치가 높고, 병해에 강하며, 가지치기가 필요 없어 관리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이지만 녹충화사업을 위해 계획적으로 인천 시목으로 정해 확산시키고 있다. 북미 인디언들은 이 나무를 통째로 베어 카누를 만들었다. 때문에 '카누우드'라는 별명이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양국 우의를 다지는 의미로 나무를 교환했다. 한국에서는 소나무를 선물했다. 이때 미국에서 선물한 나무가 튤립나무였다. 그만큼 미국을 상징하는 효용성 높은 나무인 셈이다. 당시 케리 장관은 "300피트(91m)까지 자라며 수명이 300년이나 된다"고 나무를 소개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뻗는 튤립나무처럼 계속해서 한미동맹을 성장시키자는 의미의 선물이었다.
인천수목원의 스타 나무 중 하나는 자연생태원의 졸참나무와 리기다소나무다. 앞에서 보면 수종이 다른 두 나무가 일직선으로 서서 황금비율로 묘한 조화를 이룬다. 길강섭 해설가는 "나무 한 그루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얘기한다. 우주에 속한 태양의 광선을 잎의 광합성으로 받아 땅의 뿌리로 에너지화하여 전해주기 때문이다. 우주와 땅을 연결하는 존재가 바로 나무라는 것이다. 특히 참나무과는 부귀와 번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 배고프던 시절 도토리로 묵을 쒀서 허기를 달래었다. 소나무과에는 장수의 의미가 담겨 있어 이 두 나무가 서로를 감싸듯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로운 볼거리라고 말한다. 특히 졸참나무는 50년 수령의 수목원 터줏대감격 나무다. 두 나무가 일직선으로 겹쳐 보이는 지점에서 소망을 빌면 우주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길 해설가의 재미있는 설명이다.
인천수목원을 대표하는 또 다른 스타는 대왕참나무다. 흔히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를 참나무 6형제라고 하는데, 7번째 형제가 대왕참나무다. 다른 참나무는 가지가 사선으로 뻗지만, 대왕참나무만은 직선으로 곧게 자란다. 참나무류가 원래 단단한데 곧기까지 하니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과거에는 재질이 단단하여 가공이 어려웠지만,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최고의 목재로 인정받고 있다.
대왕참나무는 북유럽이 원산지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과실을 팔아 자녀 대학 보낸다는 대학나무처럼 대왕참나무 3그루만 있으면 벤츠를 산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마라토너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장기를 달고 히틀러에게 메달을 받았는데, 대왕참나무 잎으로 월계관을 만들어 씌워 주었다.
인천수목원에는 수령 30년쯤 된대왕참나무 숲이 있는데, 이곳에서 비교적 큰 숲이다. 수목원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인공조림 숲인 셈이다. 인천시에서 이곳 터를 매입할 때 나무농장을 운영하던 오긍섭 옹이 기증한 나무이며 15종류 2,500여 그루에 이른다.
10그루의 대왕참나무가 붙어서 자란 기이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중 일부는 연리목처럼 서로 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별개의 나무이다. 일부러 이렇게 조림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장한 것이다. 대왕참나무는 곧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퍼져서 자라는 다른 참나무류에 비해 단위면적당 더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공권을 독점해 광합성하기보다는 서로 최소한의 공간을 나누어 사이좋게 자라는 셈이다.
대왕참나무 주변에는 열매와 잎이 매달린 채 떨어진 가지가 많다. 자연스럽게 떨어진 것이 아닌, 톱으로 자른 듯한 단면이다. 범인은 거위벌레다. 이 녀석은 산란할 때가 되면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가지는 반드시 잘라서 땅에 떨어뜨리는데, 도토리만 떨어뜨리면 추락의 충격으로 알이 손상될 수 있기에 잎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를 통째로 잘라 낙하산이 펴지듯 완충작용을 하도록 한다. 거위벌레 암수가 사랑을 나누고, 산란하면 둘이 협동해 가지를 자른다.
참나무 가지가 떨어진 지 일주일이 지나면 도토리 속에서 거위벌레가 부화한다. 이 유충은 도토리를 먹고 있다가 3주일이 지나면 도토리를 뚫고 나와 땅속에 들어가 겨울나기를 한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거위벌레가 점점 늘어나고 도토리가 채 여물기도 전에 잘라버리는 통에 도토리 수확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꾼으로 꼽힌다. 높은 토양 온도는 거위벌레 성장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한다.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삼지구엽초에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력이 약해 스트레스를 받던 사내가 숫염소 한 마리가 암컷 100마리를 거느린 것을 부럽게 여겨 계속 관찰했다. 그런데 숫염소가 가끔 으슥한 곳에 가서 무언가 먹고 와서 사랑을 나누는 걸 보고, 그 식물을 먹고 고민을 해결했단다. 3개의 가지에 잎이 3개씩 열려 모두 9개가 되므로, 삼지구엽초라 한다.
당느릅나무는 당나라 나무라고 하는데, 실제로 중국이 원산지라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 가난하던 시절, 느릅나무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배고픔을 면했는데 식이섬유가 많아, 용변의 양이 많았다. 때문에 용변을 보다 변이 굵어 아랫도리의 구멍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아,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생겼다고 한다.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데크가 있는 호수는 해안에 자라는 나무를 심은 곳으로 해안사구원이다. 가장 흔한 것이 참죽나무인데, 스님이 먹는 나무라고도 불린다. 껍질과 새순을 먹는데 고기맛이 난다고 한다.
보라색 꽃이 만발했다. 순비기나무 꽃이다. 해풍을 맞고도 잘 자라는 나무로 제주 해녀의 나무라고도 불린다. 제주 방언에 '숨비 소리'라는 말이 있다.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물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뱉는 '휘이익〜'하는 소리가 그것이다. 평생 물질로 제주 해녀들은 두통으로 시달렸는데 그 치료법이 순비기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었다.
열매를 빻아서 차로 마시면 두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 향이 좋아 열매를 빻은 가루를 섞은 물로 목욕하면 바닷물 짠내가 몸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실제로 순비기나무 열매는 해열, 진통, 소염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제주 사람들은 '숨비기나무'라 불렀으며 이것이 '순비기나무'로 변했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는 암수가 다르다. 버드나무에도 종류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만 50종류가 있다. 버드나무 잎은 유혹의 의미도 담겨 있다. 말을 타고 달리다 목이 말른 왕건이 우물가의 여인에게 물을 청하자,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
왕건이 연유를 묻자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잎을 불어가며 천천히 마시라는 것"이라 답했다. 이 마음씨에 반해 결혼했는데, 버들잎을 띄우는 데는 체하지 말라는 슬기로움도 있지만 유혹의 의미도 담겨 있다 하여 버들 류(柳)자가 화류계(花柳界)에도 사용된단다.
독특하게도 은색이라 시선을 사로잡는 식물은 은쑥이다. 은색 쑥인 것이다. 조경용이라 일반적인 쑥처럼 먹을 수는 없다. 쑥은 생존력이 강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은 식물이다. 쑥을 말려 태우며 생기는 연기로 모기를 쫓기도 한다.
최근에는 쑥에서 모기로 인해 감염되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추출한 외국교수가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길강섭(59) 숲해설사는 지난해부터 인천수목원에서 숲해설을 하고 있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은퇴한 그는 산림경영과 숲해설이라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숲해설사가 되었다. 그는 "숲해설 할 때 나무 이름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숲해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의 입장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과 우화를 적절히 곁들여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며 "꿈을 이뤄 주는 숲해설을 하고 싶다"고 숲처럼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최태식 인천대공원사업소장
"인천대공원을 치유의 숲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1990년대 인천대공원이 개장하던 당시, 팀장이었던 그는 20년 만에 소장으로 부임했다. 처음 개장할 때는 나무가 작은 탓에 그늘이 없어 지탄을 받았으나 지금은 훌륭한 숲으로 바뀌었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그는 인천의 공원녹지사업 실무자로 몇 십 년 일한 도시조경 전문가다. 초창기에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었는데 은행열매 때문에 민원이 들어왔다. 장기적으로 도시 조경수로 부적격하다고 판단하여, 송도 입구 같은 큰 길에는 느티나무를 심었다. 이후 풍성한 녹음으로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보통 지자체에서 벚나무를 많이 심지만, 공해에 약하고 수명이 짧고 노화하면 밑에서부터 썩어들어 최적의 가로수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인천대공원은 숲 공원입니다. 놀이시설이 없습니다. 처음 공원을 조성할 때 유락시설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이곳만큼은 정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지금의 숲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여긴 조용한 공원입니다. 들어오면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예요.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표본으로 인천대공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태식 소장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인천대공원을 치유의 숲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특히 대상자 특성에 맞는 치유프로그램을 세분화해서, 도시생활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위해 '숲 치유사'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문의
인천수목원 032-440-5888. 숲해설 하루 3회(10:30, 13:30, 15:30) 운영.
숲해설 예약은 홈페지에서 가능(reserve.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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